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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구하는 방법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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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16]



용서를 구하는 방법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관 40주년 기념 전시로 기획 중이던 ‘드가’ 전시가 개막을 며칠 앞둔 시점에 취소되었습니다. 드가의 작품 100여점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과 미국 휴스턴 미술관으로부터 빌려와 국내 전시에 선보일 예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전시를 위한 여러 가지 조율이 불발되어 개막일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취소 발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전시를 기다렸던 많은 관객들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기관을 믿고, 전시를 고르고 관람하기를 기다렸기에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알고 주최측의 안일한 준비와 검토를 성토하였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국내 유수의 항공사가 기내식 마련을 하지 못한 채 운항을 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습니다. 모처럼의 여행을 즐겁게 하려는 사람들은 외국 여행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인 기내식을 제공받지 못한 채 긴 항로를 부실한 식사로 대신하고 있어 항공사는 빈축을 샀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피치 못하게 약속이행을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에 따른 책임과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마뜩지 않을 때 더 실망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년 전 마술사 최현우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연말을 앞두고 마술사 최현우는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매직콘서트 <더 셜록>을 공연하고 있었습니다. 12월 29일 저녁 공연은 90% 이상이 이미 판매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10분 전까지도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의 항의가 나올 찰나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최현우입니다. 로비에서 기다려주시는 관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계의 이상으로 객석 입장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었죠.

그러나 8시가 지나도 공연장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의 항의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마술사 최현우입니다. 저는 지금 로비 5번 게이트 앞에 나와 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관객들은 우루루 몰려갔습니다. 그 곳에는 공연 정장을 입고 헤어스타일까지 갖춘 최현우가 있었습니다.

최현우는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객석을 비추는 조명에 전력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잡아보려 계속 시도했으나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라며 “보상 방법을 합의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현우는 직접 로비에 나와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공연취소 소식과 취소 이유, 보상책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되묻는 관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또 했습니다. 표 값 100% 환불과 다른 날 초대, 혹은 110% 환불을 보상방법으로 제시했고, 주차 역시 무료로 조치했습니다. 포토존에서 원하는 관객 모두와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로비에선 묘한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오히려 “괜찮아요” “다음에 꼭 올께요” “힘내세요”라며 최현우를 위로한 것입니다.

로비에는 싸움 한 번 없었고, 고성도 없었습니다. 로비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어린 아이들에게“ 기다리느라 다리 많이 아팠지?” 라고 묻는 스태프, 보상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스태프, 애매한 케이스의 관객은 직접 연락처와 이름을 기록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연락하겠다’며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는 매니저 등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배우 몇 마디를 통한 방패 사과, 항의한 사람만 조치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처, 이슈화 되어야 겨우 형식적인 글 몇 줄 올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 SNS 공지. 그런 사과방법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그날 최현우와 그의 스태프들은 관객을 ‘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피해 받은 관객’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날의 관객들은 비록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마치 공연을 본 것처럼 묘한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요? 정말 최현우가 마법을 부린 것은 아닐까요?




예술의전당 미술부 차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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