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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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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태 변호사의 법률칼럼]

나는 나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다보면, 피켓을 만들어 조용히 서 계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그 피켓에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조항에 대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2017헌바127)에 반대하는 문구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이 결정을 통해서 헌법재판의 작동원리와 그 속에 내재된 ‘개인의 권리’의 근원과 현주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이를 둘러싼 권리의 충돌 
우리 형법은 자신의 낙태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즉 임신한 여성이 모자보건법이 정한, 특별한 정당한 사유 없이 낙태(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행위)를 하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규정한 형법은 헌법의 하위법으로서 헌법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위법인 형법이 헌법을 준수하였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게 되는 걸까요? 

헌법은 크게 나누면 헌법의 제정배경 및 헌법제정권자의 의지가 담긴 전문, 기본원리 및 제도보장, 기본권과 통치구조론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헌법의 구성은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통치구성의 원리를 그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그 사회, 국가가 추구하는 아주 기본적인 가치와 이념을 담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낙태문제 같은 아주 구체적인 이슈에 대한 규정은 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기본 원리나 기본권의 해석을 통하여 구체적인 판단을 이끌어낼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기본권은 무엇일까요?

헌법 제10조 제1문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보호하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개인의 일반적 인격권이 도출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반적 인격권을 다시 구체화하자면, 여기에서 인간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과 관련된, 자신의 인격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조건을 형성할 자유가 파생됩니다. 즉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여기서 파생된다고 일반적으로 학자들과 법률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할지 안할지를 결정할 자유는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서 보장되며, 형법의 자기낙태죄는 이러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됩니다. 물론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기에 이러한 기본권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권 제한에 관한 일반 규정은 헌법 제37조 제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 그 보이지 않는 한계를 넘어서서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는지는 해석을 통해서 판단합니다. 이를 통해 국가권력이 개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사법, 견제기능을 수행합니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규정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두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형벌로서 규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본권 제한의 적합성을 심사하는 기준은 구체적으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법익균형성 등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기간 전체에 걸쳐서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과도하다 판단하였습니다. 아마도 유럽 대부분 및 미국에서 기간을 나누어 규제하고 있는 입법례를 따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정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헌법재판소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인간의 존엄성 및 자기결정권의 근원 
현대 자유 민주주의 사회는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중요한 결정들을 해나간다는 자유주의 원리와 이러한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를 두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통치 구조를 정한 헌법을 근대 입헌주의헌법이라 부릅니다. 즉 이러한 구조는 근대에 들어서 확립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세를 종료하고 근대를 열게 된 핵심적인 두 가지 사건으로는 첫째는 종교개혁, 둘째는 르네상스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은 고대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여기에서의 고대는 그리스와 로마를 말합니다. 즉 종교가 인간을 억압한 중세를 벗어나 자유로웠던 고대로 가자는 것이 그 시대의 모토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그렇게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였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중세를 부정하고 근대를 열어간 사람들에 의해서 촉발된 것인데, 최근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문서들을 직접 살펴본 연구들에 의해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와 로마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종교를 기반으로 한 가족단위의 체제가 견고한 것이 그리스의 초기모습이었고, 개인의 권리가 아닌 가족단위의 생활, 운명공동체로서 존재했던 그리스 사회는 가장이 마치 제사장의 역할을 하면서 가족의 조상들을 섬기는 그런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좀 더 큰 단위인 도시국가로 발전하였어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하였으며, 가족단위의 종교가 아닌 공통분모로 택할 수 있는 종교를 기초로 사회가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현대의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사실 존재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였고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공동체의 덕이었습니다. 이를 기초로 하여 플라톤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할 능력을 가진 철인(철학자)을 정점으로 한 사회체제를 구상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이성이란 누구나 다 가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즉 자신 같은 철학자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할 능력이 있으며 나머지는 이에 충성하는 용기를 가진 계층, 혹은 장사하는 재능을 가진 그러한 계층으로 구성되는 것이죠. 여기에 사실 여자와 외국인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들 시민들의 입장에서 여자와 외국인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이에 전혀 다른 기초를 가진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기독교입니다. 신 앞에서의 만민의 평등, 그리고 이러한 신앙을 고백할 개인의 종교/양심의 자유를 주장하고 실천한 것이 로마사회 속에서의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었고 로마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이러한 개인의 종교/양심의 자유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는 것이죠. 중세를 끝내고 근대의 문을 연 것도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근대의 인간이란 자유로운 개인을 상정하는데, 루터는 교황이 아닌 신 앞에서의 개인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선다는 기초 아래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즉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인간의 존엄성의 기초는 신 앞에서 누구나 다 평등하다는 종교적 진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기초를 가질 때에 인간의 존엄성은 함부로 주장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나를 존엄한 인간으로 자각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태도는 신이 부여한 일종의 의무이기 때문에 내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배제한 인간의 존엄성, 자기결정권의 한계 
16세기를 지나 이성의 시기가 도래하였습니다. 철학은 신학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자율적 인간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성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이성의 기초위에 선 헌법체제를 가지고 국가와 사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체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무엇이지?”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근거, 즉 임신한 여성의 낙태할 권리는 헌법상 인격권에서 발현되는 자기결정권에 근거한다는 것이지만, 그 자기결정권의 근거가 되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설명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세속사회의 탈을 쓰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라 정의 내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낙태가 합법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종교의 교리를 의지한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질문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을까요? 생각 없이 성관계를 맺고 난 이후, 낙태를 통해 태아를 살해한 죄를 만약 다른 누군가 묻는다면 어떨까요? 아니 어쩌면 이미 그 행위의 결과를 몸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법률사무소 스프링앤 파트너스, 변호사 황경태 
kyoungtae.hwang@springnpartners.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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