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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놀랍고 극도로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2)

2020년 3월호(12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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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31]

21세기 초, 놀랍고 극도로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2)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오늘(2020. 2. 22) 벌어졌습니다. ‘사재기’는 보통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지표가 아닌가요? 이번 사재기가 앱을 통한 주문으로 쿠팡과 같은 업체에 몰리니, 아무리 업무량을 4~5배 늘려도 기능이 마비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근무하고 있는 배달원들은 하루에도 자주 교체해야 할 마스크를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이들도 앞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크며, 또 이들을 통해 배달될 물품도 위험한 물건 만지듯이 다루어야 하는, 사회불안이 극도로 증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럴수록 사회현실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이며 불안과 공포를 거쳐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보다 훨씬 나은 길이 있습니다. 또 한 달 조금 남게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정치현실에 뛰어들어, 매우 특이하게도 이번 정권 때에 하나의 이단(신천지)과 관련된 좌파(현정권), 혹은 지난 정권 때에 또 다른 이단(구원파)과 관련된 우파(태극기부대) 중에 누가 옳은가를 따지며 국력을 분열하는 토론으로 어느 한편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두 가지 길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 속에서 우리 민족의 치명적 약점인 ‘빨리빨리’근성을 이런 위기 상황을 타고 부정적으로 발현시키지 않고, 차근차근히 깊이 있게 현문제를 다룬다면 말입니다.
  첫째, 한반도같이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밀착해서 살고 있는 곳에서는 나와 내 가족 하나 살아남으려 사재기나 하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짓입니다. 망하면 5천 만 명이 다 망할 수밖에 없고, 이런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은 결국 비굴한 매국노 밖에 없을 것이고 그 후손은 영구히 조롱받을 겁니다. 또 나 하나 살자고 외국으로 튄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겪을, 나라없는 엄청난 설움과 핍박을 나와 내 자식들이 사는 동안 내내 그 곳에서 당하고 살 것입니다. 그러는 것보다 지금 여기서 우리의 위기를 하나된 마음으로 받으며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역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나요?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의연하게 보통 때 하듯이 일상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4대 강대국으로 빙 둘러싸인 이 좁은 한반도에서 깨어난 개개인으로 매우 지혜롭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열이 세계에서 거의 최고수준인 우리나라는 대부분 유럽문화(명)의 경향을 따랐지만, 지식이 분업화, 부분화되어 단지 한 분야만을 잘하는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박사학위까지 땄어도 너무나 얇은 분야만 깊이 알 뿐 다른 분야는 깜깜이었을 뿐이었고,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도서관에만 처박힐 지식이었을 뿐입니다. 공학계통의 박사학위의 내구연수는 3~5년이라 하더라고요. 더더구나 유럽문화(명)의 집적체인 AI가 스스로 심화학습(deep learning)을 하니, 인간이 만든 기계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두려움에 벌벌 떠는 문화(명) 앞에서, 열심히 한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를 자문하며 큰 무력감, 허탈감에 빠져 문화(명) 현상 전반에 걸쳐서 문화적 우울증이 크고 만연되었습니다. 이제 유럽문화(명)는 우울한 문화(명)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박사학위를 한 사람들이나 대학교수들 중에서, 남이나 현상을 비판하는 일에 자신있는 것 외에는, 우리가 배우는 유럽문화(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선先분리 후後통합이라는 매우 어리석고 거짓된 유럽문화(명)적 구조를 완전히 뒤집어서, 처음부터 선先전체 후後분리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문화(명)구조를 창조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즉 이전까지 이루었던 실패한 동양의, 실패해가는 서양의 문화(명)을 과감하게 버리고, 전혀 새로운 제3의 문화(명)를 창조할 기회인 겁니다.   
  둘째, 이럴 때 누군가 교주, 이론가(구세주, 지도자, 선각자)로 짠 하고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줄 것을 기다릴 시대는 이제 영구히 지나갔습니다. 정반대로 한반도 한민족 각 사람이 스스로를 지도자라고 여기는 심정으로, 이 모든 현상과 미래를 아주 높고, 넓고, 깊고, 오래가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행동할 때인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지도자를 우상시했던 어리석고 혼돈스러운 우파의 행태나, 모종의 교묘한 이론으로 사람들을 이끌지만 실상은 그 이론을 가장하여 지배력을 암암리에 행사하는 검은 지도자들이 존재하는 악하고 무능한 좌파의 행태를 끝장낼 것입니다. 칼,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기질을 가진 일본인과 다르게, 한반도 한민족은 지도자나 지도원리가 잘못되었을 경우 그것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놀라운 정신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은 
  1) 유럽문화(명)가 무너짐과 동시에 지구 전체가 끝장날 위기의 21세기, 
  2) 세계적 패권이 동아시아로 옮아오고 있는 시기, 
  3) 무엇보다도 이제는 땅따먹기 가로세로가 아니라 위로, 즉 우주로 나가야 할 우주시대를
선도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한의 5천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영역에서 세상을 지도할 지도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며 그렇게 다스리는 실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나 실력,인격,정신,영적 능력에서 진정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것만이 지금 당하는 위기를 놀라운 기회로 전환할 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2020년 2월호에 연재되기 시작한‘21세기 한반도 한민족에게 다가온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인 기회’를 계속해서 다루겠습니다. 지난호에 다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A. 한반도 한민족에게 매우 유리한 네 가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 유럽문화(명)의 위기의 시대 (문화(명)사적 관점) 
     2) 동아시아의 패권시대 (정치, 국제관계의 관점)

  이어서 이번 호(2020년 3월호)에서는 다음의 주제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 
    3) 포스트-세속주의 시대Post-secularism era(종교, 철학, 사상, 학문의 관점)
    4) 80억의 지구인에게 드디어 도래한 우주시대

  그 다음호(2020년 4월호)에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B. 한반도 한민족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C. 우리만 가진 유일한 장점들을 살릴 때다

  3) 포스트-세속주의 시대Post-secularism Era의 도래(종교, 철학, 사상, 학문적 관점)
  유럽 국가들은 악명 높은 두 번의 세계전쟁을 겪고 난 뒤부터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복지사회 혹은 세속주의 사회를 열었습니다. 즉 나의 현실적, 물질적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성’modernity이 주류 경향이 되면서, 종교는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세속적 관심만 인간의 몸둥아리를 감싸게 되었습니다. 물론 Ch.M.Taylor(2007)와 P.Berger(1999) 등은 그 진단이 틀렸으며, 전세계적으로 종교적 열정이 더 커져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J.Habermas(2008/2010)는 그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종교를 무시한 세속주의의 실패를 선언하면서 ‘포스트-세속주의 시대’라는 개념을 만듭니다. 이 시대에는 종교와 세속주의가 서로 공존하면서 서로 대화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가 간과한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주의 자체가 하나의 종교라는 사실입니다. 21세기에 세속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속주의가 너무 자연스럽게 개인의 뇌에 스며들어서 마치 우주적 진리가 되듯이 확고하게 신봉하기에 자신은 어떤 종교도 가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겁니다. 이어서 기존의 종교들을 마치 위에서 내려보는듯이 깔보며 비판합니다. 종교란, 넓지만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한 개인이 확신하지만 증명하거나 증거를 제기하지 못하는 어떤 근본적 주장, 믿음, 또는 거기서 만들어진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세계관을 견고하게 가진 사람들도 사실상 종교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들 세속주의자가 흔히 정의하는 종교는 매우 협소한 개념으로 교리, 예배, 정치체제, 유지수단(헌금) 등이 있는 실체입니다. 물론 종교에 그런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확신하고 널리 전파하고 싶어하는 하나로 완성된 주장,원리(교리,이데올로기)입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세속주의자들은 먼저 느슨한 종교인, 즉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종교인은 그래도 대화할만 하지만 실제는 어리석은 존재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열성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근본주의자로 싸잡아 비난합니다. 그런데 사실 열정적 세속주의자, 즉 전투적 무신론자들이야말로, 전통적 종교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에 대해 태산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전도하는, 세속주의를 신봉하는 근본주의적 종교인일 뿐입니다.

  리차드 도킨스R.Dawkins를 필두로 하는 생물학적 무신론자들과 물리학적 무신론자들 모두 사실상 전투적 세속주의 종교인인 셈입니다.1)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프란시스 베이컨 이후로 감각, 경험, 실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과학주의자들입니다. 감각, 경험, 실험을 벗어나는 현상이 얼마든지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모든 지식들을 가지고 전체를 다 알고 파악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할 뿐입니다. 즉 과학적 합리주의, 물질주의적 합리주의를 교리로 채택하면서, 동시에 물질보다 훨씬 중요한 윤리, 역사, 정신, 영과 같은, 인간과 사회의 비물질적 요소를 철저히 무시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19세기에 전개된 다윈과 스펜서의 사례에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서 파생된 생물학주의나 우생학주의는 20세기에 나치즘에게 기초를 놓아주었으며, 여기에 윤리는 깡그리 무시되었습니다. 유대인을 죽여서 그 몸에서 지방을 분리하여 비누를, 뼈에서 철분을 분리하여 쇠를 만들어도 상관없었던 것처럼 모든 인간은 물질로 전락한 겁니다.
  종교가 있어야 철학, 윤리가 가능하지만, 르네상스(1648년) 이후 특히 역사가 지날수록 유럽문화(명)는 종교를 개인의 마음과 행동의 영역으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종교를 추방한 후, 이제는 철학이 제왕이 되어 세계관을 구축하여 세속주의철학이라는 종교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런 세속주의라는 종교에 취한 유럽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재패한 전세계의 역사를 비참하게 채워갔으며, 지금도 진행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를 없애버린 가운데 이전의 존재론을 철저히 없애고 전혀 새로운 존재론을 추구했던 철학자 하이데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설명과 관련이 있는듯 신학을 공부하다  버려버렸습니다. 그가 세운 새로운 존재론은 그리스적 근원(제1시원)에 돌아갈 뿐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독일민족의 신화에 그 근원(제2시원)을 찾아가는, 독일인만을 위한 존재론입니다. 독일민족이라는 ‘혈통성’과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검은 숲이라는 ‘지역성’이 절대적인 존재론인 겁니다. 웅덩이에 던져져서 ‘나를 제발 죽이지 말아다오’라고 호소하는 듯이 위를 바라보는 유대인 레비나스의 눈(‘타자의 얼굴’), 그 눈과 마주친 독일인 하이데거의 눈은 잠시 흔들거리면서 즉각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지만, 결국 쏘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문화(명)의 중요한 전통인 윤리학을 뒤로 물리치고 전혀 엉뚱한 의미의 존재론 우위의 철학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전쟁, 살인으로 세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그는 어떤 경고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하이데거는 1945년까지 당비도 꼬박 내면서 나치의 당적을 유지할 정도로 악마적인 독일중심주의적 사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에 유럽문화(명)의 불장난은 그 끝이 치닫고 있다는 상황에 도달한 것을 이제 모든 지구인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즉 지금은 포스트-세속주의 시대Post-secularism Era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세속주의의 변함없는 특징은 다음입니다 :
  1) 세 가지 욕망(물질욕, 성욕, 지배욕)을 무제한으로 부린다.
  2) 그 욕망을 이루려고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3) 이 땅에서 무한정으로 살아남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문화(명)는 이 세 가지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고장났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세 가지 욕망 자체는 악하지 않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생존을 영위하면서 오래가고 영원한 가치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또 인간은 자신의 삶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윤리도 없는 짐승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망나니처럼 살면서 자신이 살았던 악한 삶은 결국 철저히 찾아내지며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겁니다. 또 그렇게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 인간은, 아무리 약2)과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쾌락,즐거움보다는 고통,슬픔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포스트-세속주의 시대는 우리 한반도 한민족이 그동안 인간이 시도해 보았던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의 관점에서 떠나, 이제는 제3의 문화(명)를 이룰 기회입니다. 제3의 문화(명)는, 그동안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서 오랫동안 연재해 왔던 [서양문화(명)의 황혼에서 새 문화(명)의 여명으로]라는 시리즈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문화(명)의 배꼽문화(명)로 돌아가는 겁니다. 세상의 배꼽의 문화(명)는
  1) 종교에 인문학(철학, 윤리, 역사, 심리)이 반기를 들지 않아도 되며,
  2) 엄밀하지만 경험성이라는 한계가 뚜렷한 자연과학이, 하늘을 찌를듯한 교만을 다시는 떨지 않고, 처음부터 겸손하게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대화하며, 
  3) 사회과학이 그 출발인 종교,인문학과의 연관성을 뚜렷하게 가지며, 
  4) 예술이 아름다움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예술지상주의라는 허망한 왕좌에서 내려오는 문화(명)입니다.     

  4) 80억 인구에게 드디어 도래한 진정한 우주시대
  이제 우리 눈을 가로-세로(2차원 운동)가 아니라 수직으로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즉 유럽문화(명)의 위기라는 문화(명)사라는 관점이나, 어떤 특별한 섭리에 의하여 지구의 자전과는 정반대로 흐른, 지난 7백여년의 패권이 이제 동아시아에 이르렀다는 세계패권의 관점이나, 조금 전에 다룬 포스트 세속주의시대에 이르렀다는 관점은, 훨씬 더 광대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가로-세로로 움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21세기부터 비로소 진정한 우주시대(3차원 수직운동)가 열려 그 우주를 직시하며 탐험할 때가 열린 겁니다. 물론 우주시대는 2차대전의 말기 독일의 V-2로켓에서 기술적 기초를 얻어, 20세기 내내 미·소의 우주경쟁을 통해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발전이었고 지금에야 80억 인구 개개인, 기업, 독립연구소의 차원에서 이루어가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론 머스크(테슬라) SpaceX의 우주개발비는 한 국가의 예산을 능가하는 지점까지 왔습니다. 또 고등학생이라도 지식을 동원하고 자금을 조금(약 1억원)만 마련하면 소형위성을 지구 궤도로 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구 주위를 도는 무중력 경험이 여행상품이 되었으며, 화성으로의 신혼여행도 22세기가 시작될 즈음에 시도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가로-세로운동 하던 나쁜 버릇을 그대로 가져가, 경쟁하듯이 달에 탐사선을 보내어 자국의 식민지로 삼고 자원을 자국화하려고 합니다. 지구에서 하던 땅따먹기의 못된 버릇을 우주에 가서도 하려는, 좁아터진 생각을 가진 거지요. 시간이 휘고 공간이 단축되는 우주에 가서도 시공간에 갇혀서 살았던 습관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이용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우주적 진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은 너무나 짧고 유한하나 우주는 너무나 크고 광대하다. 그러면 이 콩알만하고, 더 정확하게는 티끌만한 존재(실제로 성경과 물리학은 인간은 티끌이라고 정의)인 인간이 이런 너무나 광대한 우주를 향해서 나갈 때에 필요한 근본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겸손, 또 겸손, 또 겸손, 또 겸손 아닐까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대해, 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또 이 광대한 우주의 시초인 139억 년 전을 넘어서는 인간이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무엇보다도 그 태초를 창조한 어떤 분과 그 계획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주시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은 인간의 총체적 기술의 발전입니다. 그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AI와 그가 하는 ‘스스로 심화학습’(deep learning)과 그것을 이룰 도구로서의 양자컴퓨터입니다. 2035-2040년에 예상되는 ‘특이점’singularity시대는 AI가 천재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 오랫동안 쌓은 총지식 자체를 초월해 버릴 겁니다. 그런데 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인간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단지 인간을 (과학적)지식을 가진 최고의 존재라고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1) 세상의 배꼽의 문화(명)에 돌아가기를 소원하며,
  2) 인간이 물질적 존재이기 전에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윤리적, 종교적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3) 종교부터 모든 문화(명)현상이 처음 시작부터 통합된 것에서 출발하며 각 영역의 창조적 연관을 확신하는 사람 말입니다.
  이들이라면 인간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 존재(영원성)이지만, AI는 소멸하는 존재라는 것을 압니다. 또 AI는 오직 우리가 과거에 만든 결과물을 가지고 조작할 뿐이기 때문에 창조적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인간만이 과거에 전혀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창조성)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해 자신만만해하고 그 시대가 도래하기를 오히려 기다리며 앞당기려고 할 것입니다. 우주시대가 시작되는 시점과 AI가 부상한 시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거의 섭리와 같은 놀라운 진실이 아닌가요? 즉 우주시대에야말로 AI가 꼭 필요하며, AI 없이는 우주시대가 시작될 수 없습니다. 또 바로 이 때에 AI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매우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꼭 필요한 양자컴퓨터라는 수단이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놀랍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때에 한반도 한민족이 5천년 이상 기다렸던 기상을 펼 때가 드디어 왔다는 점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유대인들이, 들어가서 정착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해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국가가 둘 있다고 합니다. 아이큐가 거의 110으로 세계 최고수준인 한민족이 사는 북한과 남한이랍니다. 지금 보이게 또 안보이게 그들의 안방인 미국과 그들의 자국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유대인을 우리 한반도 한민족은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능가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첫째, 우리는 남에게 지배당한 역사는 많지만 지배한 적이 없는 민족입니다. 이것을 장점으로 살리자면 지배당한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또 힘 생길 때에 망나니처럼 욕망을 부렸던, 실패한 민족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됩니다. 즉 남에게 친절한 한반도 한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또 섬기기를 좋아하는 민족이 되어
  둘째, AI와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고 다루는데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의 배꼽의 문화(명)에 돌아가서 인간사의 근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각주 : 

1)리처드 뮬러, 나우. 시간의 물리학, 2019, 436, “물리주의는 하나의 종교일 수 있다.”

2)맷 메카시, 슈퍼버그.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우리가 알아야 할 치명적인 바이러스 2020. 항생제만 있으면 전염병은 척결되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을 책망하는 최근의 책이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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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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