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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전달자! C.S.루이스 전문 번역가 홍종락

2021년 6월호(14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6. 1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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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전달자!
C.S.루이스 전문 번역가 홍종락

 

사회운동가에서 번역가로의 전향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한 선배의 추천으로 해비타트에서 4년 정도 일했습니다. 조직이 아주 작을 때부터 꽤 커질 때까지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해비타트를 떠나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상당수 시민단체나 사회적으로 뜻깊은 일을 하는 쪽으로 진로를 정하였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조금 결이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같이 일했던 몇 사람과 함께 ‘돈 좀 벌어서 좋은 일에 써보자’는 목표로 작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더군요. 그 후, 저는 번역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해비타트에서 일하기 전에도 번역에 관심이 있었고, 해비타트 사무실 맞은편에 자리 잡았던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한 모임의 요청으로 예수원 대천덕 신부님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 책의 번역 원고는 번역자로 처음 저를 소개하는 자료로 유용하게 쓰였지요. 나중에 그 책은 《토지와 경제정의》(전강수 공역, 홍성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여튼 일이 잘 안 풀리던 그 무렵에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영국 작가 C. S. 루이스의 기독교 관련서들이 하나둘 홍성사에서 번역되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그의 책을 즐겨 읽었던 터라, 홍성사에 연락하고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성령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을 맡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해보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재미가 있었고, 할 때는 힘들었지만 마치고 나면 힘들었던 것을 다 잊을 만큼 번역 일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해비타트에서 일할 때보다도 수입도 많더군요. 내게 맞는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번역가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전달자
저는 단행본을 주로 번역합니다. 책이라는 것이 결국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담은 매체잖아요. 저는 저자가 아니고 번역가로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충실하되, 최대한의 가독성을 보장한다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과 그의 문체와 개성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번역을 합니다.


나의 최고의 작가 C.S. 루이스
대학 2학년, 같이 살던 선배의 책장에 꽂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 매료된 후, 그의 책을 즐겨 읽고 나누다 마침내 번역에 뜻을 두게 되었습니다. 십 년 이상 한 해에 한두 권 정도 루이스의 저서 또는 루이스 관련 도서를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어릴 때 부모에게 배운 기독교 신앙을 청소년기에 버렸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깊이 연구했던 철학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 그리고 영문학 연구는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기독교의 내용을 비기독교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준비와 훈련이 된 사람입니다. 저는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기독교의 진짜 메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믿는 것이 희극이라면, 자기가 무엇을 믿지 않는지 모르고 믿지 않는 것은 비극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루이스는 이야기 속에 논리와 상상력, 이성과 추론을 이미지와 함께 풀어냅니다. 종교와 판타지를 말하지만,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일상적인 논리들이 닿아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의 생각과 동기, 전제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글은 상상력과 이성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본보기 같은 글을 보여주기에 아주 매력적이죠. 그래서 나니아 연대기를 해설한 책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정영훈 공저, 홍성사)와 루이스 번역가로서 루이스를 소개한 에세이집 《오리지널 에필로그》(홍성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번역, 자괴감과 보람 사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진짜 힘든 직업이 많기에 번역 일에서 힘든 것을 말하기는 좀 조심스럽지만, 번역 과정 중에서 어렵고 힘들 때는 무슨 말인지 모를 때, 의미 파악이 안 될 때입니다. 처음 번역을 시작할 때 머리를 쥐어뜯고 쥐어박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경력이 쌓이면서 이 부분에서 조금 느긋해져서 다행입니다. 일단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번역을 진행하고 시간을 두고 찾고 고민하다 보면 해결이 되더라는 경험치가 쌓였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 부분에서는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번역 과정 자체보다 진짜 괴로운 순간은 오역을 알게 되었을 때, 또는 번역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 저의 번역 실력에 자괴감을 들게 하는 순간들을 맞을 때입니다. 
하지만, 가끔 제가 번역한 책을 통해서 유익을 얻었다는 분들의 연락을 받으면 좋습니다. 주로 혼자 작업하고 책과 씨름하는 직업이라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일반적인 감사 인사를 받는 것만도 과분한 일이지요. 
좀 지난 일이긴 한데, 제가 번역한 C. S. 루이스 저서들로 논문 준비에 도움을 받고 있다는 두 사람의 연락을 같은 날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이 이슬람의 문명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단시간 내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대규모의 번역 작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의 저자에 있어서 제가 우리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했습니다. 결과를 추적할 수는 없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여러 결과와 열매를 생각하면 번역은 씨를 뿌리는 일이라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합니다.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독서법
독서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검색용 독서, 또 그 책을 읽어야 대화에 낄 수 있는 사교용 독서, 읽었다고 내세우기 위한 과시용 독서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면 너무 아쉽습니다. 편견을 깨치고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 대리적 경험을 하고 통찰을 얻게 해주는 배움의 독서도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인격과 영혼의 성장을 가져다주는 형성의 독서도 있습니다. 변화를 위한 독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를 품고, 마음을 열고 독서를 한다면 좋겠습니다. 루이스의 독서론이 담긴 책 《오독: 문학비평의 실험》(홍성사)은 책을 먼저 사용하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수용하라는 제안을 합니다. 이 시대에 간과되는 책 읽기의 측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로서의 태도 
바로 ‘성실성’입니다. 번역은 경력보다도 얼마나 정성스럽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보니 제가 번역한 책 두 권의 디자인을 맡았던 북디자이너와의 만남이 떠오릅니다. 그는 디자인을 위해 받아든 편집 이전의 제 번역 원고를 읽고 완성도 높은 원고 상태를 보며 격려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작업하는 방식, 혹은 완성도 높은 번역 원고를 내기 위한 노력, 자세 뭐 이런 것이 같은 업계에서 다른 일을 하는 분에게 좋게 보이고 격려가 되었다는 말에 뿌듯했습니다.
“나만 바보같이 사는 것 아닌가 했는데, 여기 그렇게 사는 다른 사람이 있었군요, 반가워요, 우리 계속 이렇게 우직하게 살아봅시다, 힘내세요.” 그의 말은 제게 이렇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제가 번역 일을 하며 살아가는 방식과 결과물이 이처럼 유혹거리가 아니라, 격려가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번역가 홍종락

jrhong71@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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