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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세상으로 보내는 러브레터 풀꽃 시인‘나태주’

2022년 9월호(15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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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시는 세상으로 보내는 러브레터
풀꽃 시인‘나태주’ 

16살 소년, 시인을 꿈꾸다
16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시인은 헤르만 헤세이고, 한국시인으로는 김소월, 윤동주입니다. 이 세 분은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어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사춘기는 말 그대로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시기인데, 그 당시 저의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집들이 살기가 어려워, 신분 상승과 돈과 권력을 쥘 수 있는 길을 가길 바랄 때였죠. 하지만 저는 권력과 돈을 추구하기보다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사셨다면, 저는 그 위에서 나를 위해 살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아마 이 점이 저를 시인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고, 시인을 꿈꾸게 했다고 봐요. 물론 제가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가, 돌아보면 자신은 없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16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시 공부, 유일한 스승은 책!
제 평생 책 몇 권을 고르라면 지금도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직접 책을 보여주심)《당시, 唐詩》입니다. 당나라 시죠. 저는 이 책을 통해 혼자 시를 공부했어요. 보통 시인들은 동인 그룹이나 선배를 통해 공부를 하거나, 학교나 선배 시인들에게 시를 배웁니다. 그런데 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간 것이죠. 책이 선생이었어요.《당시, 唐詩》외에 박목월 선생의《보랏빛 소묘》가 시인으로서의 저의 길을 열어주었고,《한국 전후 문제 시집》이 저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가 아닌
                       ‘그것 자체가 되는’ 시를 써라
오늘날 시인들은 사건이나 자기 경험 등을 그대로 가져와 시를 쓰려고 해요. 하지만 시는 경험 그대로가 아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빛깔, 뉘앙스, 쉽게 말해 경험이 산출하는 정서를 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처음에는 오감을 통한 감각이 생기고, 그 뒤에 감정이 생기죠. 조금 더 자라면 이것이 정서가 되고, 정서가 굳어지면 생각이 되고, 그리고 제일 뒤에 남는 것이 기억이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시는 이 가운데 정서를 되도록 예쁘고 절실하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한 짧은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시인들이 이 전체를 뭉뚱그려 기억이나 생각 속에서 시를 꺼내려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시가 딱딱해지고, 건조해집니다. 바로 ‘그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비슷한 것 즉 ‘그것에 대해서’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써서는 안 돼요. ‘대해서’는 대상의 크기는 얼마고, 색깔은 어떻고 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묘사인데, ‘둥그런 과일 같다.’, ‘어린아이 고추 같다.’라고 쓰는 것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 자체’가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행복에 대해 시를 쓴다면, 행복에 대해 자꾸 설명하지 말고, 행복 자체가 되었을 때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이 기쁨을 느낍니다. ‘그것에 대해서’ 쓰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소통이 안 되고, 자꾸 설명하고, 덧붙이려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길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것에 대해서’가 아닌 ‘그것 자체가 되는’ 시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우리 영혼과 정신의 약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먹고 숨 쉬는 것이 기본이듯, 시는 우리 영혼의 밥과 공기,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인 자신이 시로 살아났다면, 시는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는 우리 영혼과 정신의 약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라는 약을 통해 우울에서 살리고, 절망과 불행에서 살리는 것이죠. 그러려면 시가 단순하고 맑고 명랑해야 합니다. 윤동주 선생의 시도 아주 맑고 명랑합니다. 명랑하다는 말은 기분 좋고 유쾌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명징(明澄)이라는 말처럼 찌꺼기가 없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이죠. 이것을 ‘시의 명랑성’이라고 합니다. 동시는 기본이 명랑성이죠. 이 세상이 너무 명랑하지 않고 혼탁하기 때문에 시가 이 역할을 한다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인생의 반전
반전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하고는 조금 달라요. 터닝 포인트는 가던 길에서 좋은 길로 돌아서 계속 직진하는 거라면, 반전은 가다가 돌아오는 완전 유턴에 가까운 것이죠. 공자는 50세를 지천명이라 했고, 톨스토이는 50세에 자기 인생을 스톱시키고 모든 것을 반성하고 회심(回心)하는 반전이 있었죠. 저의 경우는 조금 늦었어요. 지금이 78세이니 16년 전, 교직을 정년 퇴임하고 난 62세 즈음 인생에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아쉽게도 자의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둔한 사람은 자의적으로 오지 않아요. (웃음) 쓸개가 완전 파열되어 거의 죽을 뻔했는데, 이때가 삶의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회심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6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105일 동안 밥과 물도 먹지 않고, 주사만 맞으며 견디다 보니 굉장히 정신이 맑았습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바뀐 게 있다면,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시를 쓸 때 본질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 의미가 없을 뻔했으니 정말 고마운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나의 시를 부르다
또 하나의 작은 반전이라면 2010년쯤 제 시가 재평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나를 불렀다고 해야겠지요. 그 이전 시대는 이념성이 강한 시기였어요. 이런 주장이 강한 테크닉과 살을 붙인 시가 잘 나가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이 되면서 시대적 담론이 바뀌었어요. 이전의 크고 높은 담론들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죠. 특히 20~30대 친구들은 진영 논리, 이념, 정치 등에서도 입장이 분명합니다. 내가 있어야 가정도 있고 단체도 있다는 것이죠. 집단이 아닌, 개인이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1971년 처음 등단할 때부터 저는 개인 중심의 정서에 집중했습니다. 당시에는 개인 담론을 가진 저의 시는 도외시의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2010년이 되면서 저의 개인 담론,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정 위주의 시, 옛날에 썼던 작품들까지 소환되기 시작한 것이죠. 

시의 반전
풀꽃 •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마지막 ‘너도 그렇다’가 반전이거든요. 이런 것처럼, 제 인생에 반전이 있었던 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풀꽃 •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 
참 좋아.

이 시에서도 마지막에‘참 좋아’라는 반전이 있죠. 반전이 없는 시는 쭉 미끄러지듯 그냥 빠져나가요. 반전은 갈고리와 같거든요. 미끄러짐을 잡아주는 거죠. 하이쿠도 보면 반전 부분이 있어요. 오래된 연못(제시, 객관) 개구리 뛰어드는(제시, 액션, 주인공이 나타남) 퐁당 물소리(반전) 개구리가 뛰어들지만, 나에게 들리는 소리인 물소리에서 울림이 딱 오며 반전이 생기는 거죠. 이게 일본 하이쿠의 기본입니다.

작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배려


꽃들아 안녕
꽃들에게 인사할 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꽃들아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함이
백번 옳다.


이 시는 학교에서 조회나 전체 행사에서 인사할 때, “교장 선생님께 경례”하면 학생들이 다 같이 인사를 하잖아요. 그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느낌을 적은 거예요. 300명이나 40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인사를 하면‘안녕’하고 인사를 받는데, 이게 과연 옳을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시로 표현해 본 것이죠. 인사할 때 학생들 하나하나를 보아야 하듯이, 꽃을 볼 때도 무심하게 전체를 보지 말고, 교감을 하듯 하나하나를 보라는 것이죠. 동정과 감정이입을 통해 대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고 봐주는 사람
인생에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20살 이전에 외할머니가 있었어요. 그리고 결혼한 후로 우리 집사람이 있고요. 무슨 일을 해도 괜찮게 봐주는 것은 아니지만, 끝에 가서는 봐주는 사람! 무슨 일을 해도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지만, 끝에 가서는 봐주는 사람! 그게 우리 외할머니고 우리 아내입니다. 제가 시인이 되는데 큰 힘이 되었던 두 사람이죠. 가난하고, 열등하게 살았던 제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이 받은 가장 큰 혜택입니다.

시조, 한시, 하이쿠 사이에 나태주를 놓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구체적인 소망이나 꿈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하죠. 젊은 사람들의 꿈은 확장과 변화에 있다면 나이 먹은 사람의 꿈은 보존과 정리에 있습니다. 내가 젊은 사람이라면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일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저는 지금 책도 많이 냈고 사업도 진행되는 게 제법 있어 보존과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중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시조, 한시, 하이쿠가 다 같은데, 시조와 한시와 하이쿠 중간 지점에 저의 시를 놓고 싶습니다. 사실 이게 저의 결론이고 꿈입니다. 한·중·일 사이에 나태주가 들어가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일본과 중국에서도 제 시집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천천히’, 
               그리고 나의 소원은‘멍하니 있는 것!’


우리는 지금의 SNS, 스마트폰, 이메일, 카페, 블로그 등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어요. 이미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이 답을 내었어요.‘디지로그’라고. 저는 일의 우선순위를 두고‘빨리빨리 천천히’라고 이야기합니다. 원고 청탁이 오면 잘 쓰든 못 쓰던 1~2일 안에 원고를 보냅니다. 왜냐면 나 혼자서 하는 일을 더욱 잘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죠. 내가 원하는 시간은 멍하니 혼자서 있는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를 지탱할 수가 없어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한가한 자기 시간, 자기를 비우는 시간, 또 자기를 채우는 시간이 필수적입니다. 나와 내가 만나 나의 이야기를 듣는 중요한 시간 말이죠. 이럴 때 저는 《당시, 唐詩》를 읽습니다. 20대부터 읽었던《당시, 唐詩》지만, 70대인 지금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2022년 8월 9일, 억수로 오는 비를 뚫고 나태주 시인을 만나러 공주 풀꽃문학관으로 향했습니다. 가슴에는 제가 직접 쓴‘기적’이라는 시를 품고 말이죠. 왜냐하면 나태주 시인을 만나는 것을 저는 기적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 중, 요즘 시인들은 시에 자기의 경험을 쓰려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내 시가 그런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그 시를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처음 뵙는 나태주 시인은 몸이 힘들어 보였고, 피곤해 보이셨죠. 순간 ‘인터뷰가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질문을 시작하라며 “점차 소통이 잘 되면 인터뷰시간도 길어지겠죠.”라고 풀꽃 시인은 입을 떼셨습니다. 다행히 인터뷰를 이어가며 시인은 점차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의 1시간 20분 정도의 인터뷰를 마치고 《어리신 어머니》 시집까지 사인해 건네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다가 아니었어요. 100년 된 풍금으로‘고향의 봄’도 손수 연주를 해주셨죠. 인터뷰 후, 정말 몸 컨디션이 나아지셨는지 풀꽃문학관 마당의 풀을 뽑으러 나간다고 하시더군요. 건강하신 가운데 세상으로 보내는 러브레터를 계속 보내주시길 바라며 무사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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