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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다시 쓰는 일기장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9. 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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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다시 쓰는 일기장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골집에 혼자 계시던 친정 엄마는 2018년 봄에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되었습니다. 왼쪽 편마비가 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뉴욕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종합병원에서 거의 1년을 치료하고 재활하셨고, 동생 집에서 6개월을 생활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 누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면 좋겠다.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다오”라고 하셨습니다. 엄마의 부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에서 애원으로, 절규로 변했습니다.  

2021년 7월!  7년 만에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국, 고향 땅이었습니다.

과거를 허물다
오자마자 가장 먼저 100년이 된 시골 흙집,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부수고 고쳤습니다. 오래 묵은 짐들을 버리고 정리하는데만 무더운 여름 내내 한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구조, 엄마가 생활하시기에 더 안락한 환경의 집을 지었습니다.

 엄마의 현실을 대면하다
요양병원의 복잡한 퇴원 절차를 거쳐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엄마의 재활에 대해 나는 희망과 의욕이 넘쳤었고 나름 계획도 서 있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제대로 검진도 받고 재활프로그램도 하고, 편안한 집에서 지내면 금방 일어서고 걷고 일상이 회복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의 현실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왼쪽 편마비는 더 심각한 상태가 되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시고, 요양병원에서 누워만 지내다 보니 오른쪽 다리마저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건 엄마와 나만의 착각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엄마는 건강한 이웃분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한 감정에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엄마는 혈관성 치매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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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안 된 나를 대면하다
요양병원에서 엄마를 집으로 퇴원시켜 모셔 오고 처음 한 달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시골 생활에 적응도 해야 했고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이나 힘들어서 ‘내가 괜히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처한 것인가?’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엄마가 우울한 건지 내가 우울한 건지, 내가 아픈 건지 엄마가 아픈 건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엄마가 약을 안 먹겠다고 뱉어내고, 침을 뱉고, 욕을 할 때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24시간 나를 찾는 엄마 곁을 지켜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나의 자유는 없어졌고, 내 존재가 없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은 때로 무기력함과 좌절의 늪에 빠지게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메이는 삶이 이렇게 힘든지 미처 몰랐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다
이대로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이 왔다갔다 하여 119구급차를 타고 한밤중에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음식을 삼키는 것도 안되었습니다. 가족들이 호출되었고 엄마가 돌아가시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이후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시간에 여러 형제들 중 내가 초대되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시간이 존엄한 한 인간으로, 가치 있고 행복한 삶으로 채워지는데 내 인생의 일부를 드리자. 이 마음 힘들 때에도 변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먼저 경험도 없이 엎치락뒤치락 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을 배우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엄마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듣는 좋은 생활패턴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엄마 같은 환자는 잘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병원 침대에 반쯤 기대어 식사하고 그 외 시간엔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았던 엄마는 휠체어에 5분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동네 산책이라도 하려면 먼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는 훈련을 했고, 날씨가 허락하는 한, 하루 2~3번 규칙적인 산책을 했습니다. 팔운동, 다리운동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치매 엄마와의 동행, 그 속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
휠체어 타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들을 보시고 혼잣말을 하십니다.
“다 소용없는 짓이여~ 그래봤자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일이여.” 엄마는 아프시기 전 동네에서 누구보다 억척같이, 열심히 사셨던 분이셨는데 이제 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하십니다. 엄마가 하루에 12번도 더 물어보시는 게 있습니다. “느그 아버지 어디 가셨냐? 아랫방에 주무시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엊그제처럼 너무나 생생하고 좋은 기억만 남아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너무 속상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참다 참다 화가 폭발해 나도 소리치고 화를 냈는데 엄마는 금새 잊어버리십니다. “엄마, 나는 화가 너무 자주 나고 짜증이 나.” 사과하려고 운을 떼는데… 엄마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엄마의 현재도, 과거도 점점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지 1년 3개월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작년 가을에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동네분들이 엄마 얼굴색이 너무 좋아지셨다고 할 정도니까요. 나도 엄마도 많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엄마랑 색칠 공부도 하고, 글씨 쓰는 연습도 하고 함께 노래 부르기도 합니다.

 50년 만의 동행
엄마의 마지막을 내가 지켜주고, 엄마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갚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마지막까지 나를 가르치고 일깨우십니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내 인생에서 지금이 엄마와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입니다. 매일 체온을 체크하고, 눈동자를 살피고, 세수를 시켜 드립니다. 밤의 잠자리와 숨소리, 세끼 식사량, 생리현상, 손발의 체온까지 내 감각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먼 훗날에 오늘을 돌아보면 그래도 “참 잘했다”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겠지요.​ 이렇게 가까이서 엄마의 마지막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기억입니다.

엄마~~사랑해요♡♡
아직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남 무안에서 박정미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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