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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역사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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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칼럼 1]

자전거와 역사

 

그간 환경칼럼을 연재하면서 자전거 사업을 하고 있는 제가 자전거 얘기는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전거야말로 친환경 교통수단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동 수단이기보다는 운동용품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운동을 하는 것이지 교통수단은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자전거 역사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역사를 통해 진정한 자전거의 의미를 살펴보고 21세기 새로운 의미의 운송수단으로서 자전거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호부터 자전거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떤 사회적 영향이 자전거를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자전거가 다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봅시다. 

나의 자전거 역사 장면 세 가지
자전거 역사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니 저의 자전거 역사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 장면은 어린 시절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세발자전거를 타고 어머니와 방앗간을 다녀온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장 보는 카트가 없던 시절이라 세발자전거 뒷자리는 어머니의 짐을 싣고 다니기 딱 좋은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초등학교 때 친구의 메탈릭 그린색의 두발자전거입니다. 그 친구는 아주 먼 곳에서 등하교 하는 친구였는데 메탈릭 코팅이 된 영롱한 녹색 빛깔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미니벨로 형식의 자전거였습니다. 당시는 그런 자전거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발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지만 두발자전거를 타려고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한 번 타보겠느냐 했는데 두 발 자전거를 배우지도 않고 바로 타버렸습니다. 
세 번째 장면은 80년대 말에 MTB(산악자전거) 자전거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중학교와 가까운 시내에 사는 친구들이 당시 유행했던 플랫바(일자바)의 핸들을 가진 블랙의 MTB를 타는 게 그야말로 부러웠습니다. 물론 용돈을 모아 사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자전거 가격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출퇴근용으로 쓰시던 자전거를 더 이상 타고 다니지 않아 제게 주셨는데 핸들바가 갈매기형인 전형적인 신사용 자전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검정색 락카로 페인팅을 해서 신나게 동네에서 타고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자전거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실제 자전거의 역사 장면 세 가지
첫 번째 장면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2년 뒤인 1791년 프랑스의 귀족 콩트 메데 드 시브락(Conte Mede de Sivrac)이 목마를 타고 파리의 팔레 루아얄(Palais-Royal) 정원에 나타났습니다. 이 목마는 나무 바퀴 두 개를 나무로 연결하고 그 위에 사람이 앉아 타고 다니는 어린이의 장난감 목마와 유사하였습니다. 시브락이 만든 기계에는 셀레리페르(Cé lé rifé re)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빨리 달리는 기계’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방향조종이 안 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1813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나폴레옹 군대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 간의 벌어진 전투)가 끝난 지 11일 후 바덴에 사는 산림관 카를 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가 자기보다 한 살 어린 27세의 대공 카를 1세에게 자신의 최신 발명품에 대한 우선권(당시 특허권이 없었음)을 주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셀레리페르와 다른 점은 앞바퀴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핸들을 달았다는 것입니다. 드라이스가 만든 기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드라이지네’(Draisine)라고 부르기도 하고 ‘빠른 발’이라는 뜻의 ‘벨로시페드’(Velocipede)라고도 불렀습니다. 드라이지네는 차체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무게를 지탱해주어서 걷는 것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게다가 핸들이 달려 있으니 숲이나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기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드라이지네는 귀족들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자전거의 역사를 뒤바꾸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세 번째 장면입니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화산 폭발 영향으로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쉬지 않고 비가 내렸고 미국과 캐나다 슈바벤 알프까지도 여름에 눈이 내렸습니다. 전 세계에 기근이 들었고, 강과 시냇물과 호수가 범람했습니다. 곡물과 감자가 들판에서 썩었고 먹을 것이 없자 가축도 굶어 죽거나 잡아먹혔습니다. 1817년에는 기근이 더 극심해져 더 이상 말을 기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먹일 필요도 없고 관리도 쉬운 최초의 자전거 ‘달리는 기계’(드라이지네)에 주목했습니다.

그 후 200년간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의 수요와 욕구에 따른 끊임없는 개량은 기술발전을 이끌었고 남성과 부자의 전유물이었던 교통과 운송수단이 대중화됨으로 사회 평등을 앞당겼으며, 19세기 여성들이 ‘자유의 기계’라 불렀을 만큼 자전거는 여성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하며 그들 삶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등장으로 자전거는 오랫동안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린휠(주) 대표 최승호
www.gbikeshop.co.kr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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