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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의 힘! 선생님 감사해요.

2021년 5월호(13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5. 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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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의 힘!

선생님 감사해요.

 

박희정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좋은 기회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저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느낀 글의 의미와 함께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 제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리려 합니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으로 태어난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도 잘은 어울렸지만 편히 고민을 나눌 용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다 보니, 전 언제나 가면을 쓰고 다니는 거짓말쟁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나누는 일은 제게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란 존재에게 더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단지 인사를 잘 하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숙제를 잘 해오면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나의 모든 것을 보이지 않아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은 당시 제게 견뎌낼 큰 힘이 되었어요. 


특히 국어 시간에 학습활동 칸을 넘치게 쓰면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 날이면 엄마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 때 글이라는 건 수단에 가까웠어요. 엄마는 언제나 지쳐 보였어요. 작은 손가방조차 들기 버거워 보였죠. 그런 모습을 보고 제가 느끼는 고민들, 오늘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일들로 더 힘들게 할 수 없었던 저는, 상장을 들고 가면 보여주시는 환한 미소를, 그 지친 얼굴 위 찰나의 밝은 모습, 지금도 제가 사랑하는 엄마의 장면입니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까요? 제가 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어릴 적 책을 참 좋아하던 제가 바쁜 일상을 버티다 보니 중학생이 되어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서부에 들어갔습니다. 책을 옮기고 나르고 정리하며 먼지더미 속에서 친구들과 소곤거리다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책이라는 것, 그 글 뭉치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보아도 각자의 삶의 연대기에 반사되어 모두 다른 파장의 소리가 모이더군요. 결국 저도 모르게 제가 늘 꿈꾸어 왔던 일들, 곧 나의 얘기를 하는 것이 제 일상에 녹아들었고, 전 행복했어요. 글의 매력에 빠져들 무렵, 마음을 나눠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었던 우리는 이곳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 그리움의 색이 적셔진 붓이 옅은 색을 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공간에 갈 생각에 다시 한 번 설레던 나날을 보내며 입학을 기다렸죠.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 다시 학교가 추워졌습니다. 외롭고 메마른 시선은 따뜻한 고향의 향수를 갈망하게 만들었고, 앞으로 이곳에서의 3년이 막막하던 차,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제안을 하나 하셨죠. 100일 글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글이라… 세 달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좋은 기억들이 서려 있는 단어여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고, 그 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지 그 때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슬퍼하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 누군가 건넨 막대사탕 하나로 해맑은 미소를 되찾은 마냥 전 이곳의 온도를 달리 느끼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 제가 다니는 길을 두리번거리고 오늘은 또 어떤 것을 써볼까 하고 두근거리며 매일 살아가기를 100일. 저에 대해, 친구에 대해, 대중교통에 대해, 제가 걷는 길 위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정의하며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흐름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전 학교 앞에 서 있었어요. 이제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따스한 그 곳으로 들어가 반가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만남 앞에 기꺼이 타인을 환영할 수 있는, 낯설지만 반가운 모습으로 제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0일 글쓰기가 끝나고 난 이후 지금까지 그 때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그 때가 그리워지곤 해서 다시 해볼까 막연히 상상해보기도 하지만, 그 때 그게 가능했던 건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 글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만의 보폭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집 앞 화사하게 자태를 드리운 벚꽃나무를 보고 쓴 글이 있습니다. 계절도 시간도 모호한 잿빛의 방안, 언제부터 하고 있었는지도,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움직임을 그렇게 계속 하던 한 소년이 방안 유일하게 희미한 빛을 밝혀주는 작은 창문을 두드려준 참새의 노크에 밖으로 나와 세상의 봄을 처음 마주하며 겪는 일들을 다룬 짧은 소설이었어요. 


참새는 천적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똑똑한 새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둥지를 틀 지붕 구석이나 곡식 같은 것들이 널렸으니까요.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안내해준 참새 덕에 소년은 하늘 구경을 했고, 지나가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었고, 그동안 알 수 없었던 세상을 알아가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 머리칼에 끼인 벚꽃잎은 잿빛의 방문을 열고 마주한 봄바람과 함께 소년의 방안으로 흩날렸고 소년은 이내 새로운 삶으로 발걸음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저를 투영하게 되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발곡고에 계셨고, 1학년 4반 국어선생님이셨고, 프로젝트를 기획해주셔서 전 이제 이곳이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무엇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이곳의 봄을 선물해주심에 찬란한 5월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의정부 발곡고 제자 나도윤 올림

ra04230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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