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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발레음악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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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발레음악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백조의 호수>보다 더 사랑받았던 발레곡 <불새>
현재 발레곡 하면 누구나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쉽게 떠올립니다. 지금은 대중으로부터 가장 널리 사랑받는 아름다운 곡이지요. 그런데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와 유럽에서 이 곡보다 더 호평을 받았던 발레곡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입니다. 


러시아적인 발레음악으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다
뾰또르 대제 이후 러시아는 서유럽문화를 열렬하게 흡수하고자 했고, 예술에 있어서는 으뜸이 되는 프랑스에서 발레를 배워왔습니다. 그렇지만 20세기 초가 되자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 ‘발레뤼스’는 러시아식 발레를 프랑스로 역수출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요. 마침 당시의 프랑스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기존 발레에 식상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는데, 신생 러시아 발레가 그것을 채워줄 듯이 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발레뤼스가 기획한 것이 바로 <불새>입니다. 러시아적인 발레를 만들기 위해 러시아 전통 민담에서 신비감을 주는 ‘불새’라는 소재를 일부러 가져왔고, 러시아 최고의 안무가인 ‘니진스키’가 여기에 맞는 새로운 동작들을 창조해내었습니다. 또 ‘박스트’와 ‘베누아’라는 탁월한 러시아 예술가까지 가세해 경이롭고 장식적인 무대 디자인까지도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발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발레곡’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디아길레프가 그토록 원하던 러시아적인 발레곡을 만들어 줄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거지요. 그러던 차에 스트라빈스키의 <불꽃>을 듣고 즉시 그토록 원했던 러시아의 불새를 프랑스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스트라빈스키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의 일생일대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당시 스트라빈스키는 무명에 가까운 러시아 작곡가였지만, 그는 <불새>를 시작으로 <페트루시카>, <봄의 제전>으로 이어지는 3대 발레곡으로 한 순간에 스타 작곡가로 유럽무대에 화려하게 등극합니다.


무엇이 러시아적인가?
 스트라빈스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그의 발레곡은 어떻게 러시아를 대표할 수 있었을까요?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5인’이라 불리는 국민파 음악가의 한 사람인 림스키코르사코프로부터 작곡을 배웠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세헤라자데>를 작곡한 그 작곡가 말입니다. ‘이 곡을 듣고 그 아름다움에 심취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갈 필요가 있다’라고 평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 아닌가요? 그런데 러시아 국민파 음악가들이 광활한 초원과 대지에서 펼쳐지는 동양적이고 서정적인 정서에서 주로 러시아적인 것을 찾았다면, 스트라빈스키는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열심히 추구해나갔습니다. 


동양의 폭력적 원시성과 이교적 종교에서 정체성을 찾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적인 것을 동양의 원시적 생명력에 있다고 확신했기에 러시아의 고대문헌인 <원초연대기> 등에 기록된 이교의 제사의식을 참고했습니다.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이교적 색채의 제사의식은 당시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쳐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도 스며든 소위‘이중신앙’이라 일컬어지는 변형된 기독교인 러시아 정교회적 요소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스트라빈스키의 회상록을 쓴 작가가 ‘러시아의 무엇을 가장 사랑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스트라빈스키는 ‘폭력적 러시아의 봄’이라 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불새’에서 러시아의 대지 전체를 집어삼키는 봄의 과격한 형상을 이미지화한 것입니다. 아마 이런 과격하고 폭력적 이미지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정서였을 겁니다. 중국과 함께 고려도 가진 ‘따따르의 멍에(1240~1480)’라 불리는 몽골(킵차크 한국)의 동양의 폭력적 지배도 러시아인들의 역사적 기억 속에 새겨지고 전수되어 그의 음악에도 형상화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스트라빈스키는 이런 신비주의적이고 관능적이며 야만적이고 동양적으로 여겨지는 원시성을 작품의 전면으로 끌어내었습니다. 20세기 초,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 대파국인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던 서유럽인들은 이런 러시아의 원시성에 즉각 매료되었지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은 결국 프랑스를 위해 만들어진 것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불새>, <페트루시카>를 통해 두 번의 성공을 경험했습니다. 그 다음 곡인 <봄의 제전>에서는 러시아 초원에서 유목민족들과 벌이는 전쟁을 연상하게 만드는 파괴적 춤사위를 통해, 법의 부재와 같은 혼동을 드러내며 인간 문화의 원시성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서유럽인들은 <봄의 제전>에 매혹될 뿐 아니라 정반대로 공포도 경험하면서, 러시아적인 것이 자신들과 이질적인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봄의 제전>은 유럽 청중들 사이에서 엄청난 혼돈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쩌면 디아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는 이런 점을 노렸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에서 유럽인들은 전 세계를 혼란가운데 몰아넣을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을 휩쓴 전체주의(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광란을 미리 쓰라리게 맛보았을 겁니다. 당시 유럽문화의 중심이었던 프랑스가 이런 러시아 발레에 열광했던 또 다른 이유는, 프랑스 민족이 가진‘문명과 야만(혁명성)의 이중적인 모습’을 싫지만 정직하게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의 봄의제전 습작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은 결국 러시아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프랑스가 기대했던 문화적 원시성과 폭력성을 러시아인들의 기억 속에서 더듬어 찾아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19세기 말을 거쳐 20세기 전반을 통해 낭만파, 국민파를 거치면서 현대음악을 주도했던 이들이 바로 러시아 음악가란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생체신호전문 스타트업 ㈜바딧 
CSO/VP 추광재

caleb@bodit.co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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