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는 기다립니다

2020년 9월호(13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30. 22:27

본문

[청소년 성장기]

나는 기다립니다

 

 급식 지도를 하다 보면 엉터리 같은 행동이 더러 보입니다. 정해진 분량의 식사를 정해진 장소에서 질서 있게 먹어야 단체생활에서는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H는 무리 지어 다니면서 앉지 말라고 하는 자리에 구태여 앉아, 여분으로 남겨놓은 음식까지 모두 집어가 버립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도를 하면, 선생님이 쓸데없이 간섭한다고 인상을 씁니다. 입을 쑥 내밀고 눈을 휘번덕거리면서요. H는 그렇게 피하고 싶은 학생이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훈계도 아까우니 그냥 두라고 그 아이를 지도했던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를 3학년 때 교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바싹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엎드려 있지도 않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지도 않고 곧잘 수업을 듣습니다. 질문도 합니다. 마음이 풀려서 이름도 자주 불러주고, 칭찬도 해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요? 또다시 게으름을 피웁니다. 마음 내키면 수업을 듣고 그렇지 않으면 보건실을 간다, 물을 마시겠다, 책을 가지러 가겠다면서 무던히도 속을 태웁니다.
 그러다가 오늘에야 몇 주 전에 진행했던 수행평가를 찬찬히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필사하고 그 문장형식에 맞춰 창작하는 과제였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곧잘 적어냈습니다. 그때 질문을 하면서 눈을 반짝였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도 ‘다비드 칼리’를 안다고 쉬는 시간까지 책상에 붙어서 글을 썼던 것까지 하나 둘 씩 떠오릅니다.

 ‘나는 경멸합니다. 방황했던 나 자신을, 그 탓마저 남에게 돌렸던 자신을, 돌이키지 못하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 자신을, 선생님에게 대들었던 과거를, 아무런 교훈 없는 경험에 빠져 있던 자신을, 혼자 힘든 척 떠들어대던 자신을…’

 뭉클했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쏘아대던 아이가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래, 지금이 기회다! 쉽게 바뀌기야 어렵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달라지다 보면 그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겠지’ 새로운 다짐이 제 마음 속에서 솟아났습니다. 마침 쌍방향 온라인 강의를 하겠다고 아이 연락처를 받아 놓은 것이 있어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전에 네가 쓴 글!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는 진실한 글이 마음에 와 닿는구나”라고 보내니 바로 “감사합니다”란 답글이 옵니다. 

 아이들은 변합니다. 그래서 피하지 말고, 인내하며 희망을 거는 거겠지요! 
오늘은 수행평가를 하다가 기쁜 선물 하나를 받은 날입니다.

 

서울시 노원구 김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