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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미인도> 속 ‘물(物)’의 정체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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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8]

신윤복 <미인도> 속 ‘물(物)’의 정체

 

당기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밀어내면 아주 가버릴지도 모른다. 
<미인도>가 그렇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나를 끝없이 끌어당긴다. 가슴 언저리 노리개를 매만지는 손길, 다른 한 손은 옷고름을 잡고 있다. 당기기만 하면 풀어질 듯하다. 치마가 내려갈까 눈길을 아래로 두니 한쪽 발을 밖으로 내밀고 있다. 마치 나에게 오라고 하는 듯이.
뭉게구름 모양의 트레머리를 한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구름을 뚫고 내려온 선녀 같다. 짙은 머릿결에서 이어지는 목선에는 잔잔한 솜털이 그려져 있다. 가슴, 발, 머리, 목, 눈길을 둘 데가 없다. 한없이 당겨대는 그녀 앞에 나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미인’은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 이렇게 서 있을까? 이제 미인의 마음을 볼 차례다. 마음은 얼굴이다. 이를 보는 순간 멈칫한다. 무슨 표정일까? 알 수 없음에 밀쳐진다.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끌어당기면서 밀어내는 묘한 그림이다.
《삼국유사》에는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를 요염하면서 아름답다는 의미로 ‘미염무쌍(美艷無雙)’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끌어당기는 요염함만 있어서는 부족하다. 알게 모르게 밀어내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미인도 한쪽에 쓰인 혜원의 화제(畫題)에도 밀당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보이는 글자만 봐서는 안 된다. 화제에는 보이지 않는 글자가 숨어 있다. 우선 보이는 글은 다음과 같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선생님의 번역문을 옮긴다. 


盤礡胸中萬化春(반박흉중만화춘)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물전신)
화가의 가슴 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


보통 첫 구의 반박(盤礡)은 화가, 두 번째 구의 물(物)은 만물, 전신(傳神)은 초상화라고 해석된다. 전신은 그려진 사람의 보이지 않는 정신까지 그리는 일을 말한다. 혜원의 그림 모음집 이름인《혜원전신첩》의 ‘전신’도 이 뜻이다. 반박은 좀 어려운 말이다. 이는 다리를 마음대로 뻗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글자 앞뒤로 숨어있는 글자가 있다. 반박이라는 글자 앞뒤로 옷을 벗는다는 의미의 해의(解衣)와 벌거벗을 라(臝)를 덧붙여보자. 해의반박라(解衣盤礡臝)가 된다. 여기서 (해의)반박은 곧 화가를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송나라 원군이 화가들을 뽑았다. 그 중 한 화가가 시간도 안 지키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괘씸히 여긴 원군은 화가를 살펴보라 했다. 그 화가는 옷을 벗고 다리는 마음대로 뻗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군은 다른 화가들은 모두 물리치고 그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해의반박라’는 구속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혜원이 반박이라는 글자 앞에 쓰지 않고 숨긴 글자가 바로 이 ‘해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옷을 벗었고 그림 속 미인은 옷고름을 매만지고 있다. ‘해의’라는 글자를 숨겨 벗은 모습을 상상에 맡겼다. 알고 보면 신윤복은 화제의 첫머리부터 확 끌어당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밀 차례다. 화제의 두 번째 구에도 숨어 있는 글자가 있다. 물(物)앞이다. 이 앞에 어떤 글자가 숨어있는 지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분분하다. 만(萬)자를 붙이거나 인(人)을 붙여 만물(萬物) 혹은 인물(人物)의 초상화라 해석했다. ‘인물의 신정(新情: 새로 사귄 정)을 전하도다’, ‘대상을 전신할 수 있게’라고 풀기도 한다. 나는 물(物)을 우물(尤物)의 줄임말로 보고 싶다. 우(尤)는 ‘더욱’, ‘뛰어난’ 또는 ‘지나친’, ‘나쁜’이란 뜻으로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어리석은 남자들이 한 번 우물(尤物)에 빠지게 되면 마음을 잃고 몸을 망친다며 당시(혜원과 같은 시대) 세태를 비난했다. 《악학궤범》, 《용재총화》등을 쓴 문신 성현은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물(돈, 술 등의 사물을 지칭)에 빠지면 뜻과 덕이 상하게 된다. 물에 잠시 머물 수는 있지만, 만약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병이 된다. 그러나 이는 우물(미인을 뜻함)에 비할 바가 못 된다.’-《성종실록》10년(1479) 9월 5일


미인도는 미인을 보라고 말하면서도 우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그림인 것이다. 혜원이 화제 첫 구의 반박 앞에 ‘해의’를 숨겨 끌어당겼다면 두 번째 구의 물 앞에 ‘우’를 숨겨 밀어내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화제 속 숨겨진 글자 해의(解衣)와 우(尤)는 서로 밀당을 하고 있고 그림 속 미인의 손놀림과 얼굴의 표정도 밀당을 하고 있다. 그림과 글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미인도를 다시 본다. 나보고 오라는 것일까? 가라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미인도 글에 대한 나의 해석을 붙여본다.


盤礡胸中萬化春(반박흉중만화춘)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물전신)
벌거벗은 화가 가슴 속 봄정이 솟아나
붓끝에 우물 미인의 마음까지 담았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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