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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

2021년 12월호(14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 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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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36]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

 

테니스에서 한 해 동안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을 ‘캘린더 그랜드슬램’이라고 한다. 세계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는 지난 9월에 열린 US오픈 한 번만 이기면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의 패기로 똘똘 뭉친 랭킹 2위 매드베데프와의 경기는 쉽지 않았다. 메드베데프의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에 밀려 두 세트를 내리 지고 끌려가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도 5대 2까지 벌어졌다. 이후 가까스로 두 게임을 연거푸 이겨 5대 4까지 쫓아가고 있었다. 팬들의 열화같은 환호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갖던 조코비치는 땀을 닦던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왜 울지? 역전할 수도 있는 순간인데, 이길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힘없이 무너지는 황제를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운 듯 했다. 결국 조코비치는 세 번째 세트를 내주고 ‘캘린더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했다. 나는 그날 경기의 결과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던 조코비치의 눈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코비치가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하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코비치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코비치는 그 순간이 바로 자신이 정점에서 내려와야 할 때라는 것을 안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자신도 매드베데프처럼 수많은 테니스 스타들을 물리치고 천하를 호령했던 것처럼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1등도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인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루시드 폴은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인디 음악계에서 인기 있는 싱어송 라이터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오고 스웨덴 왕립공과대학에서 석사를 받고 스위스 로잔연방대학교에서 박사를 취득한 그는 아마도 TV에 출연하는 연예인 중에서 가장 학력이 화려한 가수가 아닐까 싶다. 네이처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던 그가 학업을 마치고 제주도로 낙향한다. 지금은 더 이상 과학계에서 일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루시드 폴에게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당신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향해 더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루시드 폴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기차에 함께 타고 있는 거라면 이쯤이 내가 내려야 할 때가 아닐까? 목표를 달성하는 건 나보다 더 기회가 많고 실력이 많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요.”


우리 사회는 지금 계층별, 연령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갈등이 첨예해서 하나로 힘을 모으기가 어려운 때인 것 같다. 어찌 보면 개성이 중시되고 각자의 생각이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라고 해석 할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권력과 기회를 독점한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이양하지 않고 독식한다고도 하고, 기성세대는 무엇 하나 진득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못미덥다고들 한다. 분야마다 비슷한 상황이 되어 정치 쪽에서는 이러한 갈등을 이용해 표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내세우기도 하는 현실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람들은 언제 후계자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한 기회를 주어야 할지, 젊은이들이 그런 리더십을 갖도록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했던 노욕에 가득 찬 기성세대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권력은 십년을 가지 못하고 꽃은 열흘을 붉지 못하다’는 뜻으로 권력, 부, 젊음 등 그 어느 것도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은혜’와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리 아닐까? 조코비치나 루시드 폴 같이 젊은 사람들도 자신이 내려올 때를 알려 하는데 하물며 지금 기성세대인데도 여전히 현역에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내려올 때가 언제인지, 내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다, 아직은 한참 후배들을 위해 일해 주셔야 한다고 부추겨도 스스로 살펴서 노욕으로 눈이 어둡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파이가 크지 않고 기회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그런 자세는 더 필요하다. 


참고로 조코비치는 비록 ‘캘린더 그랜드슬램’에는 실패했지만 11월에 치러진 파리 마스터즈 단식에서 우승하여 투어마스터스 100시리즈 대회에서 3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다 우승을 기록했다. 루시드 폴은 손수 키운 귤을 홈쇼핑에서 판매하여 완판이 되었고 루시드 폴의 귤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회의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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