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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와 역사 (2)

2020년 3월호(12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4. 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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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칼럼 2]

자전거와 역사 (2)

나의 자전거 역사 두 가지 에피소드
중학생 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과 입시로 자전거와는 잠시 멀어지게 되었죠,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군 생활 때였습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탄 것은 아니었지만요. 저는 공군에서 정비사로 장기복무를 하였는데요. 정비를 하다보면 활주로에 있는 먼 격납고까지 가야 할 일이 생깁니다. 원래 차량 지원을 받아서 가야 하는데, 차량 지원을 받을 수 없을 때면 자전거로 가게 되었습니다. 항공기가 주기 된(세워진) 주기장과 택시웨이(TAXIWAY : 항공기가 활주로로 이어지는 통로, 유도로)를 자전거로 타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나 못하는 재밌고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전역 후, 직장을 다니며 여러 일을 하느라 다시 자전거와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2009년 처음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자전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장비도 없이, 주변에서 아무 자전거나 빌려 여행을 떠났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팠고 손절임과 손목에 통증이 심하게 있었습니다. 게다가 엉덩이는 너무 아파 죽을 듯 했습니다. 또한 페달을 아무리 세게 밟아도 자전거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으며 다리는 점점 굳어갔습니다. 그래서 같이 간 동료들에게 SOS를 쳤습니다. 더 이상 못 타겠다고 말이죠. 동료들의 자전거를 잠시 빌려 타보니 제가 탔던 자전거가 왜 힘든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생애 처음으로 빨간색 하이브리드 타입의 자전거를 돈을 주고 샀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힘들었던 원인은 자전거 부품의 등급과 프레임 사이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전거 탄생, 시련의 역사
자! 이제 자전거의 본격적인 역사입니다. 자전거가 나오자마자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자전거(드라이지네)가 나온 시기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였는데요.(지난 121호 참조) 말이 없어지고 자전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상황을 2020년, 현재의 말로 하자면 내연기관 자동차가 없어지고 전기차로 바뀐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전기차는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고 불신만 있었죠.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빠르면 앞으로 5년 안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도 이번에 나오는 자동차가 마지막 내연기관 자동차라고 합니다. 자전거가 등장한 시대도 비슷했습니다. 말이 없어지니 말과 관련된 모든 산업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묵는 여관주인, 삯 마차 주인, 말로 배달하는 우편배달부, 우체국과 말과 관련된 각 가정 하인들이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산업이 변해버리는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발전보다 빠릅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변화는 저항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시각에 따라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정과 긍정의 선택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변화의 시점을 알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다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21세기가 바로 그 시점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자전거 자체를 타기 어려웠습니다. 밸런스를 잡고 타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죠.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접한 분들은 문제가 아니지만 나이 들어 이제서야 자전거를 타려하니, 균형감각을 배워야 하고 넘어지는 위험도 있습니다. 당시의 자전거는 지금의 자전거보다 심하였다고 합니다. 팔 다리는 물론이고 갈비뼈를 다친 사람도 많았고 부상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영국에서의 일인데요. 자전거(드라이지네)가 영국으로 수출되어 마차를 만드는 기술공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에 의해 벨로시페드가 되었습니다. 이 벨로시페드는 동시대 패션 유행인 댄디즘*에 큰 영향을 미쳤고, 댄디들은 최신 유행인 벨로시페드를 타고 다녔습니다. 댄디는 어느 곳에 있어도 금방 표시가 났습니다. 잘난척하고 이기적이며 거만한 행동거지가 특징이었는데요. 그들의 거들먹거림 때문에 사람들은 전염병인 뎅기열(Dengue-Fieber)을 빗대어 댄디열(Dandy-Fieber)이라 부르며 조롱하였습니다. 게다가 벨로시페드 라이더들이 인도를 달리며 행인들을 위협하자, 당국에서는 금지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새로운 유행에는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는 부정적 요소는 아니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작용을 줄이고 제도를 정착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반대만도 아니고 또한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사회 통합적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공유자동차 같은 사건들이죠.
네 번째는 자전거(드라이지네) 종주국 독일에서도 시련은 찾아왔습니다. 1819년 3월 23일 만하임에서 예나의 대학생 카를 잔트(Karl Sand)가 아우구스트 폰 코체부(August von Kotzebue)를 암살했습니다. 아우구스트 폰 코체부는 러시아의 스파이로 의심되는 반동적인 극작가이며, 배신자로 여겨지는 자였습니다. 잔트는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 당시 상급법원 법원장 빌 헬름 폰 드라이스(Wilhelm von Drais)가 사면 신청을 기각해버렸습니다. 그는 드라이지네를 발명한 드라이스의 아버지였습니다. 
1820년 잔트가 처형되자 그의 추종자들은 법원장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복수를 아들, 자전거(드라이지네)의 개발자인 드라이스에게 대신 퍼부었고 결국 드라이스는 6년 동안 브라질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발명품 홍보는 불가능하였고 잔트의 추종자들과 대학생들까지 자전거(드라이지네)를 외면했으며 드라이스는 죽는 날까지 이 보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와 연관될 때 좋지 않은 선례가 이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발로 밀고 구르는 자전거가 아닌, 페달로 구르는 자전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댄디즘(Dandyism):세련된 복장과 몸가짐으로 일반 사람들에 대한 정신적 우월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태도로 19세기 초, 영국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은 조지 브럼멜(George Brummell)이 댄디즘의 시조이며, 당시 그의 스타일은 사교계 청년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였다.

 

그린휠(주) 대표 최승호
www.gbikeshop.co.kr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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