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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8) 링컨은 누구인가

2021년 3월호(13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3. 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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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8]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8)

링컨은 누구인가

 

21세기 세계 지도자 부재라는 심각한 위기의 시대에 링컨을 다루어 왔던 아주 큰 행복을 이제는 다음의 질문으로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바로 링컨은 과연 누구였나? 하는 질문인데, 그 핵심은 ‘그는 자신을 과연 어떤 사람으로 여겼나?’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누구라고 인식하느냐, 자기정체성인식은 한 인간을 판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링컨은 ‘절대자 앞에서 매우 건강하고 균형잡힌 자기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즉 인간은 신을 배신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의지’를 가진 놀라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간과 역사를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속에 머무르는 제한된 존재라고 인식한 겁니다. 이런 놀라운 자기정체성 때문에 링컨은 1) ‘철인-정치가’로 대표되는 플라톤을 능가할 뿐 아니라, 2) ‘신학자-정치가’인 다윗왕과 솔로몬왕에 근접한 혹은 능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1. 링컨은 자신을 누구라 파악했는가?
 ‘(인간의) 자유의지론’과 ‘(신의) 섭리론’ 사이에서 활동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링컨에 대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훈련해서 점차로 완성에 이른 대기만성형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대기만성형의 인간들은 일단 완성에 이르면 스스로 법을 만들고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려는 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까지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도달했던 궁극적인 대기만성적 인간형은 평생을 걸치면서 서서히 발전해 갔지만, 궁극적으로 신 앞에 서야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그 분 앞에 서슬 푸르게 섰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역사와 미국의 정치역사도 그 분 앞에 똑바로 서서 판단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신 앞에 선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링컨이 가진 자기정체성은, 구체적으로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자 동시에 만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섭리 사이에 움직이는 존재를 뜻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성경이 규정하는 인간존재와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에, 그는 가장 균형잡힌 인간상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규정하는 인간이란 ‘선악과 앞에 선 인간이 가지는 이중적 진실’을 의미합니다(창세기 2:16-17). 즉 한편으로 인간은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을 배신할 정도의 놀라운 자유를 지닌 존재지만, 동시에 법칙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시고, 피조물 인간은 결코 법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그 법에 순종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신약성경과 링컨이 강하게 영향받았던, 보수적 칼빈주의적 침례교가 의지했던 성경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여 만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정,선택하여 이끈다는 설명입니다(에베소서 1:5,11, 로마서 8:28-30). 즉 링컨은 자유의지론과 함께 섭리론을 자의식을 형성하는 중추로 가졌던 겁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 둘 중의 전자(‘자유의지론’)만 생각하여 링컨을 매우 교묘한 정치가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링컨을 칭찬하되 자기가 설정한 궁극적 목적을 위하여 전체를 파악하고 조직해 나가는 면에서 마키아벨리 정도의 천재적 정치가로 파악하는 거지요. 그러나 만약 링컨이 이런 사람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존경하는 링컨은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할 겁니다. 정반대로 어떤 이들은 이 둘 중의 후자(‘섭리론’)만을 강조하여 그를 운명에 복종하는 ‘운명론자’, ‘숙명론자’라고 인식합니다. 그런데 이런 양극단의 하나에 빠진 사람들은, 이런 태도로 링컨을 계속 읽고 연구하다 보면 자기들의 설정한 네트에 걸리지 않는 또 다른 링컨상을 발견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링컨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평가하는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판단하느냐에 연관되는데, 인간만 강조하면 자유의지를, 하나님만을 강조하면 예정론만을 강조하는 편향에 빠질 것입니다.
1854년 S.더글러스가 소위 ‘주민주권론’ sovereignty of the people을 들고 나오며 대통령이 되려고 나섰을 때, 링컨은 마귀같은 마누라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순회변호사를 하면서 시시덕거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허망한 인간에서, 그 이후 10년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가는 존재로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궁극적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감행했습니다. 또 남북전쟁에서 승리가 확정되어 워싱턴DC로 돌아가는 증기선 안에서, 그가 사랑했던 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전왕인 던컨을 살해한 후에 한 말을 각료들에게 낙동해 들려주었습니다. “던컨 왕은 무덤에 누워있네. 인생의 고해를 건너서 이제는 편안히 잠자고 있네. 국내의 반역자들, 외국의 침략, 그 어느 것도, 그를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네.” 또 이것은 ‘살아있는 산자보다 죽은지 오랜 자가 복되다’(전도서 4:2)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링컨이 이룬 성과에 대하여 스스로 회의적 시각을 가졌음을 반영할 뿐 아니라, 곧 있을 자신의 순교에 대해 섭리적 권세를 가진 하나님을 의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링컨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해결될 수 없는 신학적 답을 책상 앞에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치열하고 살벌한 현실 속에서 그 균형을 잡아나갔던 사람이었습니다. 

2. ‘철인’ - ‘정치가’의 이상을 최고로 여겼던 플라톤을 능가한 링컨
플라톤 철학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의 삼분구조는, 그리스 신화의 삼분구조에서 온 것이거나, 혹은 그 신화를 도용한 것임을 이전의 글에서 밝혔습니다. 사회의 최고 지위는 철학자들이 차지하며 이들이 배양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 ‘지혜’, ‘소피아’, ‘로고스’였다면, 중간 지위는 전사들이 차지하며 이들이 배양해야 할 핵심 덕목은‘용기’였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사회의 하층은 농부,기술자,상인이 차지하며, 이들이 배양해야 할 궁극적 덕목은 ‘절제’라는 매우 이상한 것으로 배치했습니다. 스파르타적 정치이상을 가진 플라톤은 아테네에 점차로 많아져가며 거들먹거리는 상인,기술자,농부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이상을 ‘절제’라는, 말도 안되는 덕목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즉 신기술을 가지고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까불지 말라는 소리를 한 거지요. 게다가 더 철면피를 뒤집어써서 한 주장이, 대놓고 플라톤 자신의 직업인 철학자가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철인-정치가’라는 이상이었고, 그는 덕목 중에 최고이며 신에 근접한 덕목인 ‘지혜’, ‘소피아’, ‘로고스’를 함양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상이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되살아나면서, 철학자들 중에서 철인-정치가의 이상을 품고 자신들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세상을 통치하려는 무리수를 두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혼란에 빠트린 자들(스피노자,홉스,칸트,헤겔,마르크스 등)이 수없이 많이 나왔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가라는 이상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세웠지만 시라쿠사에 이어 아테네에서도 실패하고 만, 인간의 지배욕을 드러내는 천박한 이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평소의 연설에서도 정치적 주장보다는 정치철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일에 관심이 많은 링컨(프레드 케플런, 링컨, 407)은 그야말로 ‘철인-정치가’의 이상을 두 가지 점에서 현실로 구현해 내었습니다: 1) 노예해방, 2) 연방의 유지.

‘노예해방’을 결국 현실정치로 구현해냄
우선 링컨은 높은 이상을 가지고 당시 미국이 직면한 첫째 거대한 현실문제인 노예제도를 해결하고야 말았습니다.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노예제가 악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남부에서는 구약성경이 노예제를 허용한 것 같이 보이므로, 그것을 이용해 노예제를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은 같은 이스라엘인을 항구적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금전적 보상이 불가능하니 대신 노동을 해 주는 ‘종’은 있었지만, 그것도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면제년)이 되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서 풀어주어야 했습니다(신명기 15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이후에 시작된 새 시대에서는 훨씬 더 혁명적이 되었습니다. 비록 로마법에 의해서 사회의 외적체제가 유지되던 시대이지만, 신약성경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과격한 외적 혁명 대신, 같은 믿음을 가진 노예를 형제로 대하라고 명함으로 노예제 자체를 실제적으로 폐지해 버립니다(빌레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농장plantation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남부의 기독교인들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신약성경은 버리고, 자기 입맞에 맞는 구약성경만을 붙들고 흑인인 기독교인들이라 할지라도 해방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악을 알고 있는 링컨은 신학적이 아닌 다른 방식, 즉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부의 본질과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개하였습니다. 한 개인이 노예, 즉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하여 노동하도록 묶여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단 세 가지 예외만을 허용하였습니다 : 1) 의존적 기질을 가져서 다른 사람이 고용해 주는 삶을 평생 사는 것이 좋을 경우, 2) 그 사람 자신이 악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지 못하는 경우, 3) 몹시 운이 나쁜 경우(카프란, 414). 그러나 대부분의 흑인들은 이 세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노예제를 유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또 링컨의 정치적 대적인 S.더글러스와 그를 지원하는 남부는 자신들의 행동을 민주주의로 합리화하기 위해 ‘주민주권’이라는 교묘한 정치적 용어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이것의 핵심은 각 주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들이 행할 행위들을 결정하게 하자, 즉 남부의 주는 노예제를 유지하기 원하니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미대륙에 남부만 있지 않고 서부,북부,동부가 모두 연방이라는 법적제도로 이미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 치명적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은 항구적으로 이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 사실 남부의 정치체제는 사실상 의사결정이 엘리트층에 달린 위계적 구조였고, 민주주의를 다수의 횡포로 불신했으며, 각 주의 이해를 조절하는 힘을 가진 단일체로서의 연방을 부인하여 각주 이기주의,국수주의에 빠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이루었던 겁니다.  
이런 남부의 경향에 대하여, 링컨은 노예제가 틀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 노예제가 존재하는 주에서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앞으로 생길 새로운 주에 그것을 퍼트리면 안된다는 40여년 전에 했던 협약을 지켜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노예제라는 문제가 연방의 붕괴라는, 보다 큰 문제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링컨은 직감했습니다. 지금의 남미처럼 수많은 국가들로 나뉘어서 오랜 전쟁을 겪고, 21세기까지도 불행하고 무기력한 정치체제를 유지하던 모습이 연합된 한 나라인 미국에도 주별로 쪼개어져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연방’, 그 궁극적 가치
이어서 그는 신생국 미국이 직면한 둘째 거대한 문제인, 진정한 하나인 ‘나라’(nation)로 서는 것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민족,언어,문화로가 아니라 제도적 체제인 ‘연방’으로서 하나로 형성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노예제도가 존속되어도 되며, 연방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노예제도가 폐지되어도 된다는 명쾌한 입장을 늘 견지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연방이라는 정치체제의 기초 위에 견고하게 서서 연방의 정신적 기초였던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근거해서 활동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성경을 궁극적 판단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그는 당시 미국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서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훨씬 나은 판단기준을 가졌습니다. 신학적,종교적 기초를 버리고 철학을 절대적인 기초로 삼은 이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은 민주주의가 우중정치로 쉽게 빠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공화정을 선호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보다 700년이나 앞선 모세가 정초한 고대나라 이스라엘은 훨씬 나은 정치체제인, 1) 법을 가르치고 유지하는 제사장직(과거적), 2) 법을 집행하는 왕직(현재적), 3) 왕과 백성을 비판하는 예언자직(미래적)이라는 삼중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삼중구조를 사용하되 종교적,신학적 핵심을 빼버리고 세속사회에 적용하려던 링컨을 앞선 두 정치철학자들이 있습니다. 상호협력하여 하나님의 법인 토라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만든 성경의 건설적 삼중정치구조 대신, 상호 불신하여 상호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체계를 만든 몽테스키외(1689-1755, 법의 정신 L'Espirit de lois 1748)가 있습니다. 또 그에 앞서 성경의 계약(언약)사상에서 하나님을 뺀 인간끼리의 계약(언약)을 적용하여 소위 사회계약사상을 제시한 루소(1712-1778)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1) 신적 법과 2) 신과 맺은 계약(언약)을 없애버리고, 순수한 인간끼리만 이루는 세속사회의 정치철학을 만들려고 한 것입니다.
링컨은 독학하는 가운데 서양의 이런 선배 정치철학자들이 내린 결론이나 해결로는 미국의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S.더글러스가 발의하여 통과된 켄사스-네브라스카법안(1854)은 노예제가 남부에만 국한되어 점차로 소멸되기를 기다리자던 선배들의 의도를 뒤집는 일종의 퇴행 혹은 반역행위이며, 그 결과 연방으로서의 미국은 악한 방향으로 더욱 편향되어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링컨은 드디어 플라톤을 능가한 철인-정치가라는 지금 도달한 고지조차 넘어 그 다음 단계로 나갔습니다. 즉 그는 ‘철인-정치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신학자(종교인)-정치가’의 단계로 나갔던 겁니다. 플라톤은 이집트와 동방의 세계관과 체계에서 벗어나 신학을 없애는 대신 종교나 신학을 신화 정도로 여기며, 사실상 철학이 원래 종교나 신화가 차지하던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그리스적 전통을 이어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예 신화 자체를 완전하게 제거한 철학절대체계를 만들었습니다.
        
3. ‘신학자(종교인)’ - ‘정치가’의 최고의 경지를 보였던 다윗왕과 솔로몬 왕에 근접한, 혹은 능가한 인물, 링컨
링컨 당시 미국의 종교인(기독교인)들은 미국이 형성된 역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즉 미국의 영국에서의 독립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는 ‘정치적 독립’(영국에서의 독립)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독립’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정치계의 풍운아이며 강력한 통치자였던 헨리8세는 대륙에서 시작된, 타락한 로마교에 대항한 종교개혁(1517)을 따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로마의 정치체제인 교황권을 자기에게 적용하여 영국 국왕이 영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수장령’(Acts of Supremacy 1534)을 발표하여 정치가 주도하는 교회를 제도화시켰습니다. 그런데 17세기에 국왕의 변덕에 따라 교회가 좌지우지되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교회현실에 반대하여 청교도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아예 영국을 떠나 Mayflower호를 타고 북미 동해안에 정착하여 천신만고 끝에 최초의 미국인들을 구성했습니다(1620). 그래서 영국에서처럼 정치가 종교를 간섭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것이 미국의 선교사를 통해서 한국에까지 전파되어 의식화된 정(치)종(교)분리원칙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 자체는 이런 원칙을 결코 찬성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일관되게 주관하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미국교회는 이런 이원론적 전통을 아주 강하게 이어가고 있었고, 이런 가운데 링컨 당대에 미국교회를 이끌던 최고의 신학자가, 세 아들과 함께 오랫동안 Princeton신학교를 통하여 미국교회에 강한 영향을 미친 Charles Hodge(1797-1878)입니다. 그를 비롯하여, 스스로 학습하여 해방된 흑인이자 하원의원까지 된 F.더글러스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미국교회의 이원론적 경향을 따라 미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노예제는 그냥 해방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마치 1차방정식을 풀듯이 매우 순진하게(naive) 링컨을 - 적어도 초기에는 - 밀어붙였습니다. 물론 링컨도 생각이 깊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는 인간과 역사의 다양함과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판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획기적 변화를 경험한 이후, 그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성경,독립선언서,헌법에 기초하여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위하여, 아주 복합적인 사회적 함수들(신학,철학,정치,사회,경제,외교,국방 등)을 모두 고려하여, 마치 5차 이상의 방정식을 풀듯이 절묘하게 처리해 나갔습니다. 즉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미국교회의 이원론적 전통을 따르지 않고, 세속 정치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일원론적으로 구현해 낸 것입니다. 물론 60만이라는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에서, 링컨이 남북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받아들였다는 점 때문에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링컨은 용서의 자비를 늘 베푸는 목사로서 산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를 보고도 그냥 두는 것으로) 헛되게 칼을 가진’ 존재(로마서 13:4)가 아닌, 최고 정치가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갔습니다. 링컨은 점차로 세속화되어가던 미국 정치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그야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이 점에서 링컨은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을 능가할 뿐 아니라, 고대의 하나님 나라를 일원론적으로,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일에 성공한 다윗왕과 솔로몬왕에 필적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물론 링컨의 삶은 ‘긍정적 그 무엇’을 이룬 것이 아니라 ‘부정적 그 무엇’을 없애는 것에 소진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살아서 대통령으로서 제2의 임기를 채워 ‘긍정적 그 무엇’을 이룩할 기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한때 성욕(밧세바 사건, 사무엘하 11장)과 명예욕(인구조사, 사무엘하 24장)에 사로잡혔던 다윗왕, 그리고 치적 후반에 철저히 실패한 그의 아들 솔로몬(열왕기상 11장)을 능가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능가했다면 미국인들은 링컨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여서 거의 신처럼 받들었을 겁니다. 그가 각성한 1854년 이전에 링컨은 이미 세상적 욕심을 초월한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었기에, 성욕이나 지배욕으로 실수할 위험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링컨이 믿었던 섭리의 하나님은, 링컨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인들과 이 글을 쓰는 저를 비롯해 세상에서 링컨을 존경하는 수많은 세계인을 위해 그렇게 순교로 마무리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가정이지만, 우리는 방금 내린 결론을 한 번 더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링컨은 다윗왕과 솔로몬왕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 속에 이룬 일원론적 신학자-정치가일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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