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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플러는  바람에 날리고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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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6]



빨간 머플러는 바람에 날리고


 

 장소는 베를린 필하모닉 홀 앞 광장. 빨간 머플러를 두른 스웨터차림의 한 사나이가 빠알간 스포츠카에서 내립니다.

“여기 표 두 장, 필요하신 분?” 때마침 임박한 공연시각에 매진이 되어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일본인 관광객이 환하게 웃었고, 빨간 머플러를 두른 사나이는 두 일본인 관광객에게 표를 선사하고는 홀 안으로 사라집니다. 

 이럴 수 있는 지휘자가 세상에 있다면 그가 누구일까요?


 흑백 TV의 마력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서울이었지만 가장 변두리라 그랬는지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딩 때 학교에 가면 반에서 한두 명이 어디서들 배워왔는지 전설의 히트곡 ‘젓가락 행진곡’이나 ‘고양이 춤’을 풍금으로 기막히게 쳐댔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클래식음악을 접했습니다. 클래식음악이라고 우기기도 좀 뭐했지만 아무튼 그런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클래식 음악이 분명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인줄 모르고 들었던 겁니다. 예를 든다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무서운 전설들을 모아 전해주는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제곡이 그 유명한 타이스의 명상곡이었다는 거죠. 조금 시간이 흐르니 피아노 시대가 열려 교회당을 빌린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서 배운 친구들이 연주회를 하여 귀동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클래식음악의 진수를 맛보았는데 그것은 TV에서였습니다. 신년특집으로 클래식음악을 방영해 주었는데 볼 때 마다 가슴이 뛰었었죠. ‘저런 멋진 세상이 있다니!’ 기막히게도 연주를 잘해 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거기에다 단상에 우뚝 선 지휘자의 존재감. 앙드레 프레빈이나 레너드 번스타인도 보았습니다. 그러다 제 어린 눈에도 특별하다 싶은 한 지휘자가 나타났는데 바로 지휘자의 제왕 ‘카라얀’이었습니다. 차라리 흑백이라 더 멋있었던 그 아우라!

 음악가 흑백사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성음사에서 도이췌그라모폰(DG;독일 음반회사)과 라이선스를 맺어 클래식음반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EMI, DECCA, RCA등은 지면관계상 언급 생략) 레코드판을 많이 사면 음반점 사장이 성음사에서 만든 음악가들의 흑백예술인물사진 달력을 연말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면 지문이 묻을 새라 득달 같이 표구점으로 달려가 12개의 액자를 만들어 6개는 제 방에다 빙 돌아가며 걸고 6개는 친구나 선배에게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들 중 카라얀 사진만큼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습니다.



 카라얀이 위대한 이유

 실력? 정말 호화찬란합니다. 카리스마? 누구도 따라 갈 수 없습니다.(항상 이견은 있는 법) 가정? 참으로 자상한 남편이며 인자한 두 딸의 아버지였노라고 카라얀이 타계하기까지 51년간 결혼생활을 한 부인 ‘엘리에트 폰 카라얀’이 말합니다. 이것에 더해 그가 위대할 수밖에 없는 건 엄격한 규율 때문입니다. 단원들에게나 자신에게 말이지요. 일례로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징집을 피해 이탈리아로 탈출하여 생계를 겨우 유지하면서도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자신이 목표를 세운 만큼의 공부를 못했을 경우 끼니를 걸러 가며 자기를 벌했다고 전해집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은 그리이스계 오스트리아인으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칩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질시를 받았고, 히틀러는 그의 음악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력 때문에 곤혹을 치뤘습니다.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인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종신지휘자가 되고, 레코딩과 많은 순회공연으로 가난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만, 말년에 단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불화를 겪습니다. 그가 실력이 있다고 인생길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생은 곧 카라얀의 출세로 연결됩니다.

 고생이 출세길이라니?

 징집을 피해 이탈리아로 탈출했을 때 생계를 위해 이탈리아어 공부와 약간의 음악활동을 하며 전쟁이 끝날 무렵엔 능숙하게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라얀은 오페라음악이나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어 밀라노 스칼라 가극장의 음악감독이 됩니다. 이 시절 카라얀은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이탈리아 성악가들을 알게 되고 후에 빈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되었을 때 이들을 초대하여 빈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명반은 베토벤, 부르크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과 베토벤, 바그너, 슈트라우스의 독일오페라이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베르디와 푸치니 등의 이탈리아 오페라입니다. 카라얀이 다른 거장 지휘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게 바로 이탈리아 오페라 때문입니다. 독일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 두 영역에 능한 지휘자가 드물었고 이렇다 할 성과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카라얀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군둘라 야노비츠, 안나 토모와 신토우(Anna To-mowa Sintow), 캐서린 배틀, 조수미 등 훌륭한 성악가들도 발굴하였습니다. 이렇게 그의 인생길은 하나의 낭비도 없어 보입니다.

 전설적인 명반의 진실
 
 카라얀과 소련 최고의 독주자들, 바이올린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첼로에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피아노에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와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은 명반에 손꼽힙니다. 또한 이 음반을 만든 EMI사는 큰 돈을 벌지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는 피아노의 명인이면서 독설가로도 유명합니다. 거장들의 구석구석을 흠잡기 일쑤인데 카라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대체 자기가 돋보이게 사진이 찍히는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각자의 기량에 도취되어 뽐낼 뿐 최악의 협주였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이런 혹평에도 불구하고 명반으로 남아있으니 음반을 남긴 예술가들보다 즐기는 음악애호가들의 수준이 더 높은 건 아니었을까요?

 카라얀의 업적

 상류층이나 즐기던 클래식음악을 일반 대중도 가까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어 주었습니다. 음반 판매량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의 음반 판매량은 2억장 가량으로 가장 많은 클래식 음반을 판매했습니다. 또한 카라얀이 본인의 영상물을 남기기 위해 텔레몬디알이라는 회사를 운영하였는데 영상물에 나오는 연주장면들의 연출은 가히 예술에 가까워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클래식음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누구보다도 빨리 음악의 판도를 읽고 관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음악회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레코드 음반 제작에 힘을 기울여 CD 녹음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또한 CD 제작진들이 “LP레코드판 앞뒷면을 합해 60분 가량이니 CD 1장 분량도 60분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카라얀이 그러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한 장에 수록할 수 없으니 74분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은 소리가 아름답고 클래시컬하다는 측면에서 LP가 다시 부활하고 있기는 합니다.

 소리에 집중하는 지휘자

 카라얀의 지휘폼은 ‘멋지다’라고 표현됩니다.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지휘자가 되고 싶게 만드는 남자 카라얀. 그의 리허설(예행연습)은 치열하고 치밀합니다. 한음 한음에 신경을 쓰며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그런 소리의 완성을 이미 리허설에서 이루었기에 그는 단원을 완전히 신뢰하며 눈을 감고 지휘합니다. 대부분의 공연에서 그는 눈을 감고 지휘하는데 이런 지휘스타일 또한 정설을 깬 것입니다. 이유는 이미 서술한 대로 충실한 리허설 덕분이며 연습 속에서 이루어진 완벽한 화합 때문입니다. 그가 타계한지 29년이 지났지만 그의 음반과 영상물(특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서 보여주는 음악적 완성도는 영원히 퇴색치 않을 것입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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