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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협주곡(Op.7)을 통해 클라라 슈만을 새롭게 이해하기

2022년 12월호(15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5. 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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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협주곡(Op.7)을 통해
클라라 슈만을 새롭게 이해하기

 

지난 9월 27일 저녁, 광장 한 편을 빨간 홍시로 불 밝힌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라는 주제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 음악가 각각이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을 모아놓았다는 것이었어요. 세 명 모두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었던 만큼, 각각의 음악적 특징을 비교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주가 작곡된 연도순을 따라 클라라(1834), 슈만(1841), 브람스(1858)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제목은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순서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클라라가 슈만의 아내였기 때문에 슈만 뒤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슈만과 브람스라는 음악계의 두 큰 거장 사이에서 클라라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클라라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클라라와 두 음악가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Op. 7)의 특징 
악장의 구분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협주곡: 클라라가 단순한 피아노곡이 아닌 오케스트라까지 함께하는 협주곡을 그녀의 나이 13살(1833) 때 만들기 시작해 14살(1834) 때 완성시켰다는 사실은 그녀가 피아노의 신동을 넘어 작곡에도 엄청난 재능이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클라라의 피아노 협주곡의 주된 특징이라고 하면 낭만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을 뿐 아니라, 그것을 화려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방식이 아닌,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적 감수성으로 충만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여성적 감수성은 클라라의 피아노 협주곡이 형식에 있어서 전통적인 3악장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슈만과 브람스와 달리 악장의 구분 없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녀가 3악장에 해당하는 연주곡을 먼저 완성한 후에, 여기에 1악장과 2악장을 추가해 곡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성방식이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피아노협주곡 전체는 어떠한 심각한 변화보다 단절이 없이 부드럽게 흘러,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집니다. 이것은 악장의 구분, 즉, 한 악장마다의 시작과 끝이 선명한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변함없이 이어지는 관계와 사랑을 기대하고 갈구하는 여성적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2악장의 피아노와 첼로의 달콤한 사랑의 2중주: 여기에 오케스트라 악기의 개입 없이 피아노와 첼로의 이중주가 이끌어가는 2악장은 이러한 여성적 특징을 더욱 분명하게 만듭니다. 이 부분은 분명 클라라 자신과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달콤한 대화를 표현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마도 어려서부터 동경하며 좋아했던 아버지의 제자 로버트 슈만(1810~1856)이었을 것입니다. 클라라는 9살에 처음으로 슈만을 만난 뒤,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당대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인기가 높았던 슈만에게 조금씩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밑에서 음악을 배우다 손을 다쳐 더 이상 연주자의 길을 갈 수 없었던 고통의 순간에 그와 함께 하며 힘을 북돋았습니다. 또한 슈만은 그를 괴롭히던 조울증상이 깊어져 환영과 환청 등의 정신장애현상을 처음으로 경험한 상태에서(1833), 부유한 귀족가문의 양녀와의 파혼(1834) 등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클라라와 슈만의 서로를 향한 애틋함과 동정은 더욱 깊어져 갔고, 그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이중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달콤한 대화는 슈만의 2악장 속에서도 느낄 수 있고, 브람스의 3악장 속에도 클라라에게 영향을 받아 첼로가 등장해 솔로로 연주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클라라의 경우는 다른 파트는 모두 배제한 채 피아노와 첼로만이 연주하는 방식으로, 어느 누구의 개입도 없는 절대적이기까지 느껴지는 둘만의 사랑을 강조하는 여성적인 면이 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클라라에게 슈만과 브람스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러한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구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돌아본다면, 피아노 협주곡 하나 속에서 살펴본 음악적 특징을 넘어 그녀의 음악과 음악적 태도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클라라의 태도는 클라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던 슈만과 브람스에게 음악뿐 아니라 삶의 여러 면에서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슈만과 브람스에게 끊임없는 동경과 삶의 따뜻한 동반자이자, 음악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클라라의 역할은 다분히 슈만과 브람스의 입장에서의 접근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클라라는 어떤 시각으로 슈만과 브람스를 바라보고 관계했는지를 제 3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것은(물론 클라라 스스로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많지만), 보다 동정적이면서도 선명하게 이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한 가정과 음악세계를 완성해줄 존재로서 슈만: 클라라는 자신보다 9살이 많은 슈만을, 그것도 당시에 여러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했습니다. 뒤늦게일지 모르지만 슈만이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죠. 물론 슈만의 거부하기 힘든 대쉬도 있었겠지만,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숨 막히는 아버지의 통제 아래 살아왔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철저히 통제하여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관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당시에 가장 전도유망한 음악가이자 친절했던 슈만과의 (완벽한) 결혼을 아버지와 3년간의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며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꿈꾸는 결혼생활은 우리 모두가 흔히 경험하는 것처럼, 장밋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돌봄에도 슈만은 자살소동(1854) 뒤에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폐렴으로 생애를 마감(1856)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1849년 그녀는 독일에서 일어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무장한 무리들을 헤치고 들어가 위험에 처한 자녀들을 구해내 가정을 지켜냈으나, 8명의 자녀 중에 맏아들은 아버지처럼 정신병을 앓았고, 아이들 넷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고통을 맛봐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클라라는 출판과 연주회를 통해 죽은 남편의 작품을 끊임없이 세상에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더 나아가 고전적 낭만주의의 계승자로서 리스트와 바그너가 추구했던 신음악에 대항했던 남편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는데, 이것은 어쩌면 자신이 추구했던 음악적 신념뿐 아니라, 처절하게 부서진 결혼과 남편의 죽음으로 끝난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까지 고귀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그녀의 열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남편을 대신하여 자신의 정신적 음악적 삶을 지탱해줄 존재로서의 브람스: 브람스와의 만남(1853)은 클라라가 남편의 정신적 문제가 깊어지던 시점에서 그녀에게 있어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물론 브람스가 가진 차분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성격이 그녀와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람스는 무너져가는 가정과 바그너와 벌이고 있던 치열한 음악노선의 전투에 있어 큰 힘이 되어줄 존재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첫 만남에서 그녀가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바로 보내준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로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브람스는 그녀의 기대에 200프로 부응해 물리적, 정신적 동반자로 충실하게 관계했으며, 비록 후대에 가서는 바그너와 화해하고 그를 존경한다는 고백을 했지만, 대부분 클라라와 같은 음악적 노선의 선두에 서서 활동해 갔습니다. 그 가운데 반대파에 속했다는 이유로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키는 일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더 나은 길은 없었을까?
이렇게 클라라의 입장에서 세 음악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클라라가 1848년 이후 음악에 있어서 창조성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작곡을 거의 포기하고 오로지 남편의 작곡을 돕고 내조하는 일에 돌아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남편의 죽음과 가정이 깨어지는 경험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었겠지만, 반대로 다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에도 남겨진 남편의 작품과 음악적 노선에 집착하며 생애를 끝내버린 것은 너무나 아쉽기만 합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연주와 작곡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성실하게 발전시켜 결혼하고도 당대 최고 음악가 중에 하나였던 남편 슈만마저도 시기하고 좌절시킬 정도의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런 클라라가 자신의 취향과 더불어 남편의 노선과 달랐지만,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었던 바그너의 음악을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을 펼쳐나갔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면 클라라 자신 뿐 아니라, 평생 클라라 바라기로 살았던 가엽기까지 한 브람스도, 재봉사였던 어머니를 닮아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성실함과 인내에, 클라라가 가진 보다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적 자극이 더해 더 뛰어난 작곡가로 더 활짝 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클라라의 너무나 매혹적이고 달콤한 피아노 협주곡이 조금 서글프게 들리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어메이징 스페이스 고종훈
dyl815@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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