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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세, ‘취업 필살기’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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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세, ‘취업 필살기’ 

 

안녕하세요? 저는 44세 나이로 다시 새롭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막연하게 30세까지 뭐든 열심히 준비하고, 그 이후로는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면 되겠지 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좁은 사고였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저의 성격상 도전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44세가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으니…

첫 번째 저의 직업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성향을 따라 찾았던 일이었죠. 대학원에서 중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그 당시 정부에서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기 위해 예체능을 비롯한 다양한 과목을 학교의 공간과 제반시설을 이용한다는 방과 후 학교 운영 취지에 감명을 받았죠. 졸업 후 근 10년 가까이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중학교, 다문화 학교 등에서 중국어 수업을 연구, 개발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수업모델을 개발하며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잘 따라오는 모습에 보람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순히 언어만을 가르치는 것에 한계도 느꼈습니다. 중국어를 열심히 배워 보겠다고 했던 친구가 범죄와 연루되어 교실에서 보이지 않았을 때, 중국어는 자장면 시킬 때 필요하냐며 반항기 가득했던 친구들을 볼 때면 아무리 수업이 재미있다 해도, 현실에서 중국어가 왜 필요한지 말로만 이야기 하는 것이 허공에 메아리치는 것 같은 회의가 들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보다, 중국어를 사용해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일을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번째 가졌던 직업이 중국어 통번역사입니다. 제가 중국어를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는 지인분의 부탁을 받고 회사제품 관련된 통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동아시아 드라마 컨퍼런스에서 여러 연사 중, 단지 제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VIP(중국의 국민작가 왕리핑王丽萍)의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VIP자리 바로 뒤에 통역사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발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제 몸이 굳어 버린 듯 얼어 붙어있는데, 진행요원이 “통역사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며 제 등을 밀어 VIP 뒤, 통역사 좌석에 앉혀주었습니다. 스크린에 깨알 같이 나온 한국어(당시 동아시아 드라마 교류현황, 발전방향, 각 나라의 영향력 있는 콘텐츠 등의 내용)를 보고, 왕리핑 작가는 저에게 통역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저걸 순식간에 다 통역을 하나하고,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뛰는 찰나 마술의 한 장면처럼 스크린이 중국어번역문으로 바뀌더군요. 가슴을 쓸어내리고, 이어지는 대화의 통역을 마무리 하고 내려오면서 전문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고시생처럼 학원을 다니며 38세 늦은 나이에 통번역 대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통역을 하는 친구들의 성향은 교육을 하는 사람들하고는 180도 다르더군요. 굉장히 적극적이고 전투적입니다. 말을 속사포처럼 빨리해야 하고, 의사전달을 거침없이 해야 하는 특성 때문입니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말 수가 원체 적은 저의 성향과는 정 반대의 직업이라 통역을 하는 내내 저를 거슬러서 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좀 익숙해지기도 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분야도 생기고, 종종 재미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2022 K-Book Copyright Market에서 양일간 1:1 비즈니스 통역을 했습니다. 영·중·일 통역사 80명이 투입되었는데, 행사 첫날 MOU 8건, 둘째 날 MOU 8건이 체결되었습니다. 쌍방의 적극적 교류와 협상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 될 때 체결한 MOU이긴 하지만, 이 중 제가 통역을 하며 양 이틀 간 8건을 체결했습니다.‘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해 출간한 바이어사인 대만 업체의 통역을 맡아서 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소설을 비롯한 교육서, 교양서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문학과 관련한 인터넷 동영상, 아동교육서 등에도 관심을 보였지요. 그래서 단순 통역을 한다기보다, 대만사가 요구하는 내용에 맞추어 컨테츠를 찾는 질문을 하고, 한국 업체 담당자는 그냥 지나가는 내용 중 조금이라도 대만사가 관심을 보일만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화제로 연결해 더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보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가고, 그 가운데 새로운 컨텐츠, 내용들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화가 가능한지, 실제 수요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요.

저는 현재 세 번째 직업으로 통번역에 국한된 직업이 아닌, 새로운 일에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19로 중국과의 왕래가 많이 줄어들면서, 통번역 횟수가 줄어든 것과 중국이라는 나라와 연관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개인이 일하는 것 뿐 아니라, 회사를 차려 저보다 젊은 친구들에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제가 일반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 즉, 경영방식, 그리고 회사 문화, 실제 수익을 내는 모델, 인사방식 등 전반적인 회사운영을 배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회사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 시작인 이력서를 최근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력서를 쓰는 포털 페이지에 저의 경력을 넣을 수 있는 카테고리가 없어 무척 당황했습니다. 교육과 통번역이 전문영역이지만 일반회사 내에서의 포지션과 딱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없더군요. 그래서 현재는 제 전공, 경력과 관계없는 회사라 하더라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한 포털에서 전문가 인증을 받고 관련 된 업무가 들어오면 즉시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만약 이력서를 아무리 넣어도 취업이 안 된다면… 제가 물류대행과 관련업체 주선을 하는 에이전시 회사를 만들어 저를 가장 먼저 취업시키려고 합니다. 무작정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통번역을 시작 할 때에도 말의 속도가 느리고, 말수가 적은 저의 성향을 거슬러 빠르게 반응해야 하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많은 내용을 말로 내뱉어야 하는(업계 용어로 일명 ‘뽑아낸다’는 표현을 씁니다.^^) 일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죠. 하지만 리더십이 부족한 제가 안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는 목표를 가지고 또 저를 거슬러 도전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막막함 가운데, 맨땅에 헤딩 하는 것 같지만, 이력서를 쓰면서 당장 해야 할 것들,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보입니다. 작은 발걸음을 떼었는데, 길을 만들어 여러분들에게 그 여정을 소개할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서울 송파구 김송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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