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가 간 전쟁이 아닌, 이미 지나간 대륙문화(명)와 이제 지나갈 해양문화(명)의 충돌 (2)

2022년 6월호(15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20. 12:28

본문

[대륙문화(명)와 해양문화(명) 비평 2]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의 국가 간 전쟁이 아닌, 이미 지나간 대륙문화(명)와 이제 지나갈 해양문화(명)의 충돌 (2)

 

1. 1492년부터 대서양, 태평양 건너 서진해 아시아조차 정복한 해양문화(명)의 특징

지난 5백 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던 해양문화(명)을 이룬 국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12세기 이후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공화국입니다. 이 나라에서 대서양 패권을 장악하기에 유리한 지정학적으로 매우 좋은 위치에 있으면서 대서양시대를 열었던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들인 스페인 과 포르투칼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에 있었지만 패권을 장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는 30년 종교전쟁 이후에 베스트팔리야 조약으로 독립을 보장받은 후에 신흥 최고 세력으로 갑자기 부상하여 대서양과 인도양의 패권 을 장악한 네덜란드였습니다. 셋째는 세 번의 영란전쟁 이후 네덜란드로부터 패권을 이어받아 모든 대양(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지중해)을 거의 300년 동안 장악했던 영국입니다. 넷째는 1차대전 이후 영국을 이어 자연스럽게 세계의 패권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미국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어진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복목적, 전쟁방식, 군사력, 지리적 자의식 : 해군이 군사력의 주를 이룬 나라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로 육군이 주를 이룬 대륙적인 스파르타와는 여러 모로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대륙문화(명)권의 폐르샤와 의 마라톤전투(BC490)와 살라미스해전(BC480)에서 승리한 최초의 해양문화(명)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고대 지중해의 한계를 벗어나 대서양의 파도를 극복할 큰 배를 만들 능력을 갖추어, 근(현)대에서 해상문화(명)권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나라는 네덜란드에 이은 영국이었습니다. 워털루전투에서 패 배한 나폴레옹은, 자기가 아는 프랑스해군의 함선은 시끄러웠으며 정리되지 않았고 절대복종이 부족했던 반면, 승선했던 영국군함의 정숙함, 정돈됨, 일관된 명령에 복종함을 보고 탄복하였습니다. 사실 프랑스 해군이 그렇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가, 대서양에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군을 중시하는 대륙문화(명)권에 속했고 해군은 늘 미숙한 편이었기 때문입 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포탄이 날아와 주위에 혹은 자기앞에서 바로 터져도, 일정한 사정거리 안에 배가 접근할 때까지는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결코 포를 쏘아서는 안되는 절대규칙을 지킨 것이 영국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해전의 특성 때문에 이기면 완승이요, 지면 완패와 전원몰살이라는 결과가 생깁니다. 그 실례를 우리는 이순신과 히데요시의 임진왜란 해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해양문화(명)권의 궁극적 목적은 무역로와 지배권 유지를 위한 거점 확보와 긴 항해선을 잇는 것이어서, 대륙문화(명)의 전쟁목적인 영토확장, 땅 정복과는 명백하게 대비됩니다. 특이한 것은 온 지구의 바다를 휘젓고 다니긴 해도 이들 나라들의 인구수 자체가 적어도 상관이 없었다는 겁니다. 또 이들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선명하게 대양을 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네덜란드는 해양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을 가졌으며, 영국은 사면이, 그리고 미국은 동서양쪽이 각각 지구의 양대 대양인 대서양과 태평양을 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나라들이 해양-지리적 자의식을 가질 것은 자명합니다. 지구 전체를 보면 사실 육지에 둘러싸인 나라보다 바다를 면하고 있는 나라들이 훨씬 많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렇게 활용하기 좋은 대양을 자신들이 극복해야할 도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하기 불가능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서 바다로 진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거대한 대륙국가들은 정복할 땅에 집착하는 대륙-지리적 자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해양문화(명)을 주도 한 나라들은 먼저 오랜 기간동안 작은 바다인 지중해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실력을 베네치아를 통해 차근차근 쌓아갔습니다. 이어서 신대륙이 발견되자 (1492), 베네치아를 이어 네덜란드-영국은 바로 대양항해에 적합한 항해술과 대형선박 건조 조선술을 점차로 발전시켜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다시 그것을 만개시켜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겁니다.

 

2) 정치체제 : 첫째 해양문화(명)의 패권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는 강력한 통치를 위해 선출된 ‘도제’가 통치하는 과두정을 매우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완전한 민주정은 아니었지만, 독재나 전제정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귀족세력들 사이에서 이룬 타협의 소산인 과두정은 독재정이나 전제군주정보다는 나았습니다. 둘째 17세기 중반의 대서양과 인도양의 둘째 패권국가인 네덜란드 공화국은 왕정으로 출발했지만, 서서히 민주정으로 나아가 총리가 나라를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민주정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것은 훗날 영국 공주와 결혼하여 이후 영국 내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공주와 같이 영국으로 건너가 공동왕이 되었던 사람이 오렌지공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민주정과 직접 관련이 됩니다. 셋째 패권국가인 영국은, 국왕의 폭력적 권리행사를 합법적으로 제한하는 대헌장(1215) 이후, 자신들이 세계를 제패할 시점 인 17세기 후반에 일어난 명예혁명(1688)으로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단시간의 혁명이 아니라, 무려 500년(1215~1688)에 걸 친 장기간의 신중한 발전으로 이루어냈습니다. 그 결과 헨리8세와 같은 독재정이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전제군주정에서 결정적으로 벗어나서,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민주정을 지구역사상 최초로 확립하였습니다. 지역마다 있는 실용적으로 조직된 스포츠클럽은 자율하며 외부의 그 어떤 간섭이라도 배제하는 스포츠 문화(명)를 최초로 만들었으며(박지성의 맨유와 손흥민의 토트넘), 지금은 이런 민주적 클럽 문화와 역사들이 아주 깊어졌고 다양한 사회영역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이어서 20세기 초에 넷째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그 젖줄이었던 영국을 닮아 하원,상원의 양원제 국회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50여개의 연방을 통솔할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정을 본격적으로 시동걸어, 거대국가로서 세계 민주정 국가들의 선행사례가 된지 벌써 250년이 되었습니다(1776~2022). 이렇게 해양문화(명)의 정치체제는 일관되게 민주정을 향해 발전되어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민주정 그 자체는 불안하여 언제든지 일당독재나 포퓰리즘 때문에 타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지기만 한다 면 완전한 정치체제로 나갈 가능성이 있는 훌륭한 체제입니다. 첫째는 일반 백성들이 도끼눈을 뜨고 부패하기 매우 쉬운 정치가들을 예리하게 판단하고 심판할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더 어렵겠지만, 일반 백성들 중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세워도(어쩌다 대통령이 된 링컨처럼) 나라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성숙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미국은 영국과 함 께 이 점에서 세계의 모범이 된 긴 역사를 축척하였습니다. 영국이 명예혁명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정으로 이행한 것에 비해, 영국해협 건너편에 바 로 존재하는 대륙문화(명)의 영향이 큰 프랑스는, 100년이 지나서도 엄청난 피를 흘리는 유혈혁명(1789)을 이어 19세기 내내 수차례의 피를 부르는 혁명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3) 경제,사회체제 : 해양문화(명)가 기초한 경제적 원리인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매우 당연한 개인에 대한 건강한 경제적 삶의 규범을 경 제적,사회적으로 시행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이 해양문화(명)입니다. 이는 한 인간의 행동에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태도가 전제된 겁니다. 즉 개인의 권리와 책임은 절대종교의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므로, 누구도 부인할 수도, 부인해서도 안된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확립한 겁니다. 한 사람이 절치부심한 노력으로 발명한 것을 감추고 자손대대로 물려주면서 단지 제품만 만들어 팔아 경제를 영위했던 시대가 양반-쌍놈이라는 부동의 지배계층의 역사를 이룬 조선이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절대종교에 기초한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는 해양문화(명)권 에서는 그 사람의 권리인 (발명)특허권을 일정 기간 국가가 보증하여 공개하고, 대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허사용료를 지불하여 이득을 챙기도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 특허에서 더 새로운 것을 발명해 새로운 특허 권을 창출할 수 있었으며, 이전의 특허권은 시한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소멸 되어 누구나 쓸 수 있는 발전적인 사회경제체제를 형성한 겁니다. 이것은 모두 개인의 권리,책임에 대한 절대종교적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었 습니다. 이런 기초에서 출발한 것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이며, 이를 확립한 사람이 아담 스미스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은 국가와 사회와 공동체에 속해 있기에 그 단체에 대해 각 개인이 지는 권리와 책임도 있음을 서서히 인지하여, 그런 자각에 걸맞은 여러 가지 사회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영국에 머물면서《자본론》을 쓰며, 영국사회 속에서 자본주의 다음 단계로 공산주의가 자동적으로 나타날 것을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레닌은 유럽의 변방에 있으면서 가장 낙후한 자기의 나라 러시아에 강제적으로, 즉 무력을 사용한 혁명으로 이루었습니다. 경제체제에 있어서 영국은, 결코 냉정하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에 머물지 않고 종교와 사회적 각성을 따라 가난한 자를 구빈하는 사회배려적 체제를 종교적 운동의 도 움을 받아서 서서히 형성해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영국인들은 대체로 대륙문화(명)가 조작해내는 프랑스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혁명 같은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좀처럼 물들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이런 사회배려적 전통을 이어받아 독점금지법과 같은 법을 통하여, 개인이 창조하고 생산할 권리를 유지하면서도 자기 배만 불리려는 이기적 기업가들의 욕심도 제한할 줄 알았습니다. 드디어 대공황(1929)의 한계를, 케인즈를 따라 사회와 국가가 위기에 처한 국민을 책임지는 대안적 경제체제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소련에서 진행중이던 개인의 권리, 책임의 말살에서 출발하는 이데올로기적 집산주의와는 명백히 구분됩니다.

 

해양문화(명)는 이런 경제체제에서 발생한 재정적,사회적 이득을 통해 언제든지 신분상승이 가능한 사회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먼저 영국이 웨일즈, 스코트란드, 북아일랜드로 팽창되면서, 합병된 지역 사람들은 이미 잉글랜드의 기득권자의 하수인으로 머물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즉 배 타고 위험한 바다로 나가 활약하든지, 새로운 것을 발명하든지,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쌓든지, 새로운 기업을 창출하여 뛰어난 업적을 이룬다면, 누구든지 귀족이나 명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겁니다. 물론 지금도 영국의 최상 층부에는 일종의 계층이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해 이동하고 인정받는 데 여러 세대를 거처야 하지만, 계층이동 자체가 막힌 것은 아닙니다. 주요 이민자들이 이들 영국인들로 이루어진 신대륙인 미국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기회의 땅, 즉 자기만 열심히 하면 신분상승할 기회가 열려있는 나라,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로 알려진 이유는, 이런 개방된 사회체제를 기본적으로 영국으로부터 이어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동시대에 유사한 지역인 남미에 진출한 스페인,포르투칼은 이런 전통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나라들은 신대륙을 단지 약탈의 대상(약탈경제)으로 보았고, 또 기득권과 태생신분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체제를 확립하여 신분상승이 거의 불가능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오래 전에 여러 국가가 연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룬 영국에 비해, 지금까지도 매우 다양한 민족과 나라들에서 새로운 이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려고 하는, 그야말로 인구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된 이유는, 바로 이런 노력에 의한 신분상승이 가능한 개방적 사회체제 때문인 겁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이유와 나라(국토와 인구와 그 다양성)의 덩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국가의 통일성이 완전히 형성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세계의 경찰로서, 또 21세기에 파괴적 대륙문화(명)의 기초를 가진 두 국가들을 동시에 통 제하는 일을, EU와 함께 넉넉히 할 수 있는 나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것을 총제적으로 표지할 수 있는 지표의 하나인 각 국가의 정신적, 도덕적,  물질적, 사회적, 역사적각성도(spiritual, moral, material, social, historical selfawareness)를 의미하는 민도(民度 national grade)에 있어서 미국은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4) 법체계 : 해양문화(명)는 객관적 법체계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특히 이기는 자가 다 먹는 대륙문화(명)의 법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객관적인 국제법과 국제관계기구들을 만드는 역사를 꾸준히 형성해 왔습니다. 먼저 베네치아를 이어 해상문화(명)로 세계를 제패한 네덜란드에서, ‘국제법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는, 외교관, 법률가, 신학자, 시인이었던 휴고 그로티우스(H. de Groot 1583~1645)가 태어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는 대항해시절이 시작되면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공해(公海 mare liberum)에서의 군사적 충돌의 해결과 안전한 무역상의 거래를 위해 《전쟁과 평화의 법 De jure belli ac pacis 1625》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강자나 약자, 승자나 패자 모두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의 일원이므로 모두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 가지를 ‘정당한 전쟁’의 조건 (정당(자기)방위, 재산회복, 처벌)으로 제한한, 자연법에 기초한 국제(관계)법을 발전시켰 습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죽고 난 뒤인 3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웨스트파리아조약(West-Pharia Agreement 1648)이 성립할 기초를 놓았고, 이는 또 다시 2백여년 후의 나폴레옹전쟁의 혼란을 정리한 비엔나체제(Vienna System)의 초석까지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공적인 국가들 사이의 ‘국제사회’란 개념은, 1차대전 이후에 ‘국제연맹’(National League)을, 2차대전 이후 21세기 초인 지금까지 우리가 의존하여 유지하고 있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라는, 전세계의 모든 국가를 포괄하는 기구를 만드는 쪽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결국 이런 국제법이나 국제기구들은 모두 해양문화(명)를 주도한 나라들이 오랫동안 생각하였고 운용하였고 서서히 발전시켜온 것입니다. 이런 체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안정된 통화를 통한 재정과 금융시스템의 구축입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일찍이 암스테르담과 런던에, 그리고 미국은 후에 뉴욕에, 금융거래소를 세워서 금본위제와 함께, 강력한 영국의 스털링을 바탕으로 안정적 국제금융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것을 미국이 이어받아 유지하다가 2차대전 마감 전에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1944)를 통해 전후세계질서의 안정을 위하여 정치, 군사, 외교의 안정과 함께 객관적이고 안정적 금융질서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달러위기에도 불구하고 1971년의 닉슨선언으로 금태환(金兌煥)정지와 함께, 달러는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유일한 기축통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다양화해 기축통화를 넓게 확대하여 강력한 재정력을 가진 나라들의 통화도 (준)기축통화의 반열에 들도록 허용하여 한국도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총체적 국제법적 질서를 장구한 역사를 관통하며 이어간 베네치아-네덜란드-영국-미국이라는 해양문화(명)의 패권국들의 역사는, 약한 정도의 상호투쟁도 있지만 대체로 부드러운 패권의 이양과정을 이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5) 마음속의 사상체계 : 이것은 해양문화(명)의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점인데, 몇몇 탁월한 사상가들이 출중한 생각을 만들고, 한 나라의 모든 사람이 따랐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나라들에 사는 보통시민들이 실질적으로 그 마음에 형성한 생각체계가 이 해양문화(명) 성공에 관건이었던 겁니다. 이들은 공상적, 환상적, 이상적, 몽환적 생각에 빠지지 않고 매우 실용적, 실질적으로 사고한 결과, 독일인들이 그러하듯 어떤 체계를 형성해도 다림질하듯 깔끔하게 정리한 사상체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륙문화(명)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깔끔한 사상체계들을 저마다 주장하여 어지럽게 난립하며 변화무쌍하게 전개되어간 것과는 크게 대조됩니다. 경험주의적 사상을 마음에 품은 영미계는, 프란시스 베이컨(Fr.Bacon 1561~1626)에 서 볼 수 있듯이 주로 경험과 관찰들이 쌓인 귀납법 위주로 사고하며, 경험주의적, 실험위주의 과학혁명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대륙에서 합리론에 이어서 계몽주의, 낭만주의, (사회)혁명이론 등의 온갖 허황된 이론들이 오고가는 동안, 영국의 토마스 홉스(Th.Hobbes 1588~1679)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과 그 인간이 이루는 사회의 실체를 비관적으로 직관한 정치이론인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을 직관했습니다. 또 사회이론으로 제레미 벤담(J.Bentham 1748~1832)과 존 스튜어트 밀(J.S.Mill 1806~1873)이 주장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도 사실상 이론이라기보다 해양 문화(명)적 실용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자의식이 각성되어 사상적으로도 본연의 영역을 찾을 때에 나타났던 찰스 피어스(Ch. Peirce 1839~1914), 윌리엄 제임스(W.James 1842~1910)나 존 듀이(J.Dewey 1859~1952)의 실용주의(pragmatism) 역시 사실 전형적 해양문화(명)적 결과물일 뿐입니다. 즉 인간은 완벽한 체계나 환상적인 이데올로기로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를 만들 능력이 절대로 없으며, 인간은 단지 현실세계의 문제들 을 실천적,실용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존재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인정한 겁니다. 아무리 큰 배를 만들어도 일단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대양에 나서면 환상, 몽상은 결코 허용되지 않으며, 눈앞에 닥친 파도를 현실적으로 헤치고 암초를 피하여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해양인들의 절박한 삶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종교체계 : 매우 특이하게도 해양세력의 종교는, 절대종교인 기독교 중 에서도 러시아의 동방정교도 아닌, 서방기독교의 일파인 로마교도 아닌, 개신교라는 극도로 중요한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의 독일교회는, 루터와 그가 근거했던 어거스틴의 신플라톤주의적, 이원론적 특징을 따라 인간 삶을 물질적 요소와 영적인 실체로 나누어, 그 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세상나라보다 우선시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발전시켜갔습니다. 그 결과 인간현실 세계 속에 일어난 일에 대한 무관심은, 교회가 장차 세계의 역사와 현실에 참여하는 일에 매우 무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독일교회는 20세기에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따라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폭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치명적 죄악을 저지른 겁니다. 그렇지만 해양문화(명)를 주도하였던 세 나라 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은 모두 일관되게 개신교 중에서도 다른 신학적 전통 위에 선 나라들입니다.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모두에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신학자 존 칼빈(J.Calvin 1509~1564) 의 일원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개신교(장로교회,개혁교회)에 기초한 나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직업에 있기 때문에(직업 소명론), 직업에 귀천이 없이 누구든지 그 직업에 진심으로 열중하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며, 그런 결과로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진다는 신학체계를 갖춘 겁니다(건강한 선민사상). 이렇게 하면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발생하고, 그 결과로서 사회 윤리와 직업윤리가 건강해지고, 정신과 물질세계에서의 풍요도 뒤따라오는 겁니다. 즉 절대종교는 물론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 안에 기반을 두지만, 거기서 발원한 강력한 종교심은 개인 삶의 모든 면뿐 아니라 가족, 윤리, 사회, 국가, 역사 전체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건강한 해양문화(명)을 형성한 겁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글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152>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 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