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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진리와 다양한 해석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vs. 조르주 루오의 [부상당한 광대]

2021년 10월호(14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1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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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니즘Russianism 연구 - 러시아 미술]

 

      하나의 진리와 다양한 해석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vs. 조르주 루오의 [부상당한 광대] 

 

한 민족의 특이성은 그들이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대표적인 3대 표현방식(문학,음악,미술)을 통해 깊은 내면세계를 드러냅니다. 한국인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좁아지는 지구에서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려면, 북쪽에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생소한 러시아인들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이들의 조상들이 남겼던 표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로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일한 실체를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 어떻게 보고 표현하는가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 ‘러시아음악’을 다루어왔지만, 이번에는 ‘러시아미술’을 다루고, 점차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문학’도 살피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는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15세기의 위대한 이콘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가 남긴 [삼위일체]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콘을 프랑스가 존경하는 화가인 조르주 루오(1871~1958)가 같은 주제로 남긴 작품이자 삼위일체를 묘사한 [부상당한 광대]와 비교해서 소개하려 합니다. 그리고 매우 위대한 이 두 작품이 가진 한계를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두 작품은 동일한 주제이자 하나의 진리인,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재현하는 일에 각각 다른 창조적 방식으로 성공했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하나님을, 그것도 세 분 모두 등장하는 그림이 매우 드문데, 그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형상화하는 작업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작가는 그것에 성공하여 이 그림들을 자세히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줍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삼위일체]

1420년대, 목판에 템페라, 142x114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먼저 러시아인들이 사랑하는 위대한 작가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구약성경(창세기 18장)을 기초로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방문자의 모습을 한 천사들로 삼위일체를 그렸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그의 선배인 페오판 그렉이 같은 성경구절에 근거하여 그린, [삼위일체](1378년, 프레스코, 일린 거리의 ‘구세주교회’, 노브고르드)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그는 선배와 같이 작업하면서 인간과 함께 임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도전이 되는가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가 선배의 어깨 위에 우뚝 올라선 창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오히려 정반대되는 내용을 담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렉의 그림에서는 중앙의 천사(아마 성부 하나님)가 날개를 양쪽으로 길게 펴고 있으면서 사건 전체를 주관하는 듯한 권위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대로 오른쪽 아래의 여자(아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매우 겸손하게 그려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루블료프는 이것을 완전히 다르게 재창조했습니다 : 
첫째, 정면에서 쳐다보는 천사를 그린 그랙에 비해, 세 천사 모두 고개가 약간 옆으로 수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물론 중앙에 앉은 천사가 성부이겠지만, 사실 세 천사 중에 누가 성부,성자,성령의 각 위격인지 선명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옆으로 고개가 수그러진 하나님은 ‘하나님의 겸손’을 의미하는 데, 이는 러시아정교회가 자랑하는 하나님의 ‘케노시스’kenosis(자기비하) 신학에 충실한 것을 드러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자기를 비워 역사에 임재하신, ‘성육신’(incarnation)하셨음을 나타냅니다.   
둘째, 루블료프는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특이한 미술기법인 역원근법을 사용했습니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서유럽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원근법’은, 나로부터 사물이 멀어지면 종국에는 하나의 소실점이 되어 사라집니다. 그런데 ‘역원근법’은 그 소실점의 방향이 180도 바뀌어 바로 나 자신을 향해 돌진합니다. 또 세 천사가 앉은 탁자는 삼각형인데, 그 삼각형의 꼭지가 그림을 바라보는 나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서방교회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과학적 원근법’으로 그린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관찰하고 심지어 평가하려고 까지 할 위치에 올라서려는 교만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런 신학적 역원근법으로 묘사한 동방교회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마치 나를 정면에서 손가락으로 지적하는 듯, 이 그림을 바라보는 ‘너’는 이런 분을 만났느냐, 경험하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셋째, 그렉의 그림에 비해, 루블료프는 인간(아브라함이나 사라)을 넣지 않았습니다. 물론 세 천사로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시간적,역사적 중요성은 크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리지 않았고, 단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만을 강력하게 묘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화가이자 수도사인 루블료프는 하나님과 함께 인간을 그린다면,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혹시라도 그림을 보며 - 서양인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처럼 -‘객관적’이라는 명분으로 하나님을 시건방지게 관찰하는 존재가 될 것을 극도로 경계한 것일 겁니다. 겸손하게 역사에 하강해서 내재하시지만, 실상은 역사를 초월하신 하나님이 본래의 모습임을 전달하려는 것 같습니다. 
넷째, 이렇게 ‘초월적’인 모습을 띄기는 하지만, 사실 이 그림은 그 당시 러시아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서 ‘역사내재적’인 메시지를 당대의 러시아인들에게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이 그림은 몽골족인 따따르가 러시아를 오랫동안 지배한 240년(1240~1480)의 후반부(약 1420)에 그려졌습니다. 천하무적인 몽골제국의 동쪽 끝에 있던 원제국의 멸망과 함께, 그 서쪽 끝에 있던 킵차크칸국의 따따르는 꿀리꼬보 전투(1380)에서 돈스꼬이에 의해 격파된 이후, 점차 세력을 잃어갔습니다. 앞으로 60년 후면 모스끄바는 완전한 독립과 함께 엄청난 팽창을 할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이 그림의 의미는, 흔히 해석하듯이, 단지 따따르의 압제에 신음하던 러시아인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이것은 끝에서 다루어 봅시다.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부상당한 광대] 

1932, 캔버스에 유채, 199x73cm, 뽕삐두 센터


루블료프보다 약 5세기 뒤에 살았던 조르주 루오는, 그가 가진 신학적,실천적 확신을 매우 독창적 방식으로 그려낸 화가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여겨지던 ‘창녀’와 광대’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 중에 이번 작품의 제목은 [부상당한 광대]인데, 사실 여기의 세 광대는 삼위일체를 의미합니다. 먼저 중앙에 위치하고 중간 키의 부상당한 광대는, 머리가 옆으로 완전히 꺾인 채 눈을 감고 큰 광대에게 부축되어 이끌려갑니다. 오른쪽의 큰 키의 광대는 눈을 지긋이 감은 채로 어떤 방향을 향하여 둘째 광대를 부축하고 인도하며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편의 가장 작은 키의 광대는 힘을 쓸 수 없으니 손이라도 둘째 광대에 받쳐서 같이 걸어갑니다. 하지만 근심이 가득하여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그가 얼마나 이 사건을 애타해 하는지를 잘 그려냅니다. 조르주 루오가 이 그림을 통해 보여준 창조성(독창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통을 지고 가는 세 광대는 먼저 인간의 죄와 악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발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의 금령을 극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일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성육신하시고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간에 있는 둘째 광대로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고 운명하신 후, 사람에 의해서 내리워져 다른 사람의 돌무덤에 안치되신 예수를, 스스로 설 아무 힘도 없이 인도되어가는 모습으로 아주 실감나게 잘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인간들을 다시 아버지 품에 돌리려고, 인간 대신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분리되신 성자 예수를 나타낸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고함침으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가 가장 큰 고통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제 극단적인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그 고난을 같이 지시고 인간 역사를 완전히 세우실 성부 하나님을, 공중에서 떨어져서 부상당한 둘째광대를 부축하여 눈을 감고 어디론가 이끄는 가장 큰 키의 첫째 광대로 묘사합니다. 이어서 왼편에서 걱정이 가득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첫째와 둘째 광대를 올려다보는 가장 작은 셋째 광대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사역 이후에 우주와 역사에 편만하게 존재하실 둘째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당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며, 오직 예수와 그 이름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의 현재에서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셋째,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매우 위험한 중간기(1932)에 그려진 이 그림은, 그의 다른 그림과 함께 역사의 고통스럽고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아주 오래되었으나 언제든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즉 모든 종류의 죄와 악이 들끓었고(1차대전) 또 곧 폭발할 것인데(2차대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두 작품은 각각의 역사가 주는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나?

첫째, 이 두 그림 모두 그 근거였던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자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루오’의 그림은 서방교회가 가진 기초인 위계적(서열적) 삼위일체론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세 광대의 선명하게 차이가 나는 키에서 우리는 루오가 속했던 서방교회의 위계적 신학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법과 질서를 무척 좋아하던 고대 로마인의 경향을 이어받은 서방교회(로마교,개신교)는, 삼위 하나님 사이에 명쾌한 구조적 서열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 속에서 참여하는(‘나오시는’) 것을, ‘성부로부터’ 그리고 ‘filioque’(아들과 함께)라는 단어를 - 동방교회가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개념 - 반드시 넣어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서열’ 대신 하나님 상호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방교회와 완전히 결별(1054)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는 승천하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선언하며,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앞으로 매우 클 것이며, 제자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심지어 스승인 자기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을 예언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은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대신 예수만 역사에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루오가 이렇게 성령을 가장 작게 표현한 것은, 서방교회가 균형있는 삼위일체론 대신 구원역사를 완성하신 성자 예수와 미래 심판을 완성할 성부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보는 ‘일그러진 삼위일체론’에서 출발한 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1,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 악이 오랫동안 횡행할 때 성령에 의지해서 역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무책임한 교회가 되고 만 겁니다.   
반면에 대조적으로 ‘루블료프’의 그림에서는 세 사람 중 누가 성부,성자,성령인지가 선명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를 중시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관계와 교통은 피조물인 인간계의 절대적 모본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동방교회(비잔틴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삼위일체의 최초의 시작점인 ‘성육신’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한계에 머물렀습니다. 성자 예수는 모든 사역을 완성하셨고(과거), 성령 하나님은 그 사역을 우주와 역사에 적용하고 계시고(현재), 성부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마감하시고 심판하시는 그 거대한 드라마의 사역(미래)에 비하면, 성육신이란 단지 첫발을 뗀 걸음마에 불과한 겁니다. 즉 성육신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는 부활절,오순절,장막절이 있기 위한 예비적 절차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의 매우 긴 잔혹스러운 역사를 해결할 능력이 교회 속에 있을 리가 없던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종교는 신자 개인의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매우 위축된 상태에 머문 겁니다.    
   
둘째, 동방교회나 서방교회 모두 ‘서열’이든 ‘관계’든 초월만 있고 역사에 침투하여 변혁시키는 능력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은 과연 각 시대 역사의 도전을 극복하도록 보는 이를 자극하고 격려했느냐고 질문해 본다면, 결론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두 탁월한 예술가 본인들에게 있지 않고, 이들이 섰던 종교적 기초 자체가 한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즉 루블료프가 근거했던 동방교회나, 조르주 루오가 귀의했던 서방교회의 하나인 로마교 모두, 현실 역사, 특히 문명의 처절한 파괴를 극복할 능력이 있을 수 없는, 이원론적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이 두 교회 모두 4~5세기의 신학자인 어거스틴(354~430)이 가졌던 신플라톤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325)한 이후, 이미 서구에 편만했던 (신)플라톤주의적인 ‘이데아’ - ‘현실’을 구분하는 철학적 이원론은, 자연스럽게 ‘신의 세계’(신의 도시)- ‘세속사회’(세속도시)를 구분하는 종교적 이원론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런 이원론의 기초를 어거스틴은 그의 대작인 ‘신의 도성’(약 430년)에서 놓았습니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는 인간의 총체적 역사에 그 어떤 고통과 파멸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성육신,죽으심,부활하심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했듯이 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간적’으로는 예배당,수도원으로, ‘시간적’으로는 주일과 새벽으로만 철저히 쪼그라들었으며, 사람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그리고 우주와 역사에 그 어떤 사회적,문화적,역사적 기여도 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먼저 루블료프에게는 당시의 러시아 전체의 지배자 따따르의 압정도 문제이지만, 신흥강대도시 모스끄바 대공들의 연속된 폭정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사실 따따르는 점령할 때는 매우 흉포스럽고 파괴적이었지만, 모든 지역을 직접 다스리지 않았고 통치전권은 모스끄바의 대공에게 맡겼습니다. 그 속에서 모스끄바의 대공들은 러시아인들을 수탈하여 거둔 수확을 따따르에게 바치는 세리와 같은 교활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지배와 통치는 매우 폭압적.수탈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곤봉으로 때려죽이므로 결국 후계자조차 남기지 못한 채 가문까지 끝장낸‘살벌한 이반뇌제’(Ivan the Terrible 1530~1584)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공들은 철저한 전쟁광,영토광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루블료프의 탁월한 이콘화가 수탈당하는 백성들을 위로했다면 그 종교적 차원은 아주 좁은 개인의 마음속으로 쪼그라든 것이었을 겁니다. 이 위대한 화가가 속했던 동방교회 자체가 가진 이런 ‘신플라톤주의적 이원론’ 때문에,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그 어떤 실질적 조언을 황제나 대공에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방교회인 로마교의 교리 자체는, 1,2차 세계대전을 앞뒤로 두고 고통을 받는 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황 피우스 11세는 단지 교회의 외적 보존을 위해 히틀러 정권 초기에 그와 어리석은 협정(Reichskonkordat 1933)을 맺을 정도로 ‘수동적’이고 ‘도피적’이었습니다. 이런 로마교에 귀의한 루오는 그 이원론적 신학(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며, 양차대전 사이의 전운이 감도는 시기에 단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통만 묘사하여 개인적 차원에서 위로하는 단계에 머물고 만 것입니다. 멸절수용소에 끌려가면서 이 그림으로 개인적 위로를 마음에서 받은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괴물로 변한 악한 정치를 끝장낼 원리,체제,시스템,제도,법,교육 등을 창조하여 선한 정치를 이룰 사람들을 만들 수는 없었던 겁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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