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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의 시대, 나는 누구인가요?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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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시리즈 2] 

부캐의 시대, 나는 누구인가요?

 

2009년에 나온 영화 <아바타 AVATAR>에는 하체 장애를 가진 설리라는 주인공이 외계종족의 아바타와 자신을 연결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스토리가 나옵니다. 당시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우와~ 저게 가능해? SF영화니까 가능하지’라는 결론을 내렸었지요.
하지만, 메타버스(metaverse) 시대엔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들 얘기합니다. 영화 <아바타>나 <레디플레이어원>의 주인공처럼 지금과는 다른 세상 혹은 가상게임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지요.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에서 현실의‘나’가 아닌 또 다른 ‘나’라는 가면을 쓴 캐릭터(아바타)를 만들고 그 속에서 현실의 ‘나’처럼 혹은 ‘나’와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현실의 나를 ‘본캐(본래의 캐릭터)’, 그리고 메타버스 속에서의 나를‘부캐(부 캐릭터)’라고 부르기 때문에 메타버스를 부캐의 시대 혹은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멀티 페르소나(다중 인격)의 시대
결혼식 부캐도 아니고…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부캐를 여러 개 가진‘멀티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Persona)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상황에 맞춰 여러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 외적 인격을 갖는 다중적 자아를 일컫는 말입니다. 유사한 형태로 중국에는 경극이란 것이 있지요. 눈 깜짝할 사이에 가면을 바꿔 쓰는 연극인데 보고 있으면 정말 신기합니다. 하지만, 상황마다 가면을 재빨리 바꿔 쓰는 것은 연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가리우려는 인간의 공통된 본성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점은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요. 과거 베네치아에서는 가면무도회 라는 것이 있어서 얼굴과 신분을 가린 채로 이성에 대한 유혹과 성적인 관계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망조든 나라를 대변하는 타락한 문화도 있었습니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을 심리학에서는 ‘임포스터(IMPOSTER)’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타인에게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남들에게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이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지요. 어릴 때부터 자기감정을 숨기는 것이 익숙해서 심해지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임포스터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수업시간에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몰라도 질문하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르면서도 아는 척, 노력하지 않아도 다 아는 척 하는 순간 가면을 쓰기 시작합니다. 내 이야기라구요? 맞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많은 가면을 쓰고 불안 속에 살아온 한국 사람들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그래서 메타버스 환경이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게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미로미의 일상BLOg

부캐, 아무렴 어때! 정말 그럴까요?
요즘 메타버스가 10대 이용자를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멀티 페르소나를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또 다른 자아실현을 추구하려는 것 때문이겠지요. 이젠 멀티 페르소나나 이를 통한 이중생활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트랜드처럼 이미 핫한 소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들조차도 메타버스 세계에서의 멀티 페르소나를 당연한 것처럼 지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꼬집듯이 지적하는 영국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블랙미러’의 <스트라이킹 바이퍼스(Striking Vipers)> 라는 에피소드인데, 우리가 게임과 같은 메타버스 세상에서 또 다른 부캐로서의 삶을 살게 될 때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가상세계에서는 나이와 연령, 성별도 초월해서(맘대로) 아바타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기술의 발달로 가상세계가 마치 현실처럼 느끼지도록 하는 장비들이 개발되고 있어서, 머지않아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질 시점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는 친구이자 각 가정의 가장인 두 남자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감을 주는 VR기기를 착용하고‘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가상 격투게임에서 서로 만나 즐겁게 결투를 벌입니다. 한 명은 남자 캐릭터를, 다른 한명은 여자 캐릭터를 자신의 아바타로 설정하였지요. 격투에 한참을 몰입하던 중 어느 순간 무엇에 홀린 듯 두 남녀 캐릭터는 이성적으로 강력하게 끌리게 되고 게임 속에서 키스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두 남자는 서로 당황해하며 급하게 게임을 종료시킵니다. 다음 날, 두 친구는 어제는 술에 취한 것 같다며 어색하게 사건을 무마시킨 후 다시 게임에 접속해서 즐겁게 결투를 벌이려 합니다. 어제와 동일하게 각각 남자와 여자 캐릭터로 접속해서 게임 속에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게임 속에서의 남자와 여자 캐릭터로서의 경험과 극도의 사실적 쾌감이 뇌 속에 너무도 강력하게 각인되어서, 결국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점점 서로에게 중독되어 가며, 현실에서는 고통스러워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여전히 본성을 추구하는 막장드라마로 흘러가는 충격적인 스토리입니다. 이렇듯 가상현실 속에서 주변에 보는 눈이 없고, 감각이 현실처럼 느껴져 강력한 유혹이 찾아올 때, 얼마든지 나 자신이 해괴망측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내용입니다. 

사진 출처-미로미의 일상BLOg

다니엘 핑크는 자신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천사》에서 우리 안에는 선과 악의 본성이 공존하지만, 과거 악의 본성이 준동할 때마다 우리 속 선한 천사들이 이것을 제압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통계적으로 과거보다 물리적인 폭력과 전쟁의 숫자가 줄었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물리적 폭력보다 정신적인 폭력은 훨씬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인간이 내 밖의 절대적인 법이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세운 법을 기준으로 삼는 한, 다니엘 핑크가 한 주장은 인간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내가 만든 아바타에도 인격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습이야 어떠하던 부캐도 결국 ‘나’이니, 인격적인 권리를 부여하자라는 주장입니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만든 부캐마다 메타버스 속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라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단지 가상세계 속에서 남에게 보여지는 나로서의 인격만 중요시한다면 권리만 난무하는 또 다른 현실세계의 복제판이 되지 않을까요?

 

금정동 갈렙추
caleb.kj.cho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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