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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집

2020년 8월호(13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0.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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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양초를 밝히는 날은 어김없이 두꺼비집이 내려간 날입니다. 전깃불 아래서 보던 식구들과 달리 양초를 손에 쥔 식구들의 얼굴은 은은하고 온화했지요. 갑자기 ‘쩍’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모든 전기가 차단되면 식구들은 수런수런 양초를 찾아 마루와 안방, 부엌에 촛불을 켜놓고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이곳저곳 전기 스위치를 누르신 후 “이제 올려봐라”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무 막대기를 가져다가 차단기를 올립니다. 운 좋게 전기가 들어왔다가, 갑자기 털썩 다시 떨어지면 퓨즈를 다시 감아 놓고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지요. 마침내 집안에 전기가 환하게 들어옵니다. 우리는 양초를 훅훅 불어 서랍 속에 넣습니다. 바깥으로 흘러내린 촛농을 뚝뚝 떼어내니 손이 미끌거립니다. 


청개구리나 참개구리는 논두렁에서 봐도 무섭지 않았지만 두꺼비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독이 나와서 옴이 오른다고도 했습니다. 우둘투둘한 표면에 주먹만한 두꺼비가 길가에 있으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둥그런 모양이 어디 두꺼비만 있는 것도 아닌데 하필 두꺼비집이라 이름을 지은 이유가 문득 궁금합니다. 실제로 만난 두꺼비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이야기 속 두꺼비들은 따뜻합니다. 콩쥐를 위해 밑이 빠진 물독을 기꺼이 받쳐주는 두꺼비도 그렇고, 품고있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어미 두꺼비가 뱀 앞에서 춤을 추며 자신을 삼키도록 만들어 뱀과 함께 죽음을 택하는 모성애도 그렇습니다. 흙에다 손을 넣고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노래를 부른 뒤, 주먹 모양 흙집을 만들 때도, 두꺼비는 친근합니다. 진로 소주인 금복주의 두꺼비도, “아이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네”의 두꺼비도 재물복과 자식복의 대명사지요. 부자들의 몸은 하나같이 팔다리가 짧고 배가 나온 두꺼비상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요?


전기차단기를 두꺼비집이라고 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집을 지켜주고 과욕을 막으며 지나친 욕망이 들끓을 때, 한번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두꺼비집의 존재 이유라 봅니다.
근래 들어 저는 멈추지 않고 돌진할 때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을 외면하고 자족하며 산다는 일이 도리어 나의 자유를 옭아맬 수도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로 생긴 일입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동네책방’을 건축할 수 있는 종잣돈을 마련하려고 애쓰니, 전선처럼 이리저리 뻗어나간 욕망이 두렵습니다. 제게도 지나치게 욕망이 들끓을 때, ‘쩍’하며 저를 차단시켜 줄 ‘두꺼비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며, 제 욕망의 궁극적 목적을 찬찬히 살피면서요.

 

경기도 의정부시 발곡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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