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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모 사유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2021년 2월호(13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2.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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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평론 2]

비혼모 사유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2)가 정자를 기증받아 자발적 비혼모가 되어 혼혈아를 출산한 것이 사회적 화제가 되었습니다. 국내 연예인과 방송인들도 ‘아름답다, 용감하다, 멋지다’ 등의 응원과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평소에 4차원적인 솔직한 발언과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녀가 이번에도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던 것이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솔직하고 과감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과연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행동으로써 옳은 것인가, 그리고 동의하고 장려할 일인가 하는 가치판단이 필요합니다. 한 사회 속에서 부정적인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에 비해 4배나 더 파급력이 크다는 사회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더욱 신중하게 이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유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출산의 의미를 생각해 보셨나요?
사유리는 재작년 10월, 생리불순으로 국내 모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난소 나이 48세라는 진단과 함께 ‘자연 임신이 어렵고, 지금 당장 시험관 시술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더 나빠질 것이고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라는 충격적인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낳고 싶고, 그렇다고 출산을 위해 사람을 급하게 만나 결혼하는 게 어려워 비혼 상태에서 임신을 결심했고, 국내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이 불법이기에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술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될까 걱정되어 죽고 싶은 정도였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녀가 여자로서 출산을 아주 중요한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자만이 자궁을 갖고 있어 출산을 할 수 있고, 엄마가 되어 자식을 기르려는 모성애의 발현은 중요한 것이기에 그녀의 결정과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출산과 그 뒤에 따르는 육아는 여성 이전에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한 인간의 일생에 있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출산은 여성이란 성 정체성의 한 역할(엄마)에 불과합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여성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스스로 전문성을 키워 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으로만 자기를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은 잃어버리고,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빈집증후군과 같이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으로 길러지고, 여성으로 살다가, 여성으로 죽어가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출산과 연관된 엄마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절대화시키기보다 인간으로서 어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여성이라면 비록 아이를 낳지 못한다 할지라도, 더 나아가 폐경기가 찾아오고 여성성을 다 상실한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자유분방한 일본사람 사유리
사유리는 “건강하고 EQ가 높은 사람을 찾다보니 어떤 서양인의 정자를 기증받게 됐다. 어떤 민족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도 했지만 문화 차이 때문에 동양인 정자 기증자는 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러한 태도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입니다.《일본인의 사유방법》이란 책을 쓴 일본의 지성, 나카무라 하지메는 일본인에 대해 ‘개별적인 사실 또는 특수한 상황만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사유방법은 보편성을 상실함으로써 결국 무(無)이론 내지 반(反)이론의 벽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것은 합리주의적 사유에 대한 부정을 수반하면서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직관주의 또는 행동주의로 치닫기 십상이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여러 가지 역사적 과오는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으며 그런 위험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제부터라도 개별적인 현상이나 사실을 통해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 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며 정곡을 찔러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사유리의 행동을 개인적인 취향의 결과로만 볼 게 아니라, 섬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는 가운데 보편성을 잃어버린 일본인의 사유와 문화의 한 결과로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인의 정절을 숭고한 가치로 강조해 온 유교 문화 속에 살아온 한국인과 달리, 일본의 성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합니다. 처녀성이나 동정을 숭배하는 관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고, 대항해시대에 일본에 온 서양인들이 남색 만연 현상과 ‘요바이’라는 문화를 보고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요바이(夜這い)’는 밤에 성교를 목적으로 다른 여성의 집에 들어가 밤을 새우고 나오는 풍습입니다. 여성은 여러 명의 남자를 받고 그 중에 한 명을 골라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낳은 아이는 아버지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이를 상관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고 합니다. 메이지 유신의 근대화 과정에서 ‘요바이’를 없애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50년대 이후 전기의 보급과 더불어 자연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즉, 일본에서 이 풍습이 완전히 사라진 건 겨우 반 세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시각과 일본의 태도가 그토록 다른 것도 이런 왜곡된 성문화와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사람 사유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에서 과연 보편성을 가질까를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낳을 권리라고요? 아이의 행복추구권은요?
사유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비혼모 출산이 불법이라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상에는 금전을 목적으로 한 거래나 특정 성별의 아이를 갖기 위한 시술, 미성년자에 대한 시술 등이 금지 대상으로 명시돼 있고 미혼 여성의 시술은 불가하다는 취지의 규정은 없습니다. 불법인 근거를 찾자면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인공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난임 부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한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는 체외수정 및 배아이식은 원칙적으로 법적인 혼인 관계에서 시행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난임 부부의 치료 목적으로만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국내 사정에 대해 사유리는 ‘비혼모도 합법적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출산에 ‘낳을 권리’만 있을까요? ‘아이의 행복추구권’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유리가 출산 후,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왔던 제가 앞으로 아들을 위해서 살겠다”라고 심경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비혼모로서 자식의 양육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작정은 귀합니다. 하지만, 이름 모를 남자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찾게 될 터인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의 입장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아이는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환영할까요? 아버지 없는 아이의 고통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두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더 행복한가요? 영유아기를 지날수록 아버지의 역할과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집니다. 사유리는 좋은 엄마일 뿐 아니라,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설사,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지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잘못된 아버지상을 통해서도 아이는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역할은 경제적인 부양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아이의 정체성 혼란, 사회성 결여, 정서적 불안정, 가치관과 세계관의 왜곡된 형성 등 여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여성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그 뒤에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을 전부라 생각하는 여성 일반의 삶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더 높은 가치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며 정신적인 조력자 역할을 아버지가 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여성은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좋은 아버지상을 닮은 배우자를 찾습니다. 부모가 없다면 아이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회성을 배우며 균형 잡힌 아이로 성장할까요? 사유리가 아버지 없는 아이의 정체성과 그 아이의 행복추구권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로서의 자기 정체성에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아무리 아이를 잘 낳고 기른다고 할지라도 이기적인 부모란 오명을 지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 생명 무시와 공멸의 위기
이제 다시 한번 질문해 봅시다. 여러분은 사유리의 결정과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사유리라는 인물의 독특한 결정과 행동을 아이를 낳고 싶은 한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또 일본인이라는 그녀의 근원을 통해, 그리고 동등한 한 인격체로서의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 없이 당장의 이슈와 자신의 개인적 선호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누리꾼들은 현재 영국, 스웨덴, 미국 일부 주에서는 배우자 없는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게 한다며, 비혼모의 낳을 권리를 법에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포퓰리즘을 의식한 정치인들은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 낳을 권리뿐 아니라 낙태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미혼모 출산권과 낙태권의 주장은 정반대의 개념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인간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엄청난 확신입니다. 과연 인간에게 이런 권리가 있을까요? 현재 우리나라는 낙태를 죄로 인정할 것인가가 헌법불일치의 결정으로 입법 공백 상태에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공백 상태가 되자마자 낙태를 문의해오는 전화가 산부인과에 연일 걸려온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우주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그런 생명을 죽게 하는 일에는 엄청난 책임이 따릅니다. 이런 책임을 간과한 채 권리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느새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가치를 상실한 채 공멸하는 사회가 될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금천구 갈렙추

caleb.kj.cho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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