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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공급망 대 푸른 공급망, 한국의 반도체 선택은?

2021년 6월호(14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6. 1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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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같이 알아볼까요? 5-반도체 이야기]

 

붉은 공급망  푸른 공급망, 
한국의 반도체 선택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석유보다 더 중요해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입니다. 반도체가 부족해 굴지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을 줄여야만 하는 현재의 상황이 그것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그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는데 비해 반도체의 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가진 한국, 대만을 놓고 미·중 간의 대결도 치열합니다. 마치 구한말 조선을 놓고 영국, 러시아, 일본이 벌렸던 ‘그레이트 게임’을 보는 듯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나라의 운명이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먼저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큰 흐름을 살펴봅시다. 


반도체 수요의 폭증
반도체 관련 첫째 트렌드는 ‘수요폭증’입니다. 안 그래도 빠르게 증가하던 반도체 수요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교육을 받게 되었고, 엄마들은 마트가는 대신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좋은 PC에 대한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또 구글, 네이버 등의 플랫폼 기업과 온라인 쇼핑업체 등도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서버의 용량을 늘렸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다량의 반도체를 필요로 합니다. 
반도체 컨설팅 기업 옴디아는 2020년 4515억 달러이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를 다음과 같이 내다보았습니다 : 2021년 8%증가 4890억달러 -> 2022년 10.8% 증가 5423억 달러. 500조원에서 2년만에 600조원 대로 시장규모가 커진다는 겁니다. 세계반도체시장 통계기구(WSTS)는 더 빠르게 성장하여 2020년에 비해서 2021년에는 10.9%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반도체 공급의 감소
문제는 이렇게 시장은 커지는데 비해 반도체 제조기업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2000년 당시 30개에 달하던 첨단반도체 제조기업이 이제는 삼성, 대만의 TSMC, 미국의 Intel 딱 세 군데만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Intel이 보이는 탈락할 조짐입니다. 자신들은 설계만하고 제조는 TSMC에 맡기려는 겁니다. 또 7나노 이하의 공정의 경우 실질적으로 삼성, TSMC만 남는데, 이것마저 다시 줄어들 수 있다고 합니다. 설계기업이 증가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제조기업은 줄어드는 겁니다. 
이렇게 반도체 제조 산업에서 승자독식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1) 물리적 원인과 2) 경제적 원인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반도체 선폭을 줄이기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무어의 법칙’이라는 말을 아마도 들어 보셨을 겁니다. 7나노, 5나노 등으로 불리는 그 숫자는 원래 트랜지스터 게이트의 길이(Gate Length)를 말합니다. 2005년 30나노까지 도달했습니다만, 거기서부터는 크기를 줄이는 일이 급격히 어려워진 겁니다. 하지만 기업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집적도를 높였고, 새 공법의 10나노, 7나노, 5나노까지 도달했습니다. 30나노 이후부터는 이 숫자가 게이트의 길이를 뜻하기 보다 실질적 효과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합니다. 숫자가 크게 의미가 없어져서 인텔의 10나노가 TSMC의 7나노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은 첨단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음을 뜻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자면 돈이 많이 들고,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매킨지가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제조시설 설치비의 경우 5나노급에는 54억 달러(6조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17억 달러가 들던 10나노급에 비해서 3.2배나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극자외선 노광장비같은 고도의 정밀한 장치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시설비 못지않게 반도체를 설계하는 비용도 많이 듭니다. 10나노급이 3억 달러이라면, 5나노급은 5.4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이런 막대하게 증가하는 시설비와 설계비는 생산갯수와 관계없이 들어갑니다. 1개를 만드나 만개를 만드나 동일한 데 비해, 생산량을 늘리더라도 추가로 늘어나는 비용은 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도체 업계에서는 서로 생사를 건 치킨게임이 수시로 벌어지게 되고 승자독식의 산업 구조가 형성된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첨단공정으로 갈수록 제조기업의 숫자가 줄어들어 2000년에 30개에 달하던 첨단반도체 기업이 이제 3개만 남게 된 겁니다. 


정밀도 높은 반도체 제조국 한국, 대만
세계에서 제대로 반도체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한국, 미국, 대만, 일본, 중국 등 5개국입니다. 제조업체의 숫자는 정밀도와 반비례합니다. 180나노급을 생산하는 업체는 94개소, 130나노급은 72개소, 32나노는 20개소, 10나노는 5개소입니다. 최고의 제품인 5나노, 3나노는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만 현재 개발추진 중입니다. 그 중에서 인텔은 실질적으로 포기 상태이니, 한국과 대만 두 나라만 해당됩니다. 그런데 반도체의 수요는 늘어는데 생산 시설을 늘리기는 쉽지 않고, 수요자와 설계자의 숫자는 늘어나도 제조기업은 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벌어지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대란은 반도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WV, GM, 닛산 등 세계의 자동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서 생산을 대폭 줄였는데, 자동차의 대시보드 등의 센서에 들어가는 반도체들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기적으로 미국, 일본에서 사고까지 벌어졌습니다. 텍사스에 한파가 닥쳤고 전기 공급이 끊겨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멈춰 섰고, 일본에서는 르네사스의 공장이 화재로 멈춰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진 것이죠. 사고들이야 조만간 수습되겠지만, 공장 자체를 만들기 어렵다는 기술적, 경제적, 항구적 제약은 점점 심해질 겁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데, 첨단 제조 능력을 갖추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이제는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세계의 정치적 패권 다툼이라는 태풍의 눈의 중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미국은?
중국은 2015년부터 ‘중국제조 2025’를 내걸고 반도체 자립에 나섰습니다. 15% 수준이던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이겠다며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라는 복병을 만나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화웨이가 신형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 것은 이런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반도체 자립에 대한 투자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또 미국도 태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자급자족이 아니라 국제분업을 경제원리로 삼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도 반도체 공장을 자국에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TSMC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유치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지요.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기조를 더욱 강하게 밀어부칠 것 같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라며 행정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이런 현상을 유라시아 그룹의 폴 트리올로 박사는 ‘붉은 공급망(중국) 대 푸른 공급망(미국)의 대결’이라고 부릅니다. 유럽 연합도 300억 유로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서 2030년까지 회원국 영토 내에 첨단 공정의 파운드리 공장을 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을 완전히 배제한 산업을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세계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시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팔지 못한다면 서방의 반도체 기업들이 매출이 줄어 위험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서, 수요가 폭발한 결과 오히려 반도체가 없어 못 팔 지경이 되어 버린 겁니다. 경제적 타당성이 높아지는 만큼 중국을 배제한‘푸른 공급망’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한국의 반도체는 어디로 
그러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늘 그렇듯이 중국과의 관계가 어렵습니다. 한국은 중국에 엄청난 금액의 반도체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2020년 1~7월 사이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225억달러로서 반도체 수출 총액의 41.1%, 홍콩에 대한 수출은 1145억 달러로서 20.8%입니다. 이 둘을 합치면 중국을 향한 반도체 수출 총액의 62%에 도달합니다. 이것을 끊어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미국은 과연 삼성전자와 SK Hynix가 중국 시장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까요? 1년 남은 현 정권은 과연 한국 기업들이 붉은 공급망을 떠나 푸른 공급망에 전념하도록 할까요? 어떤 것도 답을 예측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반도체에서 비롯된 다양한 차원에서 커다란 시련의 파도가 밀어닥칠 것 같습니다.  

 

  김정호(서강대 겸임교수,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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