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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성의 약속

2020년 1월호(12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2. 2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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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미술 인문학 비평 9]

금보성의 약속

 

 작가 금보성의 삶과 그의 예술 세계 전반에 대해서는 지난해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월호에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 하나에만 집중해 보겠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한글의 시각화에 몰빵하는 작가입니다. 그가 가지고 노는 단순명료한 한글을 닮아서인지 그는 작품을 매우 빨리 해치우는 편이라고 밝혔지요. 오랫동안 철학적 기초를 놓고 단련해온 한글시각화의 목적에서 출발하니, 인생을 조망하여 살다가 명료하게 떠오르는 순간적 발상을 단숨에 형상화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그의 작품은 우리가 상상하는 촉한의 황제 유비를 닮은 것처럼 큼직하고, 그의 시원한 그의 얼굴과 눈과도 서로 닮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그는 한글시각화에서 더 깊이 들어가 선택한 단어의 의미와 정신까지 선명하게 드러내려고 하는데, 이 점이 아주 잘 드러나는 작품이 올해 신년에 소개하는 [한글-약속]입니다.

금보성의 [한글-약속] 혼합재료 2017

 
 이 작품을 보자마자 무언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면서 즉각 생각나는 형용사는 바로 ‘견고한’입니다. 즉 견고한 약속 말입니다. 작가는 ‘견고함’이란 정신을 ‘약속’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탁월하게 벼려내어서, 또 입체화와 역사화를 통해 한글의 정신화와 의미화를 화려하게 성공시킨 거지요. 청춘 남녀 간, 얼굴 팽팽한 젊은이 사이에 처음 약속을 맺을 때, 그것은 아마 하얗고 새파랗고 행태도 어물쩡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알맹이를 가진 것이라면, 세월과 인생이 흐르면서 색은 아주 중후한 풍성함을 품으며, 모양도 높은 온도에 구워낸 도자기나 심지어 용광로에 연단한 강철로 바뀌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만큼 한 번 맺은 약속은 무겁디무겁고 나의 생애를 뛰어 넘어갈 정도로 오래가는 것이며, 그래서 더욱 믿음직한 것이 되어가지요. 결국, 이 작품은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너는 약속을 얼마나 견고하게 지키면서 사느냐?!” 

 그러나 만약 우리의 상상이 여기서 중지해 버리면, 우리는 모두 부끄러움을 가지고 슬며시 돌아서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키지 않아서 슬픔을 당한 약속보다도 내가 지키지 않아 큰 고통과 아픔을 주었던 친구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생을 솔직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약속이란 현재의 믿음,신뢰의 기초 위에 다리를 함께 묶고 뛰기로 미래를 확정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약속이 깨어지면 자동적으로 전제되었던 사람들을 향한 믿음,신뢰도 연기처럼 사라지며, 모든 인간관계를 허무와, 의심의 눈길로 채우려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약속을 삼세번 믿어주는 자비까지 베푸는 척 위선을 떨어보기도 하지만, 어느덧 회의,비웃음,증오는 우리 마음을 실질적으로 정복하지 않나요? 
 21세기에 우리는 아주 많은 인간이 모여 사는 대도시문화를 이루고, 심지어 80억의 인구는 SNS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초연결사회 속에서 삽니다. 이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뻥 튀겨 잘 보이게끔 해서,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데 유리한 세속적 약속을 끌어내는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구하여, 금보성이 탁월하게 시각화한 ‘견고한 약속’을 역사 속에서 구현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삼세번 혹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한 후에 다시 약속을 믿어주고 목숨 바쳐 약속을 해주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상한 말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약속을 깨트려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분이라면 어떨까요? 

 

 경기도 군포시 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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