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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멈추면, 보이는 것들

2020년 5월호(12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6. 2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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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멈추면, 보이는 것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습니다. 학교, 극장, 상점, 직장, 우리의 모든 만남까지. 그냥 우리 삶이 순간 정지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멈추면 보인다고 했던가요? 우리 가정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쌓여있던 불필요한 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짐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작아진 깨끗한 옷들은 주변 동생들에게 물려주고, 재미있게 봤던 깨끗한 책들도 또 다른 친구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엄마 아빠도 지난 2, 3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의류 수거함에 넣었습니다. 베란다에 쌓여있던 화분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들도 깨끗이 비웠습니다. 어느덧 주방 수납장도 여유가 많이 생겼고, 집이 두 평은 더 넓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버리니 오히려 넉넉해진 느낌. 미니멀 라이프가 이런 건가를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넓어진 베란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나 봅니다. 불과 2주 전에는 지나다니기도 힘들던 베란다에 돗자리가 깔리더니, 아주 좋은 캠핑 공간이 되었습니다.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저녁에는 침낭을 달라고 하더니 거기서 잠을 자겠다고 합니다. 아직은 춥다고 수차례 실랑이 끝에, 결국 거실에 텐트를 펼쳤습니다. 이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한 캠핑장이 있을까요? 그리고, 늘 엄마 옆에서 붙어 자던 아이들이 드디어 수면 독립(?)에 성공을 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캠핑을 하는 아이들


아빠인 나에게는 아파트 1층의 텃밭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재작년에도 관리 소홀로 농사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텃밭은 손이 가는 만큼, 정성을 기울이는 만큼 잘 될 수밖에 없는 아주 정직한 업무입니다. 4월이 되면서 날씨도 풀려 다시 삽을 들었습니다. 잡초를 뽑고, 거름을 새로 줬습니다. 1주일을 기다린 뒤, 감자도 심고, 상추 파종도 마쳤습니다. 요즘은 이틀마다 물을 주고 있는데, 왠지 올해는 풍년일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가족에게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는데, 바로 집 앞 도림천에서 안양천으로 이어지는 뚝방길입니다. 봄을 맞으며 온 가족이 자전거를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첫째는 본인 키에 맞는 새로운 자전거를 준비하고, 둘째는 형의 자전거를 물려받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둘째가 타던 자전거는 다시 보조 바퀴를 장착하고 막내가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낡은 자전거를 수리했습니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일부 부품을 새롭게 수리해서, 이제 온가족 자전거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2개월간, 코로나로 모든 시간이 정지 되어 있는 듯 했지만, 4월이 되니 늘 그랬듯이 봄은 오고, 벚꽃은 만개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뚝방길로 나섰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막내도 보조 바퀴 덕분인지 제법 달리기 시작했고, 첫째와 엄마는 한강 라이딩까지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요즘 온라인 개학이다, 재택근무다 하면서 화상채팅 앱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3주 전 대학 시절 같이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우리도 zoom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여 8명이 만났습니다. 서울 3명, 경기도 2명, 미국 3명. 40분 시간 동안 생사도 묻고, 안부도 묻고, 몇 년간의 이야기를 짧지만, 밀도 있게 나눴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안되던 것이 온라인에서 가능해진 것이죠. 
코로나, 코로나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디선가 희생하는 누군가의 수고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이 시간들을 묵묵히 함께 견디는 것, 이것이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서울 관악구 김용수  

mogkys@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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