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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리랑’과 너무 다른 스코틀랜드의 ‘아리랑’을 만나다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9. 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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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리랑’과 너무 다른 
스코틀랜드의 ‘아리랑’을 만나다

로버트 번즈,‘A Red, Red Rose’(1874)

 

‘아리랑’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국 음악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 국제적 행사에서 애국가만큼이나 많이 불러지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일 테니까요. 세계를 휩쓸고 있는 K-팝의 선봉장 BTS도 빼놓지 않고 아리랑을 앨범에 수록해 발표했다지요. 그런데 영국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리랑처럼 사랑받는 노래(시)가 있으니, 바로 ‘A Red, Red Rose’라는 곡(시)입니다. 가수로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밥 딜런은 이 노래의 가사를 두고 ‘가장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시’라고 말했을 정도인데, 여기서 가사를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극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아리랑이 그 감정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고 표현했다면, 이 곡(시)은 ‘나는 다시 돌아오리라. 내 사랑아, 만 마일만큼 먼 길일지라도.’라고 노래합니다. 얼핏 보면 둘 다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듯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하고 엄청난 역사적, 문화적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여성적인 아리랑, 남성적인 ‘A Red, Red Rose’
가장 먼저 우리는 어떤 곡이 한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를 대변할 정도의 사랑을 받는 곡이라는 사실에서 그 곡에 그 민족이 가진 정서 혹은 기질과 통하는 무엇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두 곡을 비교해 보면, 노래를 부르는 주체가 확실히 다릅니다. 아리랑은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쪽이 주체고, ‘A Red, Red Rose’는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쪽이 주체가 되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여성적인 반면에, 후자는 남성적인 성격을 띱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리랑은 떠나는 임을 향해 잡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원망하며 그리워하는 수줍은 여성적 성격이 강하다 할 수 있다면, 반면에 ‘A Red, Red Rose’는 바닷물이 말라도, 바위가 녹아내리고, 인생의 시간이 다 끝나더라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강한 결의를 남성적으로 확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기어드 홉스테드가《문화척도론》에서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낳는 척도 중에, 적극적인 성취를 중요시하는 남성성(여성성은 관계 중심)이 한국은 36인 반면에 영국(스코틀랜드 포함)은 66인 것과도 연관됩니다. 한국인은 기질상 여성적 성격이 강하고, 스코틀랜드인들은 남성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지요.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겠지만, 한국과 스코틀랜드가 겪어온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생각은 달라집니다.

삼면의 바다와 계층제도의 이중 울타리에 갇혀 부른 노래 ‘아리랑’
중국, 일본, 러시아와 미국에 이르기까지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고래싸움에 등터지듯 지내온 새우 같은 존재라는 사실이 한민족의 역사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지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오랫동안 은둔의 나라로 한반도에 갇혀 지내왔습니다. 특별히 조선시대 유교의 산물인 사농공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계층의 감옥이 더해져 옴짝달싹 못하듯 질식하듯 갇혀 살아온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속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빼앗기고, 끌려 다니는 것이 당연시 된 사회 속에서 한민족의 여성적인 성향은 더욱 강해져 갔고, 원망과 한으로 화병을 가득 안은 채, 외부와 내부의 도전에 철저히 무능하고 끌려가는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고 만 것입니다. 그 속에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외부의 도움으로 독립을 맞았으나 곧 그 외부의 힘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6.25의 처참한 전쟁을 겪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 속에서 애처롭게 혹은 세상을 등지듯이 신명나게 불렀던 노래가 바로 우리의 아리랑은 아닐까요?


사면의 바다와 패권국 영국의 영광을 자신의 길로 개척하며 부른 노래 ‘A Red, Red Rose’
이런 우리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덜 겪었지만 끊임 없이 영국과 붙어 있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오랜 시간 겪은 나라입니다. 11세기 이후 영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영국의 지배에 저항했던 스코틀랜드는 1707년 영국과 병합되어 현재까지 왔지만, 2014년 영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 투표에서 볼 수 있듯이 끊임없이 자국의 독립을 추구해 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보다 오랜 시간을 독립을 위해 싸워온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원망 속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고,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간 독립을 위한 노력과 당시 세계패권국으로서 영국이 가진 좋은 전통과 시스템들을 이용하여 밖으로 뻗어나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인들은 개인적인 성공과 더 나아가 대영제국의 준남작이나 기사 등의 신분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고향을 떠나 자원해 배를 탔고, 가장 힘든 전투와 개척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속에서 읊으며, 부른 노래가 바로 ‘A Red, Red Rose’인 것입니다.

종교적 각성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다
이 과정 속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국왕이 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영국과 달리, 칼뱅의 개신교를 받아들여 국가의 종교적 간섭을 거부했는데, 스코틀랜드인들은 교회의 이러한 성격을 영국에 대한 독립적 운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 존 녹스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스코틀랜드는 신앙뿐 아니라 도덕적 각성을 이루어 특히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의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젊은이들을 향한 교육에 집중해 18세기에는 애든버러나 글래스고우 대학에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몰려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을 통해 18, 19세기에 인문, 사회, 문학 등의 다방면에서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잉글랜드의 주축이 되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제학자인《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있으며, ‘A Red, Red Rose’를 발굴해 정리했을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존경받은 인물이 된 문학가 로버트 번즈(1759~1796)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전의 부끄러운 평가를 벗어나, 아리랑을 넘어, 우주 끝에 가서라도 자랑스럽게 부를 새로운 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A Red, Red Rose’를 전혀 다른 마음으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메이징 스페이스 고종훈
dyl815@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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