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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서양은 아직도 대결 중?

2018년 9월호(제10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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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영국, 미국의 패권경쟁 역사]


중국과 서양은 아직도 대결 중?

(19C 청나라vs영국, 21C 중국vs미국)


중국과 서양의 대결의 응급성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은 단순히 속담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작은 나라는 항상 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1840년 6월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전쟁이 일어났지만 조선은 거기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관심을 가지고 사건을 지켜보았고 청의 약점을 신속하게 파악했습니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청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타이완을 자신의 세력 안에 넣고(1874) 류큐국(오키나와)도 복속시켰습니다(1879). 게다가 청일전쟁(1894)을 통하여 조선도 자신의 세력 안에 넣고 타이완을 병합했습니다. 과거 조선은 우리끼리 싸우는 바람에(당쟁) 세계를 향한 눈과 귀를 스스로 가리워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2016년 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로 인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을, 중국과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저를 비롯한 모든 국민이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사드자체는 북한의 핵문제가 주요쟁점이지만, 팽창하는 중국세력을 막기 위한 미국의 방어전략이기도 합니다. 사드사건이 터지면서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할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알지 못해 오락가락 하다가, 미국의 신임도 중국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낙동강 오리알이 될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과거의 비참했던 조선의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않는다면, 거대한 제국인 중국과 미국 간 대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조상들이 겪은 치욕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미래를 겪지 않도록, 우선 160년 전의 아편전쟁 당시의 중국과 영국의 대결을 통해 국제정세의 흐름을 살펴보고, 현재 중국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통해 우리가 대처할 길을 찾아봅시다. 


1. 19세기 아편전쟁 당시 청나라(중국)와 영국의 대결

청조의 무능

난징조약 이전의 중국은 동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하는 제국이었습니다. 강력한 통치력과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경제력은 서양이 쉽사리 넘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무렵 청조말기에 이르자, 무능과 부패로 외세를 물리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중화사상’이란 자만에 빠져, 급속도로 발전한 서양의 상황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얕보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중국 국민들은 일어나 외세와 대항했는데 정작, 청조는 백성들의 세력이 이 기회에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백성의 영국에 대한 저항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강제 편입된 종속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난징조약 이전까지 서양과 관계를 맺는 방식인 광동체제가 아니라 서양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편입되고 만 것이죠. 


무역불균형으로 인한 분쟁발생

1781년부터 1810년까지 중국에 유입된 은은 무려 4,200만냥 수준입니다. 중국의 엄청난 인구를 기반으로 한 수공업은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을 능가하였습니다. 영국은 이런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세워 인도의 면화와 청의 은을 이용한 삼각무역으로 돌파하고자 하였으나, 청은 면화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영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19세기 중국차가 영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영국의 일반가정 수입의 5%가 차 구매에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대중국 무역의 90%를 독점하는 것이 차였고 그 비용을 지불된 은은 무려 2만 8천톤을 돌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꺼낸 카드는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밀무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로 1830년대 후반 중국 전역에서 아편중독자가 최소 200만명으로 추산되었습니다. 1820년대 후반부터 아편수입으로 인한 중국의 은의 해외 유출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은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19세기 초 은1냥에 동전 1,000문 정도였던 것이 1839년에 이미 1,679문까지 올랐습니다. 은가격의 폭등은 농민생활을 더욱 곤궁하게 해 조세 미납이라는 연쇄파동을 일으켰습니다. 더구나 관료, 병사들의 아편흡식은 부패, 국가기강의 해이와 전투능력 상실로 나타나고 빈민층의 아편흡식은 농촌경제를 파탄 내었습니다. 이에 중국정부는 뒤늦게나마 아편무역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게 되어 영국과의 분쟁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편전쟁의 발발과 난징조약

영국 정부를 이끌었던 휘그당의 파머스턴 내각은 중국무역을 안정된 기초 위에 두는 데 필요한 조건의 획득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20척의 함선과 4,000여 명의 원정군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전권대사 엘리어트(조지)는 1840년 6월 육해군을 이끌고 광동 앞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대포와 강한 해군을 갖춘 영국군 앞에 선 중국 군대는 재래식 범선이 대부분이었고 군사 장비는 240여 년 전에 주조된 낡은 것이었습니다.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임칙서가 파면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기선은 광동에 도착하자 영국군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12월 영국군이 공격을 개시하자‘기선’은 엘리어트와 개인적으로 배상금 600만 냥의 지급·홍콩 할양·평등 대우 등을 조건으로 한 기초협약인‘광동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크게 노한‘도광제’는 기선을 파면하고 체포하였습니다. 영국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1842년 6월 상해를 점령하고 난징으로 진격했습니다. 결국 1842년 8월 영국함대의 갑판에서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역사적인‘난징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영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홍콩할양, 상하이 광저우를 포함한 5개항을 개항시켰으며 수출입관세를 중국정부와 상의해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청나라는 난징조약 등 서양열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게 조차지, 조계지를 주어야 했습니다. 

결국 1911년 청나라는 붕괴되었고 중화민국이 탄생하였으며 청나라를 의지하던 조선은 일본에 점령을 당해 주권을 잃어버렸습니다. 21세기 상황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긴 합니다만, 중국과 동아시아를 둘러싼 패권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 21세기의 중국과 미국의 패권전쟁

중국의 야망과 미국의 대응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뜻하는 말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제시한 전략입니다.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육·해상 실크로드 주변의 60여 개국을 포함한 거대 경제권이 구성되며, 대규모 물류 허브 건설, 에너지 기반시설 연결, 참여국 간의 투자 보증 및 통화스와프 확대 등의 금융 일체화를 목표로 하는 네트워크가 건설됩니다. 2049년 완성을 목표로, 중국은 400억 달러에 달하는 신(新) 실크로드 펀드를 마련하고,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를 통해 인프라 구축을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노리는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미래에 벌어질 에너지전쟁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의도를 알아채고 경계하며 일본, 호주, 인도를 끌어들여 반(反)일대일로 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중국은 68개국에 8조 달러를 빌려주고 그 돈으로 중국의 기업들과 공동으로 인프라 투자를 하도록 해서 상당 부분을 다시 중국으로 회수하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말레시아와 파키스탄 등이 사업포기를 천명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라오스, 미얀마, 몬테네그로 등의 일대일로 참여국들이 잇따라 국가채무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국들은 사업연기, 재검토, 중단 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역전쟁, 환율전쟁

미국 상무부 통계에 의하면 대중국 무역적자는 2010년 2730억 달러에서 2017년 3752억 달러로(미국 상무부) 7년만에 1천억 달러가 증가하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미국의 총 대중 무역 적자는 4조 7천억 달러에 이릅니다. 작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미국 대외 무역적자 중에서 거의 50%를 차지합니다. 이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불평등한 무역에 대해 보복적 관세를 매기는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중국이 쓸 수 있는 정책은 환율을 올리는 것(평가절하)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물가상승, 외환 유출 등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무역전쟁이 경제전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이 곡물수출을 막는다면 중국은 버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정책은 돈을 푸는 정책인데, 이것은 경제성장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2010년 이후 부채비율을 높여 운영한 기업들이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도산하는 것을 경험했기에 중국으로서는 새로운 정책으로 이 위기를 돌파해야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달러화가 오르고 위안화가 떨어지면 달러 부채 부담은 급증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현재 미국의 무역보복으로 관세폭탄을 맞았을 때 위안화 약세는 오히려 관세율 증가를 상쇄하는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대미무역적자를 감소하기 위해 위안화 약세 정책을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면, 중국은 미국 외의 수출에서는 오히려 적자를 볼 것이고, 미국의 환율조작대상국으로 지정되어 환율전쟁으로 번져 갈 수 있는 점을 우려해야할 것입니다. 


인도 태평양에서 군사적 대치

도련선(島鏈線, island chain)은 1982년 중국군 해군사령관‘류화칭’이 설정한 해상 방어선 개념으로 태평양의 섬(島)을 사슬(鏈)처럼 이은 가상의 선(線)입니다. 이는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뜻하는데, 중국 근해인 제1도련선은 1980년대 설정한 것으로,「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를 연결하며, 제2도련선은「오가사와라~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로 연결되는 방어망입니다. 중국은 1차로 제1도련선에서 배타적 제해권을 확보한 뒤, 추후 제2도련선까지 진출한다는 계획인데, 이는 사실상 일본 오키나와와 한국에 미군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것입니다. 즉, 미국의 태평양 독점 지배를 저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2018년 5월 30일 미국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인도태평양사령부는 태평양과 인도양, 남극과 북극을 포함해 전 지구의 52%에 해당하는 43개국, 20개 지역의 1억6900만㎢를 작전구역으로 설정합니다. 여기에 5개 항모전단을 지휘하며, B-52, B-2 등 핵무기 공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와 세계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지휘하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중국의 군사적 굴기에 대한 미국의 대결구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아편전쟁 당시의 조선은 자국정치 쇄신에도 무능했을 뿐 아니라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것에도 무지했고 결국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과거 청나라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과의 대결과정에 새우와 같은 약소국들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현재의 정세 또한 이와 유사합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대결이 진행 중이며 앞으로의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미지수입니다.

예측 가능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한번 살펴봅시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과 통화전쟁은 한국에 직격탄을 날릴 것입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은 금융위기에 빠지게 되고, 그 틈에 미국의 금융 자본가들이 한국에 침투해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경기가 침체되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청년실업문제를 넘어 모든 세대가 일자리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한국경제에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한국을 경제적 속국으로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미국에게 북핵은 그 자체로 당면한 위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군사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건입니다. 반면에 중국은 주변국에 대한 경제적 원조나 기업진출을 빌미로 자원에 대한 독점 개발권을 장악하고 대중국 수출물량을 이용해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특정지역에서 무력충돌 시 한국은 어떤 편에 설 것인지를 물으며 경제적 압박을 가했을 때, 결국 모든 동아시아 나라들의 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불균형이 만들어지고 또 다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대비책이 있는가?

중국과 미국의 대결의 절체절명 상황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창의성이 필요한데 그것은 이제까지의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던 방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의 한국을 모델로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제조업중심의 수출주도형 산업은 세계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무역과 환율의 공격을 받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첨단 금융시스템과 소프트웨어적인 무형의 시스템일 것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수출량에 맞먹는 사실은 소프트파워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필두로 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키는 전략도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현재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보이는 남북문제가 한반도를 둘러싼 4대강국의 힘의 역학관계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중국과 미국이 자리잡고 있고 서로가 주도권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이나 장기화 될 공산이 큽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택해서 핵무력을 완성하였고 이제부터는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줄타기 외교정책을 통해 대북경제 재제에서 중국과 한국을 이탈시켜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하게 단기간 평화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북문제와 대중국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그린휠(주) 대표 최승호 

www.gbikeshop.co.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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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appytownculturestory.tistory.com/350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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