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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받는 취임식을 기대하며

2022년 6월호(15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7. 1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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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6]

 

감동받는 취임식을 기대하며

 

 주변이 어느새 연두에서 초록으로 물들었다. 아름다운 날씨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이했고 새 정권의 취임식을 볼 수 있었다. 취임식을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엔 쇼 엔터테인먼트, 공식행사 등을 전문으로 연출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행사 같은 것은 여러 비서관들이 직접 또는 외부 전문가와 함께 만들 것이고 대부분 이전에 했던 방식에 덧대거나 빼거나 해서 비슷한 모양새의 행사를 만드는 것 같다. 큰 기대를 한 취임식 연출은 아니었지만 뭔가 가슴 깊이 뿌듯하고 멋지다는 느낌이 드는 행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의 목표는 최고의 스테프들을 모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가끔 공연 못지않게 각종 부대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직접 가 보았거나 경험해 보았거나 외신을 통해 접했던 비슷한 행사를 떠올리며 격식과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규모 있는 행사의 구성·연출 등을 공부하기에 좋은 자료는 올림픽 개회식이다. 꽤 오래전부터 올림픽 경기는 놓치더라도 개막식은 챙겨보고 있다. 개최국의 문화수준을 뽐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고 자국의 전통과 발전 가능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유명하고 실력 있는 연출가가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게 되어있다. 그간의 올림픽 개막식을 돌이켜보면 예술적으로 뛰어났던 경우는 아테네올림픽이었고, 몬트리올올림픽에서는 문화적 빈약함을 자연으로 메우려는 느낌이 들었고, 베이징올림픽은 뭔가 등장은 많이 했지만 메시지가 기억에 남진 않았던 물량공세 올림픽이었다는 느낌이다. 그간 내가 보았던 개막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이었다.
매번 공연 이외의 부대행사나 이벤트를 만들 때마다 우리나라엔 왜 이벤트나 공식행사 연출자가 이렇게 부족할까 생각해 왔었는데 당시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그건 연출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만들어내는 사람의 문화적 자신감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템즈강변을 따라 런던의 명소를 따라가며 관객의 눈높이에서 영상으로 보여주었던 인트로 부분은 이 개막식의 연출가가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영국은 우리에게‘역사와 전통이 있는 신사의 나라’라는 선입관이 있는데 그 개막식은 그러한 고리타분한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물론 그들의 전통도 개막식에 녹여내긴 했지만 아더왕 시절부터 셰익스피어 시대를 거쳐 산업혁명까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포커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맞추고 있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영상과 실연의 완벽한 조화로 많은 소재들을 전 세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국은 문화강국답게 녹여낼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했고 그 풍부한 재료를 이용해 쉬운 전달 방법을 사용했다.

 

출처 - 중부일보


피터 팬과 J.K.롤링(해리포터의 저자)을 연결시키고 메리 포핀스를 버무려 어린이문학을 통해 어린이층을 아우르고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 경에게 감사를 표하는 챕터에서 브릿 팝을 사용한 것은 젊은 층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그 이전 세대들을 위해서는 60년대부터 힙합까지 아우르며 시니어 층까지도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렸다.
연출적인 측면을 보면 너무 많은 소재를 가져서 어쩌면 산만해질 수도 있었지만 효과적인 메세지 전달 방법을 사용했고 무엇보다도 많은 물량을 소화할 동선의 확보로 보조 무대와 메인 무대를 적절히 사용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중간중간에 문학, 스포츠, 대중가수, 영화배우들이 출연했는데 순수예술 쪽에서는 아크람 칸이 안무를 맡으며 출연을 했고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영화 <불의 전차> 테마곡을 연주했다

그 중 가장 놀랍고도 부러웠던 점은 그들의 유머감각이다. 사이먼 래틀경이 지휘를 하는데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한 미스터 빈(영국의 유명 코메디언)의 연기는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조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희화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이먼 래틀의 능청스런 연기까지. 하긴 시작 부분에 영국 여왕까지 연기를 시켰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해야 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런 연출을 하겠다고 했다면?
유머는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문화예술에 대한 풍부한 자산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런 유머도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의 성화 봉송 장면은 압권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있지 않고 앞으로 스포츠계를 이끌어나갈 16~19세 유소년 대표단에게 미래를 건네주는 상징적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초반에 소품으로 쓰이던 코드론을 성화가 점화되는 가마로 활용하고 일제히 위로 솟구쳐서 모든 불꽃을 아우르는 장면은 웃고 떠들썩하게 만든 기념식이 결코 올림픽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던 자국의 문화적 산물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완성해 냈다는 점이고 영상을 이용해 무대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렇게 길게 이미 지나간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또는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사 연출이나 무대 활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중가수가 외국 공연을 나갈 때 마땅히 무대 연출을 담당해 줄 사람이 없어서 해외 연출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무대감독이 그 역할을 겸임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K-POP 등 대중문화의 발신국답게 더 넓은 시각으로 공연문화를 바라보고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문화예술계는 그간 많이 알려진 공연기획, 전시기획자 말고도 더 많은 분야의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자신감 있고 여유로운 연출과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내러티브도 더욱 개발해서 몇 년 후엔 대한민국의 어느 대통령 취임식을 보며 감동도 느낄 그 날을 기대해본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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