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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서 정원사(?) 되다

2021년 3월호(13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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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인]

 

칠레에서 
정원사(?) 되다

 

아파트 생활은 참 편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웬만한 관리를 다 해주는데다 아파트 주민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정원을 잘 가꾸어 주니까요. 그러다가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연유
일터가 변두리이다보니 출퇴근 시간이 길어 가뜩이나 건강이 나빠져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일터 주변의 아파트를 알아보았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외관이나마 깔끔한 아파트 한채가 없는 동네라니… 그러다가 평온해 뵈는 어느 주택가를 발견했습니다. 아파트는 안되겠다 싶어 주택으로 눈을 돌리니 때 마침 마땅한 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허름해 보이는 집이었으나 앞 뒤뜰에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차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집을 사기까지 어려운 관문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려운 관문이란 다소 비싼 가격에다가 60년 된 구옥이라 지저분하다고 아내가 이런 집에서는 절대 살기 싫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쁘게 수리를 하겠다고 아내를 안심시켰고, 의외로 전 주인이 우리가 바라는 가격에 순순히 응해주어 무사히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개사 ‘미겔’이 우리를 위해 착한 일한다고 앞 뒤뜰 정원의 묵은 나뭇잎들과 잡초를 다 제거해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약 8년간 세들어 살던 사람이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낙엽이 많이 쌓여있었던 것인데 새로 들어오는 우리가 기분 좋으라고 해주겠다고 한 것이라 여간 고마운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끗이 했다고 자랑스럽게 앞 뒤뜰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뿔싸! 앞 뒤뜰에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이 마음에 들어 샀는데 거의 몽창 잘려져 있는게 아니겠어요? 인부를 인건비가 저렴한 아이티 사람들을 썼는데 칠레말을 잘못 알아듣고 거의 모든 나무들을 베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닥을 깨끗이 하라는 말을 나무들까지 베어 버리라는 말로 알아 들었다는 겁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더랬지요. 놔두라고 할 것을…하며 후회막급이었습니다. 중개사 미겔은 내가 비통해할줄 몰랐던지 난감해했지만 주택은 햇빛이 잘 드는게 더 좋은거며 더 예쁘게 다시 정원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습니다. 너무 너무 미웠지만 싸게 살 수 있게 해준 1등 공신이 중개사 미겔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뭐라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중개사 미겔은 우리가 살게 될 집, 옆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시작된 정원 만들기
애초부터 정원을 꾸민다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생활할 때 오디오 기기들이 돋보이라고 ‘스킨 답서스’ 같은 식물들을 드리우는 정도의 센스 밖에는 갖추지 못했던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개사 미겔 덕분에, 그러니까 그 믿을 수 없는 참사 덕분에, 정원을 꾸며야 하는 난감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기초작업
인터넷 정보는 초장부터 기를 죽여 힘이 빠졌습니다. 지켜야 할 조항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남의 집 정원 훔쳐보기였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감탄하며 남의 집 잘 가꾸어진 정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형태들을 머리에 넣어 두었습니다. 변두리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정원들을 잘 가꾸어 놓은 집들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난관
문제는 잘 가꾸어진 남의 집 정원을 보고도 그대로 카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적당히 큰 나무들하며 아담한 관목들을 당장 사다가 심을 수 없었습니다. 칠레에서 사는 외국인인 제가 쉽게 척척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각종 식물들의 멋들어진 조화를 만들어 낼 자신이 통 없었기도 했구요.


그래서 시작한게
앞마당을 먼저 가꿨습니다. 기왕에 있던 몇몇 식물들의 위치를 바꿔주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를 했지요. 그림을 그려가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화분에 담겨진 나무나 꽃을 사온 후, 한동안 놔두었다가 여기다 싶은 위치에 옮겨 심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더 어울리겠다 싶은 곳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러니 보기에 좋았습니다. 어디서 씨가 옮겨 왔는지 분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더욱 정원다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앞뜰에서 커피나 아침을 즐겨 먹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알고보니 칠레는 앞뜰에서 떠들고 노는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류는 하층계급이라고 보는 전통문화가 있는게 아니겠어요. 외국인이 튀는 것도 볼쌍 사납겠다 싶어 앞뜰에서 뭘 먹는 행위는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뒷뜰로 눈이 옮겨지면서 오늘날까지 피나는 노력을 하며(웃음) ‘뒷뜰 조차 정원 맹글기’에 임하고 있답니다.


정원 만들기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는 집을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사는 것에 촛점을 맞추며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쉽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 분명 있지만, 아름답게 사는 것은 또 다른 풍성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원을 꾸미는 일,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꾸며가는 일은 또 다른 생활예술임에 분명합니다. 음악보다 미술이, 미술보다 음악이 더 좋을 때가 있고, 팝송보다 클래식 음악이, 클래식 음악보다 팝송이 더 좋을 때가 있듯이 정원 가꾸기가 이 세상 최고의 생활예술이 아닐까 싶은 날도 오더군요.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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