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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2022년 4월호(15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4. 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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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이사 갈 때마다 싸매고 다녔던 대학교 전공책을 미련 없이 싹 다 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언어들에 관심이 있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막상 언어를 전공으로 선택하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커져 즐겁게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시험에 대한 압박감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하며 피 말리듯 했던 통번역 대학원 시험에 낙방을 하고서는 다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실망시켰다는 자책감과 다시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강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저는 다시 빨리 일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갓난아이를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몇 년간 육아에만 전념해야 했습니다. 결혼 초반 남편은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해 자주 옮겨 저희의 생활은 매우 불안정했어요. 게다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니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로지 저의 몫이었죠. 새벽마다 깨어 우는 아이를 홀로 달랠 때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직장 가서 일해야 하니 잠이라도 편히 자게 해야지’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일 핑계로 매일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잠만 자려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명절이나 가족 모임마다 “누구누구 며느리는 이번에 직장에서 승진했다더라.” , “너는 일을 안 할 생각이냐?”라고 말씀하시는 시부모님에게는 ‘내가 딸이었어도 저렇게 말씀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도 했지요. 직장 생활을 하는 시누이가 부럽고 질투도 나고, 남들은 어떻게 직장생활도 하며 아이도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자꾸 비교가 되어 제 자신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자신이 미워지니 거울 보기도 싫고, 음식도 아무거나 대충 먹었습니다. 코로나로 어디를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아이와 점점 집에만 있다 보니,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지내다 마음도 몸도 망가져 건강도 잃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새로운 일 시작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나만 도태되는 것 같고, 막연한 불안감과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너무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해야 했습니다. 내가 왜 그런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주변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뭔가를 이루어가는 친구들을 보니, 새로운 일들을 찾아 꾸준히 도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반해 저는 안 될 이유를 너무 많이 찾고 있더군요 ‘나는 이래서 안돼, 지금 할 수 없어, 하다가 금방 포기할지 몰라…’

지금은 아들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배웁니다. 아들은 틀려도 말을 하고 단어의 뜻을 몰라도 재미있어 하는데, 저는 틀리면 안 된다고, 모르는 단어는 다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깊은 내면에서부터 하고 있으니, 시작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들처럼 틀려도 말을 해봅니다. 아들에게 틀려도 된다, 언어는 재미있는 것, 하나씩 알아 가면 된다고 알려주지만 실은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죠. 삶의 자세를 바꾸어야만 삶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깨달으니 조금씩 용기가 생깁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일 아침 오늘의 할 일을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노트에 기록한 날은 기록하지 않은 날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도 남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운동을 해보니 내 몸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훨씬 실감하게 됩니다. 내 자신을 이렇게 돌보지 않았다니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세 번째는 공부를 시작한 일입니다. 아직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그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저에게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는데 저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해서 새로운 직업을 찾고, 여러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격려가 되더군요. 마지막으로, 저는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저의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사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을 현재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성공, 보여지는 커리어를 이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삶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하고, 아주 작은 첫발을 내딛는 지금이지만,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코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육아로 오랫동안 휴직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하는 주부들,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함께 꿈을 꾸고 이루어가자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화성 동탄 신도시 김해수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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