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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방, 7평 한옥 이야기 - 도시는 서로 의지해 살며 함께 지어가는 집이다.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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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천의 건축이야기 3]
 

도시의 방, 7평 한옥 이야기 
- 도시는 서로 의지해 살며 함께 지어가는 집이다.

 
2023년 새해, 첫 소개할 내용은 도시의 변화로 10년간 버려졌던 7평 한옥 이야기다.

도시는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모여 살기위해 생겨났다. 특히 현대도시는 소비를 통해 가치를 교환하면서 개인을 표현하고 부를 축적해 왔다. 소유해도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지만 쓰레기도 함께 생산하는 이유가 되었다. 특히 새 집에 살고 싶어 옛 것을 파괴하는 도심재개발은 욕망의 끝판 왕이다. 이런 불행한 흐름 속에서 오래된 도심임에도 역사경관을 유지해온 동네가 있다.  


경복궁의 서측에 위치해 흔히 ‘서촌’이라 부르는 마을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이 밀집해있다. 서촌한옥은 옛길을 따라 나뉜 크고 작은 땅과 그 모양에 맞춰 30평부터 10평까지 면적과 형태가 다양하다. 이렇게 옛 마을인 서촌이 살아남은 것은 문화재인 경복궁과 사직단 사이에 있어 재개발이 쉽지 않았고 여전히 정부기관과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서 오래된 주거로서 한옥과 주택이 남겨질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에 의한 경제발전과 인구팽창으로 강남과 수도권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현대생활에 편리한 주거지가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낡고 불편한 한옥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현재 성장을 추구하고 급격한 발전으로 팽창하던 도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고령인구가 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1인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해 가족구성이 바뀌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에 낡고 살기 불편한 한옥은 버려지게 되었고, 빈집으로 방치된 채 관리가 부재해 위생문제와 마을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 되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생활문화유산이 버려지고 썩어가는 상황이 되었지만 최근 젊은 세대들의 한옥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1년 여름, 경복궁역 인근 금천시장에서 체부동 성결교회 자리를 지나 골목을 따라 걸어서 찾은 땅에는 한옥인지 양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낡은 집이 있었다. 또 이상하게 한옥이 낮아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도로가 땅보다 높아지면서 마당이 물통이 되어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찼는지 습하고 역한 냄새가 났다. 땅의 크기가 12평으로 집이 땅을 가득 채우면서 마당을 막는데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낡은 한옥이었다. 그러나 남북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빛이 잘 들어서 잘 고치면 편안하고 오래된 마을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12평 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은 커봐야 7평 정도다. 한옥을 짓는다면 처마길이가 필요하니 면적은 더 작아질 수도 있다. 낡은 한옥 앞에 서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살 집이라면 화장실과 방, 부엌까지 갖춰야 하고, 한옥이니 좁더라도 마당을 확보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웬만한 아파트의 방1개 크기 밖에 안 되는 한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한참동안 골목을 보며 언젠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 상상을 해봤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모퉁이 빵집에 들러 내일 아침 빵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골목 초입 슈퍼에서 저녁거리를 산 후 골목으로 들어오는 사람,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서며 출근하는 이웃과 인사하며 분주히 골목을 빠져나가는 사람. 여기서 우리는 이 한옥은 좁은 땅이 아닌 거대도시 서울에 지어지는 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집이라면 소유하거나 일정기간 빌려 사는 구조물이라 생각하는데 그 집은 길을 통해 시장, 음식점, 카페, 전시관 등 다른 시설들과 연결된다. 집이 도시의 방과 같고 동네식당은 부엌이며 세탁소가 옷장이 되고 카페가 사무실, 도서관은 서재인 셈이다. 도시가 연장된 나의 집이 된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도시라는 집 속의 12평 땅에 방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우리는 이 땅을 하나의 그릇으로 보았다. 작은 땅에서 모든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방처럼 작용하고,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의 구석구석에 담기도록 했다. 내부는 2인용 침대와 부엌싱크, 책꽂이와 수납장, 화장실, 세면실, 샤워실, 욕조, 거실로 이루어진다. 침대를 놓은 칸은 동측으로 창을 내서 잠자는 이가 아침에 해의 기운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고 창을 둥글게 만들어 밝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또 거실에 욕조를 배치해 바쁜 일상을 마치고 들어온 이가 심신을 편안히 하고 잠들 수 있도록 계획했다. 욕조와 침대 모두 마당과 닿아있는데 지붕이 열린 방으로서 마당은 한옥의 중심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생활이 교차하고 도시와 집이 만나는 그곳이 마당인 것이다. 집들이 도시의 방이라면 그 방들을 연결하는 길은 도시의 복도라 부를 수 있겠다. 이를 한옥공간으로 해석해보면 집 앞 골목은 이웃과 함께 쓰는 툇마루이고, 골목이 교차하며 넓어진 곳에 평상을 놓고 사람들이 모인다면 하늘이 뚫린 큰 대청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고도로 연결된 사회에서는 집이 작다고 내 생활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집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내 집이 도시와 얼마나 잘 연결되었느냐!’가 중요하다. 나와 내 집이 연결된 마을과 도시 또한 내 집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생활은 내가 점유한 공간으로만 한정하면  안된다. 작은 집이 아닌 큰 방의 개념으로 내 공간을 작게 소유하고 도시라는 집 속에서 함께 나누고 살아간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낡았다고 불편하다고 새 것만 찾지 말고, 옛 것을 새롭게 본다면 버리지 않고도 변화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참우리건축, 김원천 한옥건축가
building@chamooree.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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