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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웠던 며칠간의 나날 돈을 따라서, 때론 돈과 상관없이 

2022년 12월호(15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5. 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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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웠던 며칠간의 나날
돈을 따라서, 때론 돈과 상관없이 

 

아침 6시에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 아내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의 소리를 껐다. 
나의 모닝콜은 정확히 30분 뒤에 울릴 예정이라 반 시간의 달콤함을 더 즐기다 눈을 뜰 예정이다. 7시 30분이면 집을 나서는 아내의 출근 전 풍경은 분주하고도 빠듯하다. 아침에 국이라도 하나 끓여놓고 나서는 날이면 시간을 더욱 살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아침을 준비하기도 빠듯할까 싶어 나도 슬그머니 식탁으로 나왔다. 요즘같이 가을 추위가 성큼 다가오는 날엔 해가 짧아지고 날 밝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서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식탁에는 과일이 놓이고 갓 데운 빵과 함께 마실 커피가 올려진다. 순차적으로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서 끓이는 동안 알맹이로 있는 커피를 그라인드에 갈아서 핸드 드립을 준비한다. 서버에 거름종이를 올리고 작은 주전자에 담은 물을 갈린 커피 위에 부으면 커피 빵이 부풀어 오르며 신선하고 상큼한 향을 발산한다. 심호흡하듯 후각으로 커피 향을 빨아들이면 그 원산지인 케냐의 초원이 떠오르기도 하고 과테말라나 인도네시아의 자바가 상상되기도 한다. 계란프라이에 쨈까지 대령을 하면 완벽하게 아침상이 차려진다. 십여 분 정도의 짧은 식사 시간이나마 따스한 차와 대화가 오간다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다. 아내가 먼저 출근하면 8시쯤 아이를 깨워서 등교 준비를 돕고 아침을 먹여서 함께 나오는데 지난 며칠은 이런 리듬을 깬 시간이 많았다. 

하루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6시에 촬영 현장에 도착해야 했고, 한 번은 6시 20분에 마을버스를 타고 6시 40분쯤에는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자차로 이동하는 날이면 어둠과 새벽 어스름이 부담스럽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면 느낌이 다르다. 대다수가 아직 잠들어있을 것 같은 시간에도 부지런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는 어쩌다 한 번씩 그렇게 이른 시간에 세상으로 나서는 것뿐인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앞선 시간을 살아간다는 점에 새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리라.      
최근에야 비로소 나의 대학원 학자금을 다 갚았다. 대학원 입학 10년 만이고 졸업한 지 7년째의 부채가 사라진 것이다. 알고 보니 대학원 동료들 중에는 직장 업무와의 연계성으로 인해 대체적으로 회사의 후원하에서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업과 큰 방송사의 직원이라 학비 걱정 없이 같은 공부를 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후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시간이라도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 고마울 따름이었는데 말이다. 내 돈 내고 내가 공부한 시간이었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외에 다른 위안이 있을까?

다달이 나가던 융자를 끄고 나니 이젠 다른 씀씀이가 생겨났다. 처음엔 사소하고 작게 나타난 백반증이 얼굴과 몸에 번진 것이다.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아도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의료보험료를 생각하니 내 병을 스스로 키운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피부과 전문의는 얼굴과 손의 회복 반응이 빨리 나타날 것이고 몸은 속도가 느릴 것이라며 매주 두 차례씩 세달 이상의 장기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엑시모라는 광선을 쏘이고 전신에 빛을 받아야 하는 치료를 거치면서 사무실에서 대학병원으로 병원에서 약국으로 걸으며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울대학병원의 지하는 각 병원 건물로 이어지고 결재 시스템은 획기적으로 빨라져서 시간을 단축해준다. 좀 더 많은 환자를 효율적으로 보고 이른 시간 안에 불편함 없이 돌아가도록 시설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도 많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피부는 감쪽같이 예전의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전문의 선생님도 회복이 엄청 빠른 열의 한 둘에 해당하는 환자라며 치켜세우시는데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다. 솔직히 기분이 좋고 기쁘다. 전신에 광선을 쏘일 때면 늘 마음으로 기도하곤 했다. 
      
한 번 치료를 받을 때마다 제법 많은 돈이 청구되는데, 다행히 실비보험에서 커버가 되는 상황이다. 피부도 빠르게 회복되는 것은 건강한 상태로 앞으로 보게 될 아프리카의 친구들을 만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의 징표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살면서 몸에 해롭다는 니코틴과 알코올을 내 몸에 굳이 넣고 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돈 내서 공부하고 내 돈 주고 산 건강으로 타인을 향해 눈을 돌린다. 

다른 건 다 앞서가는 우리 사회에서 분단과 정치적 퇴행의 후진성을 아파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명을 따라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이 고독하고 외로운 길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삶이 제한되었기에 아끼고 집중해야 하겠다. 오늘은 맑았고 바람이 찼으며 산에 단풍이 물들고 있다.         

CMC프로덕션 제작이사/PD 이준구
ejungu@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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