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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누구인가?1

2018년 6월호(제10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6. 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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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사후여행으로서의 연구여행]


일본인은 누구인가? 1



 일본여행 후에 우리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던 역사(‘메이지유신’), 그들의 종교(‘(국가)신도’)와 헌법(‘평화헌법’)에 대해서 가상적인 연구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매우 독특한 ‘결과들’ 혹은 ‘작품들’을 만든 일본인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결과물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반면에 일본인의 깊은 마음과 생각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앉아 있길래 그런 특이한 행동과 그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삶과 행동의 동기, 목적, 혹은 심리적 기전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규정하는 일은 훨씬 어렵습니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인에 관련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육체적 차원부터 점차로 복합적, 정신적, 심리적, 역사적 차원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첫째, 일본인에 대한 불변적 요소인 그들의 살과 피, 즉 ‘DNA’와 그들의 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말’과 같이 일본인이 본래적으로 가진 변화 불가능한 생물학적 기초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둘째, 이런 기초를 지닌 사람들이 커다란 네 가지 섬들로 이루어져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들어가서 맞이한 것이 지리, 기후, 지질, 지형 등의 자연환경입니다. 같은 불변적 요소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갔을 독특한 개인(심리)적, 공동체적 정체성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 않고 살았던 사람과 분명히 달라진 점을 살피려고 합니다.
 셋째, 그렇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자기들끼리 내부적으로, 혹은 외부인들과 주고받으면서 역동적 교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내었던 일본글(가나),사회, 경제, 정치와 외교군사와 같은 지정학적, 역사적 결과를 찾을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서 일본인들 안에 독특한 심리상태, 시-공간감각, 세계관과 윤리관, 사회관과 전쟁관과 같은 가치관들을 형성했을 겁니다. 
 넷째, 만약에 ‘일본인이 누구인가’를 질문할 때 내면과 심리적 상태만 따진다면 매우 지엽적이고 피상적이고 일반적 대답만 얻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차원과 시간, 역사라는 넷째 차원으로 통합해서 살펴보아야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인이 ‘누구인가’는 질문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품으며 ‘무엇을 만들었느냐’는 질문과도 반드시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일본인들을 이렇게 네 가지 차원에서 총체적, 통합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이어서 이런 모습을 지구상에 있는 다른 민족과 문화와 비교하는 차원을 더 부가하여 일본인에 대한 더할 나위없는 풍성한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차원을 목적으로 지면에 글을 쓰는 것은 A4로 된 2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도형이나 4차원의 역동적인 사건을 설명할 때에 발생하는 심각한 어려움이 생깁니다. 물론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들이라면 한 사안이 다차원적, 다양한 사안들과 서로 연관된 것을 즉각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저를 비롯하여 현대 역사를 1945년 이후에 매우 짧은 시간에 본격적으로 경험한 보통의 한국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급격한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목표로 지냈기 때문에 이런 다차원적인 상상력을 창조적으로 발휘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채로 살았습니다. 이제 이 글에서 일본인에 대해서 한 차원을 설명할 때에 연관된 다양한 차원들을 끌어들여서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필요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합적인 상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어려움은 넘어서야겠지요? 





 1. 기마민족 DNA 45%인 일본인, 한국말과 유사한 일본말이라는 생물학적 조건 
 
 일본인의 살과 피
 먼저 일본인의 맨 몸, 육체부터 시작해 봅시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후 한반도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눈에 매우 특이하게 보였던 점은 키 작은 일본순사가 키 큰 조선인들을 묶어서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지요. 오래 전부터 일본인을 ‘왜인’(矮人, 倭人)이라고 중국과 한반도에서 불러온 것에는 작은 키나 신체에 대한 인상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된 조금 더 과학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 속의 키가 크고 활달한 북방계, 기마민족의 DNA는 55%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45%라는 겁니다. 일본의 천황이 근년에 자신의 조상에 백제계가 섞여 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하여서 우리에게는 당연한데 왜 그러느냐 하지만 그쪽에서는 파장이 살짝 일었지요. 그만큼 이제는 일본인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계열이 최초의 통일정권인 야마토정권을 3세기 후반 즈음에 세운 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백제 의자왕의 패배 직후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에서 2만7천 혹은 3만 명의 군대를 파병하여 ‘백촌강전투’(663)-비록 패배했지만-를 치른 역사는 일본과 백제 사이의 긴밀한 관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백제는 사실상 기마민족적인 고구려에서 파생된 정권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DNA속에, 대륙과 더 연관된 한국인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남겨진 기마민족 흔적이 강력하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일본인이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의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남방계의 DNA가 55% 정도 가진 사실은 현대에도 일본인을 한국인의 외적 풍채와 비교하면 즉각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 전국戰國시대에 나가시노에서 다케다 신켄의 무적 기마부대를 오다 노부나가가 서양의 스페인에서 배운 철포대로 물리치기 전(1575)까지, 말(胡馬)이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진 점도 이런 기마민족적인 기원을 잘 드러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DNA상으로 보면 북방계의 피와 함께 더 많은 남방계의 피가 일본인의 몸에 흐르는 것은 일본문화가 남방계가 움직여간 통로인 바다, 즉 ‘해양성’을 선명히 드러냅니다. 제주도의 화산암으로 된 돌하루방이 태평양 남부에 있는 멜라네시아 제도에서 발견되는 우뚝 솟은 돌상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 한반도 남부인들이 남방계의 영향을 받은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또 중요한 예가 바로 해양적 양상을 보이는 일본 신화가 완전히 섬나라였던 오끼나와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겁니다. 서울대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보는 책인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1997)의 결론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류가 동진하면서 흩어져나가면서 북쪽으로는 베링해협을 건너서 남미대륙까지 갔지만, 남쪽으로는 태평양의 바다까지 뻗어나가서 드디어는 서쪽으로 빙둘러온 서유럽의 정복자들과 18세기에 만난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에 지리적으로 놓인 일본에서 남방계가 주도적이 되었던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그런데 남방계의 지리적 특징은 아주 오랫동안 한없이 드넓게 펼쳐진 태평양의 수평선을 마주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겁니다. 가토 슈이치는 이런 수평적 시각은 일본 건축물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탑이 아니라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양식을 가진 점, 즉 일본 건축에서의 수평선 지향적 관점과 연관된다고 여깁니다. 

 한국인이 제일 배우기 쉬운 일본말
 일본인이 이렇게 남방계와 북방계가 혼합된 점을 잘 나타나는 것이 일본말입니다. 일본어로 하나의 뜻을 가진 한자가 다양하게 발음되는 점은 외국인들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의 하나가 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이상하게 된 이유는 한자가 중국에서 수입되면서 뜻에 해당하는 남방계의 원래 표현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현재도 한국인들이 4성조를 가진 중국말을 완전히 학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데, 일본인들이 훨씬 더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주로 자음+모음의 조합으로만 음절과 단어를 만드는 일본인들이 자음+모음+자음의 조합된 음절에 더하여 4성까지 표현해야 하니 말입니다. 또 한문의 발음이 중국어와 유사하고 한국식과 유사하게 발음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한문의 원음이나 한국적 발음과 전혀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틀림없이 남방계 언어에서의 발음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이 원형으로 된 나라가 아니라 ‘서남쪽과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길쭉한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 구석에서는 한자의 발음을 그대로 쓰지만 전혀 반대되는 다른 쪽에서는 남방계에서 유래한 단어를 쓰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어순語順’으로 본다면, 한국인들이 일본말을 가장 배우기 쉬운 이유가 짐작이 바로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말과 일본말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은 몽골어부터, 한국전쟁 때에 우리에게 군대를 보내어주었던 고마운, 터어키어를 넘어서 헝가리어까지 뻗어나간 알타이어계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인의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남방계가 먼저 주도적으로 진출하여서 일본 초기의 조몬문화나 이어진 야요이문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고구려에 이어서 백제까지 이어진 기마민족이 한반도 남서부의 바다쓰레기도 자연스럽게 물길을 따라 흐르면 현해탄을 건너서 도착하게 되는 규슈까지 진출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인 ‘야마토국’이 수립되었는데, 기마민족이 DNA상으로는 45% 밖에 되지 않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압도해서 정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복자들이 일본에서 사용하는 제도, 언어 등은 완벽히 주도하였을 것이지만, 머리 숫자로는 더 많은 남방계의 언어 중에서 특정 단어 혹은 표현들은 현재의 일본어에 스며들어왔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이런 정치, 군사적 정복과 일본어가 구성된 모습은 지구 정반대편의 나라인 영국에서의 영어형성과 매우 유사합니다. 서로마가 붕괴하자 로마가 지배하던 영국의 남부의 로마지배권도 붕괴합니다. 이후 유럽 전체는 동쪽의 훈족의 압박을 피하려는 게르만족과 고트족의 서진으로 유럽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혼란이 일어나며 문명이 파괴되며 어두움이 지속됩니다. 그런 가운데 영국에 거주하던 족속들이 게르만족의 일부인 앵글로 삭슨족의 침입으로 북쪽으로 밀리며 정복당합니다(1066). 이런 가운데 형성된 영어는 현재로는 매우 독특하게 게르만어인 독일어와 라틴계 언어인 프랑스어가 서로 섞인 것이지만 주로 정복민족인 게르만어적 경향이 더 강한 언어인 겁니다. 물론 한반도에서 일본까지의 ‘지리적 최단거리’(부산-시모노세끼)는 프랑스에서 영국의 그것(깔레-도버)의 2.5배 정도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완전한 비교는 힘들긴 합니다. 독일어 동사 앞에 전치사가 붙었다 떨어졌다(분리-비분리 전철)하는 것이 외국인들이 독일어를 비롯한 게르만어를 배울 때에 어려운 점입니다. 영어에서 이런 게르만어계에서 온 동사+전치사의 수많은 용례(phrasal verb)를 공부하는 것이 게르만어계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동일하게 무척 힘듭니다. 그렇지만 결국 언어는 지배하는 쪽이 사용하는 대로 강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군이 완벽하게 지배했던 포로수용소가 통역이 없이 독일어로도 완벽히 돌아갔던 것처럼 정치적 군사적 정복은 언어적 정복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2. 험준하고 변화 많은 지리, ‘불의 고리’의 일부가 된 지질, 덥고 습한 해양성 기후조건 

 험준하고 변화 많은 지리
 서남에서 동북으로 길쭉하게 뻗어나간 일본의 지리적 환경에 자란 사람들이 한반도, 특히 이리저리 출렁거리며 흘러가는 긴 강을 가진 경상도나 전라도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너른 평야들을 바라보면 매우 감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릴 적부터 경험한 것은 좁고 험준한 산과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국인들이 일본여행을 하면 ‘칼로 베어놓은 것 같은 깊은 계곡’이나 ‘높고 가파른 산세’, 그러다 어느새 좁은 평야 지대를 지나 태평양을 면한 해안지대가 나와서 너무나 자주 그리고 크게 변화하는 풍경에 감탄합니다. 일본의 평지에 있는 하천조차 깊고 빠릅니다.
이런 지형 속에 살면 자연히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고립이 심화되고 마을 안에서의 삶이 우주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또 고향을 찾는 버릇은 어떤 민족에게나 있는 현상이지만, 일본인은 유별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거나 사업을 해도 거기에 머무는 확률은 한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크게 떨어집니다. 외국에 가도 가기 전에 정해진 유학생이라는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고 외국에 정착하여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다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거의 망명하지 않는다는 정식 같은 것이 성립될 정도입니다. 또 중국이나 유럽인들과 다르게 일본인들은 외국여행을 해도 여행에 대한 노래를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속한 곳은 일본뿐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놀이로 하꼬니와(箱庭 상자로 만든 정원)가 있습니다. 작은 상자 속에 고운 흙이나 모래로 산, 강, 마을 등을 만들어놓고 즐기는 놀이입니다. 일본의 좁은 지리적 특성을 잘 나타내는 놀이인 셈입니다. 또한 분재, 다도, 수석, 꽃꽂이 등과 같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일본에 크게 유행하는 취미들은, 모두 좁은 공간 안에 하나의 세계와 우주를 다 표현하는 ‘하꼬니와 식의 일본미학’의 소산으로 일본 풍토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예술입니다.
이런 점은 일본인들이 섬나라인 자신들의 땅 자체가 바로 우주의 전부이며,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폐쇄된 공간인 ‘여기’-‘지금’의 삶을 사는 세계관을 형성하게 한 겁니다. 즉 ‘저기’-‘그때’(과거)/‘앞으로’(미래)를 향한 탈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이나 유럽에서 흔한 과거/미래의 유토피아를 향한 탈출을 시도하는 현상은 일본에 아주 드문 이유입니다. 일본인들이 가진 이런 ‘여기-지금’의 시간, 공간관 때문에 다음과 같은 역사를 형성하였습니다.
첫째, 마을마다 폐쇄되고 자급자족한 독립적 정치공간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한반도에 독립정권들이 가장 많았을 때가 삼한(마한, 진한, 변한)과 삼국(신라, 백제, 고구려)을 합쳐도 10개도 채 되지 않으나, 일본에는 280여개 이상이 되는 작은 독립국인 ‘쿠니’國들이 존재했습니다. 또 한반도에서는 반란을 일으키면 도망갈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중세 일본에 오지에 숨어서 독자적 (원시)생활을 영위하는 ‘낙인’落人부락이 134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또 각 지역의 독자적 생산물, 군사기술, 토목기술에 대해 지역마다 엄격한 비밀주의가 지켜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무사정권인 도쿠가와 막부(1614-1868)도 사실상 중앙집권적 통치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호의적(슈고다이묘) 혹은 비호의적(도지마 다이묘) 지방정권들에게 가까운 혹은 먼 땅-사람들을 나누어주는, 일본식의 봉건조직에 의해서 통치되었던 겁니다.  
둘째, 이런 지형 속에서 농사를 짓기 위한 저수지 하나를 창조, 유지, 보수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보다도 몇 십배의 인력과 노력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20번째로 긴 강인 지쿠고 강을 17세기에 다스릴 때에 상류의 산에서 돌을 무려 32만 제곱미터나 날랐고, 주변의 부락에서 총 62만명이나 동원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경작지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던 현실로 우리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하고서도 보통의 일본군인들 조차도 끝까지 내어놓지 않으려고 하면서 떠나는 것을 못내 섭섭해 했던 지역이 일본의 곡창노릇을 했던 한반도,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의 곡창지대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조선병탄(1910)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도 일본의 조선곡물수탈은 바로 청일전쟁 직후(1894)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들의 보기에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본을 위해서 물자도 사람(성노예, 징병, 징용)도 마음껏 빼먹을 수 있는 노른자위 식민지였던 셈입니다. 또 메이지유신(1868)이 성공하자마자 곧 바로 정한론 논쟁(1871)이 일어난 사실을 저는 이런 관점이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서양 따라 잡기만 해도 매우 급했고 자신도 이미 서양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해결한 것도 아닌 상태였지요. 하지만 서양을 제대로 자각하자마자 즉각 이웃나라를 잡아먹자는 주장이 어떻게 그렇게 전쟁직전까지 몰려갈 정도로 전국적 논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런 지리, 지형적 관점에서 본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평정한 후에 일으킨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은 단순히 그가 일본 통일을 위해 모은 군사적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은 것이라는 기존해석은 너무 평이한 주장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전쟁도 사실은 일본의 불리한 지리적 여건을 돌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본인들 속에 내재한 가운데 일어난 것으로 보는 관점이 훨씬 낫습니다. 당시 정한론 논쟁은 결국 없던 일로 결론 났는데, 그것은 이웃나라를 정복하는 일이 정치 윤리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모든 일본인들이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는데 동의한 셈입니다. 자신이 조선에 가서 난을 일으키고 순교할 터이니 그것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라고 정한론을 주장한 사람은 지금의 규슈 남부 가고시마에 거점을 두었던 사쓰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입니다. 그는 결국 일본식의 과격한 행동을 일으킬 수 없자 세이난西南전쟁(1877)을 일으키지만 패배합니다. 그렇지만 청일전쟁 후 조선병탄이 기정사실화되자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메이지유신 공신들은 그의 묘에서 ‘자네의 소원대로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나’라는 말을 내뱉었지요.
셋째, 이렇게 자신들의 폐쇄된 지리적 환경이 전부였기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메이지유신과 같이 전일본이 일단 통일되고 나면 그 속에 엄청난 단결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을 보였습니다. 그 단결력으로 해외를 향해서 뻗어나가려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보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말과 같이 250년 이상 지속된 도쿠가와의 평화Pax Tokugawa는 일본역사에서 오히려 예외적이고 진귀한 현상에 속합니다. 이런 사실과 함께 매우 뼈있게 들릴 수밖에 없는 농담 반 진담 반인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인 한 명은 일본인 백 명을 감당하나, 일본인 세 명은 한국인 백 명을 당해낸다.” 그 역사적 실제가 바로 일본인들이 열배 이상으로 많은 중국인에 대항해서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을 일으키면서 오랫동안 버텨내었던 사실입니다. 역사에서 필요한 가정을 해 봅시다. 만약 장개석과 모택동이 시골로 대피한 가운데 게릴라전이 아니라 도시나 평야에서의 전면전으로 일본을 대항했다면 또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그 큰 대륙 중국을 장기 통치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겁니다. 정주민족인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은 오랫동안 힘 있는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지배되는 전통이 습관화된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힘의 통치를 아주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마민족이 세운 정권인 청나라가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중국을 훨씬 오랫동안 지배했을 것입니다. 만약 부분적 기마민족인 일본이 그렇게 중국을 경영해 보았다면, 기마민족적 기질을 더 많은 우리가 중국에 대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인가요? 물론 좋고 선한 의미에서 말입니다. 

다음호 (일본인은 누구인가? 2) 로 이어집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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