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자존감 빵빵, 성실함과 따뜻함으로 웃음을 만들어가는 개그맨 김영철을 만나다

2021년 2월호(13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2. 17. 12:31

본문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자존감 빵빵, 성실함과 따뜻함으로 
웃음을 만들어가는 개그맨 김영철을 만나다

 

특별했던 2주간의 자가격리
“방송하시는 김영철씨죠.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셨어요.” 
올 초에 있었던 일이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전화로 자가격리 통보를 받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닥친 일이었으니까요. 처음엔 긴장되고 무섭기도 했지만,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고 자가격리가 결정되자마자 마음을 빨리 바꿔 먹었죠. ‘어떡하지?’가 아니라, ‘보란 듯이 이 시간을 보내리라’하고 말이죠. 그러니까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하는 기대와 설렘이 솟구쳐 오르더라고요. 지인들이 전화로 이것저것 해보라고 많은 팁을 주셨는데, 글 쓰고, 보고 싶었던 영화 보고, 슬기로운 자가격리라는 주제로 유튜브도 만들고, 평소에 좋아하는 요리도 하다 보니 생각보다 2주가 길지 않았어요. 지금에선 더 잘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도 들지만, 저에게 있어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한 번만으로 족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연예인은 나의 숙명
개그맨이 된 건 저에게 어떤 숙명이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이 가진 직업을 한 번씩은 후회한 적이 있지 않냐는 내용이었죠. 그때 저도 시치미 떼고 “개그맨이 된 걸 늘 후회한다”고 말했죠. 그리고 진짜 꿈은 배우였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빵 터져 웃더라고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개그맨이 된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천직이라고 해야 할까요? 


학창 시절, 반에서 웃기는 아이 하면 바로 저였기에 제가 개그맨이 된 것에 대해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초·중·고등학교 친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연예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던 부정적인 기운을 가진 친구들 몇을 제외하고 말이죠.(웃음) 소풍 전날이면 모두 기분 좋은 설렘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점심 먹고 갖는 장기자랑 시간에 어떤 오프닝을 해야 할지, 어떤 새로운 걸 선보일지 계획을 짜야 했으니까요. 꼭 개그맨이 되어야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방송계로 진출해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게 꿈이었죠. 고등학교 때는 주니어 가요제에 나간다고 데모 테입을 보냈다가 떨어져 보기도 하고, 연기자가 되고 싶어 여러 번 탤런트 시험을 봤는데 이상하게(?) 1차 서류심사에서 떨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개그맨 시험을 봤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본 첫 시험에서 1차를 넘어 드디어 2차까지 갔죠. 다음에 제대로 보면 되겠구나 싶어 제대 후에 MBC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아깝게 최종에서 떨어졌어요. 그런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어! 내년에는 되겠네’였어요. 다시 일 년을 준비해 1999년, KBS 14기 공채 개그맨 시험에 정식으로 합격했고 지금까지 22년 동안 연예인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죠.

웃음보다 꾸준함
‘아침에 일찍 일어날래? 아니면 웃길래?’라고 질문하면 저는 전자를 하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그맨이라면 당연히 웃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22년 방송을 하면서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말한다면 개인기나 영어가 아니라,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이 되고자 서울로 처음 올라왔을 때 다짐했어요.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자’라고요. 중간중간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제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인 꾸준함으로 성실하게 사는 가운데 꿈꾸던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졌어요.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아침 황금시간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맡게 되고, 영어 공부도 하게 되고, 책도 내고 강의도 하게 되었잖아요. 물론 제가 일찍 일어나기만 잘하는 건 아니죠. 가끔씩 정말 웃기지 않나요? (웃음)

 

웃음이란 교감이다
웃음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저는‘A와 B 사이의 교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상대방이 이쯤에서 웃을거라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정말 웃어주면 서로 뭔가가 통한 거잖아요. 교감을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데, 냉철하고 표독스러운 자세보다 상냥하고 친절한 자세와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안타깝지만 요즘 웃음을 보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독하게 쏘아붙이는 게 많아요. 상대방을 향한 상냥함과 친절함을 담은 따뜻한 웃음을 전하는 연예인이 되는 게 앞으로의 저의 바람입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도 무대를 장악하고 정신없이 내 말만 하기 바쁜 사람이었죠.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에요. 영어 하는 것만 봐도 제가 말은 잘하는데, 듣는 것은 부족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공부했던 게, 이번 황금시간 아침 7~9시 파워FM을 맡으면서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라디오 방송만의 매력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하게 된 건 저에게 있어 정말 행운 그 자체였습니다. 라디오야말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실함과 따뜻함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비교할 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는 라디오에는 청취자와 진행자 사이에 비호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방송을 듣는 분들은 다 제가 좋아서 듣는 분들이잖아요. 굳이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골라서 듣는 분은 없으니까요. 잘못된 내용을 교정해 주거나, 따끔한 평가를 해 주는 일은 있어도 들으면서 비방하거나 욕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진행자를 걱정해주고 격려해준답니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 사연을 주고받을 수 있다 보니 친밀도도 상당히 높습니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제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답변을 하다 보니, 저 자신도 좋은 청취자가 되어가는 걸 알 수 있죠. 물론 연애 이야기만큼은 답변하기 힘든 영역에 속하지만요.(웃음) 여기에 라디오는 매일매일 만나야 하기에 진행자나 청취자 모두 체력이 좋아야 해요. 서로 정말 좋아하고 아껴주는 마음으로 함께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여기에 스탭들도 매일매일 만나야 하니, 친밀도도 높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깊을 수밖에 없는 게 라디오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잼’ 캐릭터의 반전
제가 ‘노잼’캐릭터로 유명하잖아요.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저라도 주변에서 제가 말할 때마다 재미없다고 하면 은근히 짜증 나고 하기 싫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동료들이 응원해 주는 거예요. “그게 너만의 캐릭터니까, 주눅 들지 말고 더 하라”고요. 그 말에 힘을 얻어 ‘조금 더 망가져 보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편해지고, 오히려 자신감까지 생겼지요. 평소 존경하는 정재찬 교수님이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한 말이 있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저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신청자들도 끌끌 혀를 차면서도 묘한 동질감 속에 제 캐릭터를 응원해 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넘치는 자신감? 아니, 스스로 만들어 온 자존감!
한 번은 이영자 선배님이 저를 보고 “어째서 영철이 너는 유재석보다 더 행복해 보이냐?”라고 이상하다는 듯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돈도 인기도 별로 없는데도 제가 가진 유달리 높은 자존감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죠. 저는 스스로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자존심은 타인과 비교하고, 타인을 의지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하면 상처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자연히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죠.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보면, ‘공부를 통해 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 나와요. 나는 나고, 타인은 남일 뿐이라는 것이죠. 


자존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많은 훌륭한 게스트를 만나고 그분들에게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대부분 저보다 더 괜찮은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라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자극을 받고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죠. 


또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감히 제 인생을 바꾸어준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917~

1862)의《월든Walden》을 꼽을 수 있습니다. 2011년 이 책을 읽었는데, 저의 정신을 강하게 치고 가는 뭔가가 있었죠. 책의 내용은 저자가 도시를 떠나 2년 2개월 동안 자연과 벗하며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집을 짓고 혼자 생활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따분할 수도 있는 책이었지만,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하는 부분인데, 성공을 위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죠. 단순하지만 저에게는 강력한 메시지와 같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 결심했어요. ‘타인의 소리와 박자에 따르지 않을 거야. 내 마음의 소리와 내 계절에 집중할 거야’라고 말이죠. 10년 전에 읽었던 내용인데, 그동안 높은 자존감으로 단단하게 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영철’
《월든Walden》에서는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외로움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니, 외로움에 빠지기보다 그 시간을 고독하게 보내라고 말하죠. 저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일이 끝나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꼭 15분에서 20분 정도를 걸어요. 그 시간에는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지 않고 오롯이 집중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보통은 하루를 돌아보면서 만났던 사람들, 내가 했던 말과 행동, 결정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아는 동생에게 자가격리가 끝난 기념으로 가방을 선물 받았어요. 동생과 헤어져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면서 선물을 고르고 준비한 동생의 마음을 생각하며 흐뭇한 시간을 갖는 것이죠. 그뿐 아니라 가능하면 매일 가까운 공원에 혼자 산책을 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냅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죠. 어떤 철학자가 ‘가장 친한 친구는 자기 자신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저에게 있어 가장 친한 친구는 저 자신이 되어야 하니까요. 저의 두 번째로 친한 친구는 밤하늘의 달입니다. 왜 달이냐고요? 왠지 ‘해’는 입이 가벼울 것 같은데, ‘달’은 저의 비밀을 지켜줄 것 같아서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아지트가 있는데, 아파트 입구에 있는 놀이터예요. 아무도 없는 놀이터의 미끄럼틀에 누워 달을 보면서 주저리 주저리 얘기하는 거예요. 속상했던 일, 고민되는 일, 나만의 비밀들을 말이죠.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 있지만, 나를 건강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저만의 방법입니다.

연예인으로 살아가기
연예인은 철저하게 외로운 직업인 것 같아요. 연예인 세계가 워낙 경쟁적이다 보니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담이 많습니다. 여기에 인기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라, 연예인들이 갖는 심리적 외로움은 정말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악성 댓글이나 루머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이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타인의 생각과 글에 너무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나잖아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고쳐가는 노력만 있다면 어떠한 외부의 충격도 너끈히 견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독서와 같은 취미모임, 봉사 활동 등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의미 있는 활동이 많아진다면 더 건강한 연예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요즘 한참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영어를 배울 때처럼 프랑스어를 통해 새롭게 만날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와 세계를 기대하며 공부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언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확실해지는 게 있는데, 하나의 언어를 정복한 사람, 즉 목적지에 도달해 본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는 것이죠. 정해진 삶이 아니라 내가 도전하고 만드는 삶을 찾게 된다고 할까요. 앞에서 이야기한 나만의 소리를 듣고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전화 인터뷰였지만 질문에 에너제틱한 답변을 해 준 개그맨 김영철의 넘치는 정성 때문에 유쾌한 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해 나이가 드는 게 서글프지 않고, 오히려 이제는 차분하고 진중한 사람이 될 거라 기대된다는 그의 말에서 긍정적이고 꿈을 잃지 않는 평소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6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