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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의미의 확률론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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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시/종교시/문학시] 

재미와 의미의 확률론 

-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의 죽음을 추도하며1)

 

I

의미있다   따라서 재미있다

원래 그랬겠지
그런데 있는 것 같지만 껍질만 남은 의미
재미도 덩달아 사라져
그렇다고 실패한 명제일까
아니야, ‘창조’해보면 ‘재미’생기지
게을렀던 거야

재미없다   물론 의미도 없지

재미만 계속 추구하면 
흥미 때문에 도박에 중독된 도스또옙스끼 꼴 되지
하지만 사형집행 5분전 정지와 시베리아 유형으로 
이미 죽음 삶의 의미를 관통한 그라도
의미 없는 도박을 계속하는 
괴물 된 자신을 들여다 보고 화들짝 놀라
 ‘도박꾼’이란 작품으로 의미를 창조하여
나이 듦과 함께 서서히 회복되어갔지

의미있지만  재미는 없어   또는   재미없어도  의미있으면 돼

순교, 영 재미없고 무시무시하지
정확하게는 ‘재미없어 보이는 척하고 외면해버리지’
하지만 순교의 순간
삼위일체 하나님 경험한다면
폭발하지 않겠어
충만하지 않겠어
재미 흥미 환상 기쁨 
스데반처럼2)  

재미는 있는데  의미는 없네   또는   의미없어도  재미있으면 돼

게임자판을 엄청나게 눌러대며
영원히 잊어서 정지되는 시간
그래서 시계를 없앤 마귀적 방
백화점, 게임방
쉴 새 없이 물건 사대다가, 오징어 게임하다가
쇼핑중독 게임중독 빠져 허망하게 죽어랏
 ‘뽕’맞음으로 끝날 꼴 보고 말

재미도 의미도 모두 없다

모두가 지겨워하는 이 놈의 삶
다들 어떻게 벗어나고 있을까
자살로 돌파해 볼까나
그러면 자살도 의미 있는 행동이 되잖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우왕좌왕 우물쭈물
단호하게 재미도 의미도 잊으며 모른척하며 살기로
그러다 찾아오는 생애를 무너뜨리는 폭풍 앞
어쩔 줄 모르고 휘청거리며
도축장 앞에서 뚝뚝 눈물 흘리는 소보다 더 비참한 존재가 되는 건
죽음 자체의 두려움 고통보다 더 큰
이 질문을 무시하며 
난 짐승이나 생명체 이상은 아니라고 
고함치며 살았던 댓가겠지

 


II 

으스럼 저녁 아이들 놀이터
서슬 푸른 현실의 소리
밥 묵으라
순식간  파장되는 신남
아무렴 밥과 놀이를 바꿀 순 없지
내일 또 놀이하면 되지
내일 또 밥 묵으면 되지
그럼 재미와 의미는 영원히 순환할까

  Dasein ist das Sein des Seiendes M.Heidegger, Sein und Zeit.3)  
   (‘현존재는 지금 존재하는 것의 존재다’)
이건… 흠…  명백한 언어유희
철학이란 언어로 문학 놀이하는 걸까
  Nicht Schoenheit, zondern Wahrheit4) 
   (‘아름다움이 없으면, 진리도 없다’)
결국 철학은 문학이 되고 마는
그래서 재미만 추구하는
멸절수용소만 남는5) 

반면 
늘 계시나
인간 시계에 안착하셔 같이 돌아가신  분6)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영원히 흥미로운
언제나 감동할 문학 만들 수 있지
천로역정, 실낙원7), 쿠오바디스 도미네처럼8)
의미 있으면 재미있는
재미란 결국 
의미가 주는 감동과 흥분의 결과물일 뿐


III

재미와 의미
순수 한국어와 한화된 중국어의 혼용
언어사용 정말 풍부해졌군
철학적 사고 가능해졌으니
종교적 깊이까지 더해졌으니

혼용된 문화 역시
그렇겠지
한글 한국어 한국문화만 그런가

많은 혼합 뒤엉킴의 언어와 문화들
 ‘고통과 괴로움’ 가득한 역사의 쓰레기만 남기나
  (‘고통과 괴로움’은 중국어와 한국어의 불필요한 혼용)
  (‘고통과 죽음’이겠지) 

이걸 인간 대신 받아들이셔 정화하며
 ‘눈물없앰과 영생’ 선물하시는
  (이 또한 혼용이군)
  (썩 괜찮은데)
늘 계시나 인간시계에 영원히 안착하시는 분
'의미'와 ‘재미’두 마리 토끼는 
모두 이 ‘한 세 분’9) 으로부터만


1)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의 죽음을 추도하며 J.Huizinga(Homo Ludens)는 중세가 암흑시대라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놀이하는 인간들의 삶으로 가득찬 중세의 모습을 그려냈다. 과연 십자군전쟁이라는 망상으로 종교적 의미가 중세인의 삶에서 퇴색되어도 인간은 축제문화로 연명할 수 있는 총체적 존재임을 보였다. 하지만 의미를 제공하는 종교가 제대로 유지되고 충만했다면, 중세는 암흑시대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종교적 만족으로 충만한 인간’은 당연히‘폭풍우처럼 놀이하며 즐거워하는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다윗왕은 직접 보였다(사무엘하 6:14,20).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인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복귀하는, 꿈에도 그리던 일이 일어나자, 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속옷(에봇)을 입고 격렬한 춤을 추었고, 이 일은 그 아내 미갈의 눈에 성적 부끄러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종교적 의무를 완성한 인간이 누리는 만족을 온 우주 앞에서 춤추며 표현한 기쁨과 즐거움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만의 물질적,관계적,지배적 욕망의 충족만 추구하는‘말초적 즐거움’(orgie-pleasure)의 정반대임을 그는 보여주었다.
2) 사도행전 7:55‘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3) M.Heidegger, Sein und Zeit.
4) 자주 인용되는 M.Heidegger(1889~1976)의 슬로건. 물론‘진리가 없으면 아름다움도 없다’라고도 번역할 수는 있지만, Heidegger의 의도는 전자일 것.
5) 19세기 독일중심주의적 시인인 F.Hoelderlin(1770~1843)을 따른 Heidegger는 결국 히틀러의 멸절수용소를 찬성한 것이 된다는 가정 하에 만든 표현.
6)‘돌아가신’은 삼중의미(1.인간처럼 인간 시계 안에 들어오셔서 사셨던, 2.십자가에서 죽으신, 3.그 후 아버지께 돌아가신).
7) 영국의 John Milton (1608~1674)
8) 폴란드의 H.A.A.P.Sienkiewicz(1846~1916)의 노벨문학상 수상작(1905)
9) 하나가 되시는 세 분의 하나님. 성자 예수님은 인간 속에 오셨다가 성부께로 돌아가셨고, 곧 성령께서 인간세계로 오셔서 지금까지 계시며, 장차 성부도 인간에게 오셔서 역사를 마감하실 것을 나타냄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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