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죽음으로써나마 자신을 표현하는 일본인

2020년 3월호(12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12. 21:44

본문

[일본문화 2_자살문화]

 

죽음으로써나마 자신을 표현하는 일본인

2001년 1월 26일 신오오쿠보역, 한 남성이 플랫폼에서 떨어지자, 이를 구하려 한 한국 청년이 선로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마침 진입한 전철로 한국 청년은 물론 함께 돕고자 했던 일본인 1명까지 모두 3명이 사망했습니다. 벌써 19년 전 일이지요. 매년 한해를 시작하는 1월이 되면 일본에서는 희생한 한국 청년을 다시 떠올리며 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은 철도사고가 많은 나라입니다. 이를 인신사고(人身事故:진신지코)라 하는데 보통 역에서 떨어지거나 철로 내 출입 등이 원인이 되어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철도를 자살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통계청(2018년)에 따르면 일본 전체 자살자 수는 2만598명으로 감소추세이지만, 철도 자살자 수는 점점 늘어 하루 평균 1~2명이 사망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관동지방(도쿄중심지역)에서 일어나는 인신사고의 60%가 철도 자살이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망자들뿐 아니라 철도 운전자들에게도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남겨 손 떨림, 운전기피현상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철도사고가 이렇게 많은 걸까요?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지 않고, 철도 신호등은 있지만 사람들이 선로를 가로질러 다닐 수 있는 건널목이 많은 것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에 철도회사에서는 2025년까지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100% 설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사고의 진짜 원인인 일본인들의 내면 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조사에 따르면 철도 자살 원인 1위가 우울증이었습니다. 특히 출근 첫날인 월요일과 통근시간대가 가장 많았지요. 이는 회사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충동적으로 철도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달려오는 전차를 보면서 ‘한 발만 내디디면 편해지겠지?’, ‘고통 없이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일본의 직장문화
일본의 직장문화는 보통은 같은 색깔의 옷(흰색, 검정 위주)을 입고 출근하며, 한 문서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윗사람을 거쳐야 합니다. 또 고민이 있으면 선배나 동료가 아닌 상담센터에 의뢰해야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술자리에서만 해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게 일본문화입니다. 심지어 상담하시는 분도 회사 환경은 바뀌지 않으니 성숙(이해)하지 못한 개개인이 잘못이고, 개인이 직접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권하기도 합니다. 또 회사에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철저히 외로운 문화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일본 사회 대부분 사람이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살사고 후, ‘지각 사유서’와 ‘배상금 청구’
평소 출근길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전차가 신호대기, 혹은 작은 사고로 잠깐씩 서는데 어느 날은 1시간이 넘도록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누군가 자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익숙한 행동으로 개찰구의 역무원을 향해 길게 줄을 서는 겁니다. 알고 보니 ‘지각사유서’를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해, “이렇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죽어야 해?”라고 투덜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무자비한 관행에 질려버렸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표현을 죽음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가? 평상시에 자신을 받아 줄 그 누구도 없었던가?’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화가 난 저는 회사에 돌아와 이 상황에 대해 말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로 지각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증명서를 통해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보다, 마치 “내 잘못이 아니라, 죽은 네가 잘못이야! 너 때문에 지각했어!”라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각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이 나라의 법적 대응방식 때문입니다. 바로 자살한 사람에게 배상금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자살로 열차운행이 정지되고 승객들에게도 피해를 주었으니, 그 보상으로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렇게 해야 자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에게 위로는 커녕, 또 다른 경제적 짐과 고통을 더해주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본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19년 전, 한 한국 청년의 죽음은 일본 천황 일가도 조문을 올 정도로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1월이 되면 생명을 구한 그 장소에서 죽은 유학생을 추모하며, 매년 마련한 장학금으로 다른 유학생들을 돕고 있습니다. 거의 신처럼 받들고 있지요. 어쩌면 일본사람들은 스스로는 그렇게 희생할 용기 없이, 늘 피해 받길 싫어하고, 남을 용서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랑과 희생을 나눠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타이요홀딩스그룹 김지혜
kim.jihye@taiyo-hd.co.jp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5>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