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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바라보는세상이야기

2022년 4월호(15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4. 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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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예쁜 글씨 쓰고 싶어서!! 이다
나는 악필이다. 어릴 적부터 학창시절 내내 아니 성인이 되어서까지 악필 콤플렉스는 늘 나를 따라다녔다. 어째서 내가 악필이 되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잘 모르겠다. 다만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에게 글씨 못 쓴다는 핀잔과 꾸지람을 끊임없이 들어왔을 뿐이다. 나도 나름대로 애써왔다. 큰마음을 먹고 예쁜 글씨로 교정하는 책을 신청해서 다달이 받아보았다. 하지만 처음 글을 배우고 깨우치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도 아니고, 혼자서 그 지루한 정자체 글씨를 수없이 반복하며 따라 쓴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과는 몇 번 쓰다 말고 마치 다달이 쌓여가는 문제집 같은 책들에 엄마에게 돈만 버렸다는 꾸지람만 수년간 듣게 되었다. 혹 조금이라도 도움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예 교실도 다녔다.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한글이 아닌 한문반으로 등록하게 되었고 장시간 꾸준한 반복연습이 필요한 지루한 일에 별 성과도 얻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은 꽤 중요하다. 첫인상이 반드시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첫인상이 좋으면 한 번 만날 일이 두 번 되고 두 번 만날 일이 세 번 되어 개인적으로는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고, 사무나 업무적으로도 더 탁월한 성과를 내기에 좋은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또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바랄 것이다. 글씨도 마찬가지이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라 했던가. 글씨의 모양과 형태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됨됨이 또는 성격유형까지 파악되는 기분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일그러지고 삐뚤어진 나의 글씨체가 첫 만남에 나의 성격, 인품 등 모든 것을 대변해주는 듯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감추고 싶은 일종의 콤플렉스가 되어왔다.

아, 얼마나 부러웠던가! 학창시절 글씨 잘 쓴다고 선생님에게 칭찬 받고 호명을 받아 칠판 앞에 나가서 또박또박 학습내용을 적는 아이들. 그 당시 선생님만큼 큰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그 아이들의 글씨를 따라서 공책을 메꾸어 나갔고 선택받지 못한 서글픔과 상대적으로 초라해진 내 모습에 알게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 얼마나 감사했던가! 대학시절 그 많던 과제물 제출들이 손글씨가 아닌 컴퓨터 키보드로 두드리고 이리저리 마우스를 사용했음을. 글씨의 익명성이 보장되고 똑같이 획일화되어 나의 글씨를 감출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다행으로 여겼다.


아, 얼마나 낙심했던가! 남자들의 연애편지에 나의 대답이 Yes든 No든 답장을 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참 곤혹스러웠다. 삐뚤삐뚤 글씨를 보여주어 나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결혼하여 나의 아이에게 반듯한 글씨를 가르치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모범을 보여주는 엄마이고 싶다. 이렇듯 글씨는 어린 시절부터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내 삶 곳곳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와 관계하고 있다. 
그러면 왜 왼손일까? 오른손으로도 글씨에 대한 우여곡절이 많은 내가 어떻게 왼손으로?

 

왼손 글씨


이유는 아주 명료하고 단순하다. 똑똑해지고 싶어서!! 이다
오른손은 논리적·언어적·객관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좌뇌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도표나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명확한 답이 나오는 글에 더 친숙하고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에 나오는 많은 예술가들이 왼손잡이였음이 떠올랐고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왼손 발달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왼손을 쓰면 뇌기능이 좋아지고 좌뇌와 우뇌의 균형적인 발달과 더불어 치매예방까지 된다고 하니 ‘나도 한번?’하고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왼손발달에 대한 모호한 경외심과 선망, 부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왼손일기를 써 온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만일 왼손으로 ‘일기’가 아닌 다른 정자체 등의 글씨를 단순히 베끼는 일을 반복했더라면 이렇게 꾸준히 해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날 그 날의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 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여행 이야기, 희노애락의 다양한 감정들과 감사함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은 나에게 하나의 치유가 되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에 위안이 되고 평안이 깃든다. 
오늘도 나는 왼손일기를 쓴다. 

 

충북 청주시 이윤주
yupo78@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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