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를 생각한다.
[김단혜 에세이] 봄, 나를 생각한다. 창문을 연다. 이제야 나는 나를 생각한다. 왜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끔, 긴 호흡으로 누군가를 향해 중얼거리는 것에 대하여. 외로운 날이면 크리스탈 핑크빛 립스틱을 바르고 책의 속살을 만지러 나만의 다락방으로 간다. 앉은뱅이 책상을 베고 누워 종일 햇살과 뒹군다. 책꽂이에서 곰팡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인 책을 펼친다. 글자들이 한 줄로 서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입구가 좁은 병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속에 있다. 병 속에도 있고, 먼지 속에, 그리고 미끄럼틀 위에도 있다. 나는 글자가 되었다가 책이 되었다가 햇살이 되기도 한다. 현란한 꽃들의 나부낌. 견딜 수 없음을 막무가내로 버티던 날들이 있었다. 바쁠수록 더 한가롭던 날들. 산다는..
2019년 3월호(제113호)
2019. 4. 21.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