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핵무기의 두려움도 뛰어넘는 문화예술의 힘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3. 20:13

본문

핵무기의 두려움도 뛰어넘는 문화예술의 힘

 

요즘 생활 속에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작은 실천거리로 내가 실행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메일함에 쌓여있는 ‘지난 메일 줄이기’와 ‘노트북 안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다. 책상에서 몇 분이면 할 수 있는 이 작은 실천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주말 노트북 속의 사진데이터를 정리 하다가 평양의 유치원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고 북한의 공연예술을 경험했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나는 90년대부터 공연장에서 근무를 해왔고 그간 맡았던 일들이 공연기획이었으므로 당연히 북측의 공연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민간외교 차원에서 북측 평양교예단이 2000년 6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평양교예단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악기연주와 노래 그리고 현란한 아크로바틱 공연 등을 선보였다. 그때 공연을 본 후의 느낌은‘아이들마저도 어른 못지않은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것과 아크로바틱의 경우도 ‘세련미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 기본기는 태양의 서커스나 기타 세계 유수의 공연단에 결코 뒤지지 않는구나’라는 것이었다.

그 후 2004년 나는 평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실제로 평양의 탁아소에서 교육받고 있는 원생들이 후원자로서 방문한 우리 일행 앞에서 작은 공연을 보여주었다. 노래, 서양악기, 전통악기 연주 등 도저히 4~5살 어린이라고 믿을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교육과정을 살펴보니 3~4세 아이들부터 1인 1악기 이상을 다루고 있었고 아이의 소질을 어릴 때부터 찾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 모든 목적은 물론 당의 사상과 체제에 대한 교육의 한 과정이지만 말이다. 교과 과정 중 시창 청음 시간이 있는데 4세 어린이의 시창 청음 실력이 우리의 예술전공 대학생 수준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현란한 기교와 연주 실력은 어릴 때부터 탄탄히 다져온 기본기가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평양 시내에 있는 몇몇 고급 음식점에서는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다. 음식점 내에 작은 간이공연시설이 있어서 전통악기를 개량한 각종 악기를 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연주하며 식사를 즐기는 고객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곤 한다. 평양 시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한다는 것은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취직하려면 수려한 외모와 함께 뛰어난 노래 솜씨, 연주 실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 실제로 내가 방문한 날엔 6명의 종업원들이 중간중간에 무대에 올라가 노래와 연주를 했는데 유치원 때부터 노래와 악기를 배워왔다고 했다.
평양에는‘옥류관’이라는 남한에서도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 그 냉면집 근처에는 윤이상 음악당이 있는데 윤이상은 독일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지금은 부인인 이수자 여사가 평양에 거주하며 윤이상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다. 물론 우리도 윤이상의 곡을 이제는 자유롭게 듣고 연주할 수 있지만 한때 남측에서는 사상적인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현대 음악가의 음악을 오히려 북측에서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씁쓸했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예술은 공통점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차이점도 많았다. 민요와 같이 남북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장르가 있는가 하면 남측, 북측이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르도 있다. 그중 북측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만들어져 정형화된 것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혁명가극’이다. 1970년대 들어서자 북측은‘가극혁명’을 선포하고 주체사상에 기초한 가극의 첫 본보기로 1971년 7월‘피바다’라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를 다른 가극과 구분하기 위하여‘혁명가극’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 피바다식 혁명가극은 5대 혁명가극 탄생의 기초가 된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졌고 음악과 극과 무용과 미술 등이 결합된 종합예술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북측예술을 결정하는‘주체사상’과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피바다’는 북측 예술의 총 역량을 통합하여 만들어졌고 그들 스스로 대표적인 양식으로 꼽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북측을 대표하는 예술 양식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북측이 자랑하는 공연 중에 종합예술공연인 ‘아리랑’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공연은 2002년 4월 고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해 공연된 군중 예술로 학생, 근로자, 예술인 등 6만 명이 출연해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표현하는 카드섹션과 집단체조이다. 이 집단체조의 특징은 예술 공연보다는 높은 사상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며 매 시기마다 국가의 노선과 정책을 알리고 그 사상에 대한 충성을 인민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으로 창작되었으며 대집단체조의 제목 역시‘수령’, ‘조국’등 직관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아리랑’은 기존의 예술을 수용하면서 내용이나 형식에서 더욱 발전시킨 종합공연으로 체육과 예술을 결합한 체육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렇듯 서양 예술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남측의 공연문화와 당의 사상 및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운영되어온 북측의 공연문화는 그 사상적 차이만큼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남북 관계가 좋을 때에는 남측의 공연이 북측에 가서 공연하거나 비록 민간 차원이긴 하지만 북측 공연이 남측에서 공연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2008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인 로린 마젤과 함께 평양공연을 다녀온 바 있다. 정치는 이렇듯 남북관계의 화해무드 조성을 위하여 문화, 예술의 힘을 적극 이용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어쩌면 사상, 이념, 기타 어떤 무기보다도 문화예술이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예술은 핵무기의 두려움도 녹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근래 급속도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이념이나 사상적인 측면의 접근보다는 보다 폭넓은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문화예술로의 이해와 함께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문화예술의 강대국으로서의 한민족의 힘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더불어 남북이 함께 만드는 공연, 남북이 함께 출연하는 공연을 기획해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 본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