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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둘째 출산! 노산 워킹맘의 ‘금지옥엽 육아 이야기’

2020년 3월호(12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1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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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도 없이 둘째 출산! 노산 워킹맘의 
‘금지옥엽 육아 이야기’

저는 5살 금이(태명)와 생후 40일 된 옥이(태명) 두 형제를 낳고 키우며 한창 수면부족, 체력부족,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는 결혼 7년차 워킹맘입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평균 육아맘들의 삶의 궤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여기에 제 나이가 들어가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78년생, 올해로 한국나이 43세(만41세)에 둘째를 출산했습니다. 2013년도 36세에 고올드(Gold 아니고 Go Old입니다.^^)미스 생활을 청산하고 전격 결혼! 첫째도 한국나이 39세에 출산했으니 두 아이를 모두 노산으로 낳았습니다. IMF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한창 어려울 때 대학을 다녔으며, 당시의 취업난 때문에 반 자발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고학력자가 되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학비 등으로 생긴 빚을 갚느라 연애와 결혼을 늦추며 노처녀가 되어갔던, 뉴스에 나오는 3포 세대(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의 선구자의 길을 걷던, 사회적 만혼과 노산의 전형적인 케이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 후반 취업한 이후, 30대 중반까지 일중독, 학습 중독, 취미 생활 중독으로 지내던 저에게 연애, 결혼, 출산은 내 것이 아니라며 내려놓았을 때에야 선물같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인연으로 36살에 급작스레 결혼했고, 결혼한 이듬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비로소 아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와 일과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이는 생각만큼 금방 찾아와 주지 않았고, 기대하다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며 결국엔 39세가 되는 새해부터는 시험관 시술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지내던 38살 12월, 첫째 금이가 기적처럼 찾아와 주었습니다.   

첫째 금이의 태명은 제 직업과 관련이 깊습니다. (사)대한양궁협회 홍보과장으로 있는 저는 당시 2016년 리우올림픽 양궁팀의 올림픽 출전을 돕고 있었고, 전 종목 석권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귀하게 찾아온 생명이 금메달을 가져다 줄 복덩이길 바라며 태명을 지었습니다. 당시 장혜진 선수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아이의 태명을 듣고는 “오~금메달 금이예요? 그럼 꼭!”하며 배를 소중히 만지고 갔는데, 2관왕을 했다는 믿지 못할 전설이…

노산임에도 금이는 큰 이벤트 없이 건강하게 자라나 리우올림픽에서는 양궁 금메달 4개로 전관왕의 위업을 이루며 태명 값을 했고, 주변사람들이 대단하다, 지독하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출산 전날까지 밤낮 일하며 지내다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왜 그 나이가 되도록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 그렇게 무지 했을까요? 현실 육아는 정말 제 인생과 가치관을 뒤흔드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40세가 다 되어가도록 철저히 내 중심으로만 살던 제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며 지내야 하는 육아는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 정신적으로 너무도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를 끝까지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 누군가의 희생이 있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 육아의 현실에 제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을 겪으며 ‘산후우울증’이란 것이 찾아온 것이지요. 그때 준비하던 시험도 그만두고 시간이 자유로운 사업장을 차려 육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남편과 노년의 자유를 포기하고 사랑과 정성으로 손자를 돌봐주신 친정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사회에 복귀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며 그제서야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조그마한 아이랑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생활비는 부족하고, 분명 아이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한가득 늘어만 가는데도 그걸 뛰어넘는 사랑스러움과 행복감이 가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의 꿈도 바뀌고, 가득하던 욕심도 적당히 버리고, 목표도 수정해야 했지만,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가정과 아이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맙소사!!! 금이의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엄마 나이 42살에!!!
금이가 너무 예뻐서, 금이가 혼자 노는 게 안쓰러워서 막연히 동생을 생각하긴 했었지만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너무 늦었다 생각했습니다. 아이 옷과 육아용품들도 중고 판매와 드림으로 거의 정리했을 때, 찾아온 둘째 옥이(형아가 금이라 동생도 귀하다는 의미로 ‘금이야 옥이야’에서 따왔습니다.)는 사실 인생의 계획엔 명확히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옥이를 품으면서는 그야말로 노산의 고통을 몸소 겪어야 했습니다. 임신 확인을 하러간 산부인과에서는 제 건강에 이상을 발견하고 대학병원으로 의뢰서를 써줬고, 내분비 장애, 하혈, 면역력 저하로 인한 지속적인 감기증상으로 일하면서 아이를 품는 일은 늘 긴장과 고통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뜻이 있어 제게 온 축복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어렵지만 열심히 관리하며 다행히 건강한 옥이를 낳고는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출산 후유증으로 고혈압과 폐부종, 천식이 찾아와 회복하느라 출산하고 한동안 아이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옥이를 품을 때도, 낳을 때도, 지금까지도 저는 체력적으로 힘든 일들의 연속이지만 옥이가 아니었으면 저는 건강이상을 일찍 발견하지 못해 조기에 치료할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르니 효자를 낳았다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100세까지 건강을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금이와 옥이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옥이는 감사하게도 뱃속에서부터 건강히 자라나 출산 시에도 작은 이상조차 하나 없이 건강히 태어났고, 출산 40일째인 지금까지 탈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랑이라더니 어찌나 순한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모든 게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밤낮이 뒤바뀌어 안아주고 달래주느라 잠도 못자는 중이지만, 그것조차도 그러려니 싶고 감당이 되는 게, 이것이 둘째 맘의 여유일까요? 이제 5살이 된 천방지축 금이 형아가 옥이가 예쁘다고 뽀뽀해주고 분유도 먹여주고 돌봐주려 할 땐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합니다. 잠 못자는 나날 속에 남편과도 ‘우리의 소원은 통잠’이란 노래를 부르며 전우애(?)도 점점 커져 가구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마을, 집성촌, 대가족의 개념이 사라진 현대의 도시 생활, 사회의 경쟁구조, 조직구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워킹맘과 그 가족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분명한 손해이며 큰 벽이 틀림없습니다. 아이 하나 낳아 기르기도 힘든데, 둘째요? 계산해보면 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손해를 모두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습니다. 금지옥엽, 두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울고 있는 옥이에게 분유를 먹여주고 있던 금이 형아

 

미사강변도시에서 반미혜 
comeme36@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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