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73일, 5대륙, 46개 나라 여행, 400여장 그림 - 김물길 화가를 만나다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21:56

본문

[아트로드 여행기]








 경복궁역에서 내려 빠른 잰걸음으로 ‘서촌 파레드 서울’로 향했습니다. ‘색갈피’전을 열고 있는 김물길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좀 더 일찍 도착해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전시되고 있는 50여점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기발한 창의성에 잘 녹여 표현해 감탄을 자아내는 주인공을 빨리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김물길 화가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색갈피’전시회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려요.


 ‘색갈피’전시회를 통해 처음 저를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번 전시회는 저의 총 다섯 번째 개인전입니다. 2014년부터 매 해 전시를 했었는데요. 전에 했었던 전시들은 다 큰 테마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전시회인 ‘색갈피’에서는 그동안 전시된 적이 없었던 세계여행, 한국여행을 하며 그렸던 그림들, 그리고 일상의 그림들을 소주제로 묶어 서호주, 멕시코, 한국, 일상에서 그린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책에서 중요한 부분들에 책갈피를 꼽듯 저의 많은 그림들 중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색으로 꼽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큰 주제를 ‘색갈피’라고 정했습니다. 


  [파란발 부비새 - 갈라파고스제도]



 ‘세상을 통한 여행’을 작품으로 표현했는데, ‘아트로드’세계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요?


 저는 학창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요. 더구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해외여행을 다니지도 않았죠. 그러니 해외에 관심도, 갈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해외봉사활동을 가게 되었어요. 바로 프랑스 시골마을이었죠. 시골마을에 도착하니 제 또래친구들 14명이 있었고, 다 외국인이었습니다. 영어를 못해 걱정도 많이 했는데 캠프를 하는 4주 동안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충분히 사귈 수 있다는 것과 제가 굉장히 소극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해외에 혼자 나와 이렇게 즐거운 경험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저에 대한 ‘긍정적인 충격’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캠프기간동안 일기장에 낯선 풍경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들,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소재거리 삼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면서 더 중요하게 깨달은 것은 항상 익숙했던 한국을 벗어나 낮선 해외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린다면 앞으로 전개될 저의 그림인생이 훨씬 풍성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즉각 실행에 옮겼죠. 3학년을 마친 후 휴학하고, 미술학원보조강사, 벽화그리기 심지어 양말 공장 등을 다니며 2년 반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경비 2,5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돈 모으기보다 더 큰 난관이었던 부모님 설득작업, 여자 혼자?? 그러나 꾸준한 설득 끝에 성공!! 이렇게 2011년 겨울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내 손안의 세렝게티 - 탄자니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자신만의 규칙을 세웠다고 했는데 그 내용과 이유는요?


 제가 세운 규칙 세 가지는 첫째, 매일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릴 것. 둘째, 그림도구는 현지에서 조달할 것. 셋째, 최대한 돈을 절약하며 여행할 것으로 상당히 단순했어요. 현지 재료로 그림을 그려야 진짜 여행에서 느꼈던 것들을 담아 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행을 떠날 때 챙겨간 것은 달랑 공책 하나와 볼펜이 전부였어요. 첫 여행지 ‘미얀마’부터 어떻게든 종이를 구하고 색연필을 구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힘들기도 했었는데 이 때문에 독특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어요. 예를 들어 종이를 구하지 못해 미얀마 새해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구하지 못해 모래로 그리기도 하고, 신문을 잘라 꼴라쥬 작품을 해보기도 했죠. 그 당시에는 ‘재료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절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에게는 의미가 있고 보물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아트로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작가보다 화가로 남고 싶다”했어요. 김물길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사람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싶은가요?


 처음 전시를 할 때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작품 하나하나가 다 자식 같아서 품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죠. 한마디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이걸 줘?’였습니다. 그래서 전시만하고 그림을 다시 집에 가져와 창고에 넣어 놨죠. 액자 그대로 쌓여져 있는 상태에서 1년에 딱 한 번 먼지 털면서 보는 게 다였습니다. 창고에 짱 박혀있는 그림을 보며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누군가 제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스치더군요. 그래서 다음 두 번째 전시부터 작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한 가격이 아니라 상식적인 가격 안에서 판매를 했고, 제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소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가 다 가지고 있는 게 답이 아니더라고요. 사실 요즘에는 어떤 작품이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 흘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서로 공감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작품을 할 때 혼자만의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하지만, 그 작품을 가지고 나왔을 때 사람들과 딱 공감 되는 순간, 가장 큰 희열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제 작품을 숨 쉬게 만들고 싶어요. 



[미세먼지]



 오랫동안 여자 혼자 해외여행을 하면서 분명 위험한 순간이 있었을 텐데요. 


 여행을 하고 싶은데 여자 혼자라는 게 걱정되어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22개월 정도 여행을 하면서 비교적 큰 사건 사고가 많지는 않았어요. 한두 번 정도 있었는데 케냐 나이로비에서 밤에 숙소를 찾을 때 현지인 남자들에게 둘려 쌓여서 제 가방잡고, 말 걸고, 툭 치고 하는 위험한 상황에 마침 걸어가는 분이 저를 구해줬어요. 그리고 믿었던 친구가 물건을 빼앗아 훔쳐간 것 정도였어요. 여행을 하며 스스로 세운 규칙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여행을 하자’였습니다. 해가 지거나 혼자서는 밤에 나가지 않았고, 음주자체도 하지 않았죠. 그리고 너무 위험한 나라는 건너뛰었습니다.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한 번도 없었어요. 사실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진한 화장에 팔에는 카메라, 핸드폰, 좋은 백들을 들고 다닌다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혹 하겠죠. 저는 가능한 자연스런 모습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일부러 화장이나, 악세서리 등은 하지 않았죠. 위험한 상황을 미리 방지해야 하는 것, 어느 정도 여행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 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혼자 여행하면 위험할텐데...’하는 자신 속 두려움과의 싸움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22개월, 673일 세계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요?


 제가 예고를 나왔고, 대학 때 회화과에 들어갔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며 매일 밤새워 그림을 그리면서 대학에 들어가면 정말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교수님들의 평가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를 보며 거기에 맞추어 그리게 되었죠.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그 누구도 제 그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왜 이렇게 그렸냐?, 몇 점짜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와~ 이렇게 그렸네, 신기하다”하고, 그 누구도 평가하지 않으니 그림을 그리면서 너무 행복감을 느꼈고, 도리어 제 스타일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도 여행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죠. 바로‘울트라 마린’이라는 완전 파란색 물감입니다. 22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리니 ‘그림그리지 않고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행 중 그림에 더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변화로는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별로 뛰어난 학생이 아니어서 자존감이 많이 낮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세계여행을 하며 국경도 혼자 넘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제가 너무 기특한 거예요. 나 자신이 작게나마 자랑스럽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어떤 것을 할 때도 저에 대한 믿음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이것도 할 수 있어!’하면서요. 그리고 여행을 하며 고생을 아주 많이 했기 때문에 웬만한 일들로는 달달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뚝심도 생겼습니다. 더 크게 얻은 것 중 하나는 예전에는 질투심도 많았는데 세상 사람들을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의 길이 다 다르고 한데 ‘왜 내가 질투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도리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되고 자신 있게 존경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에 신뢰가 높아졌고 스스로의 길을 갈 때 집중력도 많이 높아졌어요.


[천체를 담은 신의 잔]



 세계여행과 국내여행을 하며 화가로서 받은 영감을 작업으로 어떻게 표현하나요? 


 세계여행을 할 때는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풍경이잖아요. 각 나라의 냄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 등 모든 것이요. 그래서 저에게 가볍게 툭툭 영감들로 잘 다가왔고, 받은 영감을 그대로 그리게 되었죠. 새로운 환경에서 자극적인 작품들이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국내여행을 할 때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너무나 익숙한 사람, 향기, 역사 등 이미지가 익숙하니 도리어 그 안에서 제가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보여지는 풍경만 가지고 영감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역사를 들여다보고, 한 주제를 가지고 깊게 공부하면서 받은 영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경주 첨성대를 보고 구태의연한 모습이 아닌 하늘을 담았던 잔이 지금은 밤을 따라내고 사람들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천체를 담은 신의 잔’이라는 작품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화가는 자신의 창의성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키는데 김물길 화가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사실 이 질문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화폭에 담아내기까지 절대적으로 고민하는 시간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직장인들이 일을 하는 시간에 저는 계속 생각한다고 보면 되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심지어 누워서 쉴 때에도, 친구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도 계속 생각을 하기 때문에 천개의 생각 중 한 두개의 번쩍이는 영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사물들이 전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자, 앞에 있는 핸드폰도 다 살아있다면... 거꾸로 모든 사물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11월말까지는 한국에서 일정을 소화할 것입니다. 강연, 방송 그림 작업을 할 예정이고 11월말부터 짧게 여행을 갈 계획인데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내년 계획은 없습니다. 이것도 여행하면서 많이 바뀐 것 중에 하나인데 계획을 아무리 세워봤자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하며 너무 많이 느껴 “10년 뒤에 저는 이렇게 할 겁니다.”도 좋지만, 현재 제가 가장 잘하는 것들을 한 달, 6개월 단위로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하는 게 10년 뒤에 더 잘될 것 같더라고요. (하하) 이것은 저의 개인적 인생관이지요. 심지어 작년 이맘때도 제가 전시를 할 것이라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돌이켜보면 항상 생각하지 못한 것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족, 친척 중에 그 누구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본인이 그림을 선택 할 때도 반대하지 않고, 지금도 부모님은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신다며 김물길 화가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보기에는 여리여리한 소녀 같은 모습인데 말하는 모습, 반짝이는 눈빛에서 김물길 화가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더 ‘김물길다움’의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김물길
  화가, 여행작가
「아트로드」2014년 발간
「아트로드, 한국을 담다」 2016년 발간
  blog.naver.com/sooroway
  instagram.com/sooroway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