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공유지’가 웃기 시작했다

2020년 9월호(13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1. 22:16

본문

‘공유지’가 웃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 쓰레기는 드글드글
코로나19로 야외활동이 어려워 집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3월의 어느 날 저녁, 찌뿌둥한 몸을 달랠 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집 앞에 있는 공원이 아닌, 조금 더 멀리 있는 위쪽 공원으로 방향을 잡았죠. 정식 이름은 ‘안금정어린이공원’,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개미공원’으로 통하는 곳이었죠. 공원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공원 한쪽에 마련된 인조 구장에는 공차는 아이들, 앉아서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로 (약간의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바글바글했으니까요. 이래서 개미공원이라고 부르나 할 정도였지요. 코로나19 감염이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들이 너무나 좋아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운동장 주변으로 널려있는 온갖 쓰레기였습니다. 먹다 남은 컵라면부터 해서 버려진 마스크까지 하나같이 아이들이 벌려놓은 것들이었죠. 아이들을 불러 놓고 “자기가 버린 쓰레기는 자기가 치워야 한다”는 일장 훈계를 했지만, 당장에 처리할 방법이 없어 공원 앞 편의점에서 종량제 봉투를 사와 쓰레기들을 모았습니다. 아이들은 내가 버린 게 아니라며 발뺌을 하다가, 마지못해 쓰레기를 주워왔습니다. 그 후로 가끔씩 들린 공원은 여전히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저는 그때마다 쓰레기를 모아 치워야 했죠. 그러던 중에 아이들 중 가장 어른격인 ‘준희’라는 새내기 대학생 친구와 초등학교 6학년 ‘민재’가 관심을 갖고 쓰레기 치우는 것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줄이고 깨끗한 공원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운동장 옆에 분리수거함을 만들어 설치해 보기로 했습니다.


뚝딱뚝딱 분리수거함 만들기
두 친구와 약속을 잡고 회사에서 남은 자재들을 가져와 분리수거함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그린 도면을 따라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만들어가는 가운데 날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한참을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께서 나무 자르는 것을 도와주시고 손을 보태어 마침내 분리수거함이 가로등 불빛 아래 모양을 드러냈습니다. 준비한 재활용 표지를 통에 붙이고 나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비닐봉지를 수거함 옆에 달아놓아 누구든지 쓰레기가 차면 교체하기로 했죠. 다음날은 현수막도 제작해 준희와 함께 운동장 둘레에 매달았습니다. ‘축구공은 골대에! 쓰레기는 분리함에!’
분리수거함을 만들고 나자, 쓰레기도 줄고 조금은 공원이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들이 있었죠. 그리고 수거함을 만든 뿌듯함은 잠깐일 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비가 갑자기 내리는 날은 우산을 쓰고 나가 물에 잔뜩 젖은 쓰레기들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준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분리수거함을 부수고 현수막까지 떼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민재는 억울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니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죠. 일단은 준희를 안심시키고 퇴근 후에 들러보겠다고 했지만, 안 되겠다 싶어 당장에 공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심각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보였고, 사단의 당사자인 듯한 할아버지가 공원 한편에 앉아 계셨죠. “할아버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이들과 정성껏 만든 건데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아이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세요?” 끝까지 본인의 잘못은 없다고 잡아떼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저는 공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쳤습니다. 보다 못한 다른 할아버지께서 미안하다며 참으라고 하시는 가운데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상심한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얘들아, 우리 정식으로 다시 시작하자. 시청에 허락도 받고 튼튼하고, 근사하게 분리수거함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들의 눈빛에 이전에 못지 못했던 결의가 빤짝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이 모든 과정을 목격했던 다른 아이들도 함께하겠다고 자진해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시작한 게 바로 ‘공유지의 희극’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공유지의 희극’으로 다시 일어서다
마침 군포시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 공모가 있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안금정어린이공원’에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고 공공시설을 책임 있게 사용하자는 내용으로‘공유지의 희극’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컨설팅을 받고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쓰는 공간들은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쉽게 비극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다는‘공유지의 비극’이론을 뒤집어, 책임 있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깨끗하고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공유지의 희극’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는 분리수거함 설치뿐 아니라, 마을 안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시설에 좋은 글과 그림을 부착하고 교체해 주는 문화사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적극적인 활동은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만나 분리수거함 아이디어도 나누고, 인형극단을 초청해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책임 있는 공유지 사용’이라는 주제로 ‘햇님 달님’이야기를 각색한 멋진 인형극 공연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7월에는 아이들과 나눈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농구 골 망이 부착된 멋진 분리수거함을 공원 안에 설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 시청의 관련 부서의 협조로 관리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원은 한결 깨끗해지고, 함께 했던 아이들의 자부심이 제법 커지게 되었습니다.“이 분리수거함 제가 만든 거예요”하고 자랑할 만큼 말이죠.


미래의 지도자들을 키워내는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어릴 적, 비가 많이 와 학교 가는 길에 돌다리가 넘치면, 마을 할머니께서 초등학교 다니는 마을 아이들을 일일이 업어 건너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장마에 떠내려간 징검다리를 마을 어른들이 함께 모여 다시 놓아 주셨고, 산등선 등굣길에 난 풀들을 베어주시는 것도 마을 어른들의 연례행사였죠. 그뿐 아니라 마을 어른들이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보살피고, 때로는 야단을 치며 함께 기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을을 이제 더는 찾아보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바쁘고 개인화된 사회의 결과이겠죠. 무엇보다도 ‘누가 내 금쪽같은 내 자식을 건드려!’하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생각은 좁은 부모의 한계에 아이들을 가두어, 넓은 마음으로 미래의 지도자를 꿈꾸는 길을 막는 부메랑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의 지혜를 가진 마을 어른 전체가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고 훈계하는 그런 마을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저는 그런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며, 아이들의 부모님과 동네 주민들의 마음을 끌어내려 합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공유지의 비극으로 우주까지 온통 쓰레기와 전쟁터가 될 것 같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바꿀 지도자가 바로 공유지의 희극을 만들어가는 우리 마을에서 자라고 있을지 말입니다.

 

경기도 군포시 당산로 
‘어메이징 스페이스’ 고종훈 대표
010-6378-1349, 유튜브채널 <공자합시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