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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2) (1809. 2. 12 ~ 1865. 4. 15)

2020년 9월호(13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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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2]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2)
(1809. 2. 12 ~ 1865. 4. 15)

링컨의 왼손 아래에는 성경과 미국 헌법이 놓여있고, 오른손은 노예해방선언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

(Courtesy Library of Congress)

 

우리는, 비록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류에 놀라운 공헌을 남겼던 위대한 리더들이 가졌던 내면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반도,한민족의 다음 시대를 열어갈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란 단순히 감정,느낌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1) 순결한 종교적 확신, (2) 높은 윤리적 기준, (3) 고상한 정치사회적 이상, (4) 그런 것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내는 지혜와 인내, (5) 많은 사람과 맺고 발전시켰던 건강한 관계들, (6) 가족적,육체적 (좋거나 나쁜) DNA나 역사들을 발전,극복하는 능력들을 말합니다. 물론  리더들을 다룰 때에 이들을 거의 우상시하는(소위 링컨에 대해서 링컨우상화 ‘Lincoln idolatry )’ 것이나, 이들이 가졌던 몇 가지의 (치명적)약점으로 그의 업적을 깎아내려 이들의 업적과 함께 내면세계도 보잘 것 없게 평가해 버리는 어리석은 길을 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첫째 인물로 미국의 16~17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험 링컨(1809.2.12 ~1865.4.15)을 선정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재도 풀리지 않고 있는 흑백문제의 실마리인 노예제 폐지라는 첫째 외적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그가 가진 가장 큰 내적 자질은, 바로 노예제도가 악이며 이것과 싸워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며, 이 확신을 (종교적)기독교적 기초에서 형성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근친혼으로 태어났으며 새엄마에게서 거의 버림받은 전력을 가진 여자의 술수(메리가 스스로 한 말 ‘그는 도의상으로라도 나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된다’)에 걸려 지옥에 끌려가듯이 결혼한 사람이, 바로 마음 여리고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감이 엄청나게 강한 링컨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정말로 사랑한 세 여인(친엄마,누나,첫사랑)의 죽음을 과거로 두고, 이 악마같은 여자와의 지옥같은 결혼생활을 23년 동안 현재적으로 이끌어왔던 내면적 힘의 근원은 어디서 왔겠습니까? 링컨 생애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남북전쟁의 어려움과 그 마지막으로서의 그가 당한 암살이 아니라 그의 결혼생활 자체였다는, 데일 카네기의 보고에서 유추해 보면 말입니다. 평소에 모든 일에 굉장히 능동적인 링컨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큰 일이나 거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운명론에 기울어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링컨은, 자기의 결혼에 대해 자기 밖의 어떤 존재에 의해서 유도된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어떤 종교적 확신 같은 것으로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감내해 간 것입니다.


둘째, 링컨을 살펴본 주위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눈에 슬픔이 가득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청년기,중년기,장년기를 지날 때에도 그가 다른 사람과 말을 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온몸에서 우수와 슬픔을 뿜어내곤 해서 어깨가 굽어지고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링컨은 지독한 슬픔의 사람이었던 겁니다. 만약에 그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불행에만 집중하였다면, 내면적 에너지의 방향을 자기에게만 향하게 하여 자폐적,자기파괴적인 ‘자기연민’, ‘자기위로’에 빠지거나, 혹은 방향을 외부로만 돌려 타인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삶으로 평생을 마무리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링컨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공적,사적으로 자기를 바보로 비웃는 거의 대부분의 장관들이나 자기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해 대는 대적들에 대해 앙심을 품지 않았으며, 단지 그들 각자의 장점을 집중해서 장관직을 유지하도록 하거나 그들을 궁극적으로 용서하는 엄청난 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내적 능력은 링컨의 슬픔과 우수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보다는 보편인류와 역사 전체의 진행에 대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난 호에는 링컨의 이런 거대한 슬픔과 우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서서히 형성된 종교적 확신을 기초로 해서 1) 엄청난 감정이입능력, 2) 문학(특히 시)에 몰입하는 것, 3) 풍성한 유머를 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제목만 잠깐 소개했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그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받았던, 독하고 악한 종교의 두 영향력에서 서서히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에 도달함으로서 가능했습니다 : 


(1) 링컨은 미국개신교가 가졌던 경직된 교리,교단,교파,개교회주의, 그리고 개신교나 로마교에 동시에 영향을 미쳤던 어거스틴의 세상-교회를 구분하는 이원론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1854년 캔사스-네브라스카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이제는 노예제가 합법적으로 미국 전역에 퍼질 위기에 엄청난 종교적 소명의식을 느껴서 분연히 일어나 12년(1854~1865)의 핵폭탄과 같은 에너지로 정치에 몰입한 겁니다. 그는 악과 대항하기 위해 목사와 장로가 되어 소극적으로 눈에 보이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악과 투쟁하라는 신의 초대를 폭발적 사명감으로 반응한 정치인이 된 겁니다.   


(2) 이런 경직된 종교적 경향과는 정반대로, 17~19세기 유럽,미국에서 때를유행하며 지나간 합리주의,이신론,계몽주의,낭만주의,감정주의 기독교의 독소에서 링컨은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서서히 거기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에는 종교적 토론을 삼갔지만, 자신의 어린 동료인 헌돈에게 “자신의 종교는 선한 일을 행하면 선을 느끼고 악을 행하면 잘못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행동하는 종교를 선호하는 면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말에 서구에서 유행하게 되는 도덕주의적 종교관과 같은 허황된 종교관을 끝까지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장차 맞이하여 투쟁하게 된 노예제도 폐지와 같은, 생동력있는 종교적 확신이 없이는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도전을, 신이 자신에게 허락했다는 소명감으로 이런 것을 바람처럼 휩쓸어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스러울 정도로 왜곡된 철학적 종교관에서 자유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겁니다. 학자들이 생각하는 기독교가 아닌, 본래적 기독교(C.S.Lewis가 말한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 돌아가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경 자체를 단순하게 믿는 종교, 예수가 가르치고 행했던 종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단순하고 순박한 신앙은 진정으로 자신의 중심성을 극복한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가지는 종교적 태도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성경의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별명이 정당한 이유는, 그가 행동할 때에 수많은 성경구절을 아주 정교하고 적확하게 인용하였고 그 확신을 실제 정치에 적용하였기 때문입니다.1) 또 같은 의미에서 그를 기도의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도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거의 4년이나 지속되며 엄청난 희생을 동반한 남북전쟁 속에 고심하며 이루어내었던 노예해방선언(1863)과 매우 위태로웠던 재선투표(1864)의 위기 속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민심을 다독이며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적,공적으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2) 


링컨이 이런 종교적 확신에 근거하여 그가 가졌던 엄청난 감정이입능력에 대한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링컨에 대한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어린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대부분 크게 감탄하곤 합니다. ‘감정이입능력’이란 타인을 혹은 타인의 일을 자신처럼 혹은 자신의 일처럼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건강하고 탁월한 감정이입능력은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자기에 대한 건강한 인식,자각이며, 동시에 타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자각하고 대접해주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건강한 인식,자각인데, 이것이 되지 않으면 타인을 건강하게 인식하고 건강하게 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링컨이 평생동안 발전시켜갔던 건강한 자아의식은 외부의 그 어떤 도전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견고한 잣대가 되었습니다. 링컨의 새어머니 사라가 처음에 집에 왔을 때, 링컨과 누나 메리는 부모없는 집에서 마치 짐승처럼 뒹굴고 있던 것을 발견할 정도였습니다. 친엄마의 죽음, 이어서 가장 가까웠던 결혼한 누나의 이른 죽음, 첫사랑 앤 터들리지의 이른 죽음이라는, 정서적으로 여성적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지낸 그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비뚤어진 자아를 분출하기 위해 물질욕과 명예욕에 노예가 되어서 남편을 집착하고 그를 평생동안 옭아매어온(아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강변하겠지만) 아내 메리와의 23년의 삶 속에서 겪은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개인적 슬픔에 빠졌거나 매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보편 인간의 슬픔으로 간주하고 그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려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자아의식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느냐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흔히 ‘건강한’ 자아의식을 단순한 자기 시인,자기인정(‘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으로만 해석하기 쉽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자기중심적 결과들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현상은 절대종교가 아닌 상대종교의 문화권에서 즉 황제권,왕권 자체가 절대적 권력이 되어버리는 곳에서 일어나기 쉬운 현상입니다. 즉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신이 없는 문화와 사회이니, 인간 자신이 최고의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 등극하는 겁니다. 현대에서 서양,동양을 막론하고 이런 절대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없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중국에서 공산주의를 동양적 전제군
주제와 병합한 섬뜩한 정치적 실체가 상존함을 지금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태도는 비단 정치에 있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에 사는 개개인들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 아래서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삶에서 자신를 절대적으로 주장하는 습관에 물들었습니다. 심지어 절대종교인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의 현실이나 경험에 유익을 주는 한에서 믿어준다는, 매우 주관적인 종교관을 가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극대로 확대시켜 조금이라도 성공을 거두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절대적 자아로 등극하여 자기시인,자기인정만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런 독불장군들이 동양인들 속에서 그렇게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링컨은 학교에 통틀어 채 1년도 다니지 않았고, 그것도 스승도 학교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엄청난 내적 집중력과 노력으로 미국 역사에서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었고, 위대한 정치철학자3) 로까지 인정받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럴 경우, 거의 신에 가까워진 ‘구루’로 처신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링컨은 정반대로 결코 자기 영웅화에 빠지지 않는 건강한 자아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4) 건강한 자아의식은 세 단계로 형성되어 집니다. 첫째는 건강한 자기부인, 둘째는 절대자에 대한 절대의탁, 셋째는 건강한 자기시인입니다.

 
첫째, 링컨의 건강한 자기부인은 링컨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 속에서 형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서 죽음 앞에 무기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비참함에 엄습당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가 철자법을 익힐 때에 사용하였던 토마스 딜워스의《영어의 새로운 길잡이》(1740 런던, 1747년 필라델피아 발행)라는 책 속에 실렸던, 도덕적이고 교훈적 시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그가 외운 “인생은 짧고 비참하네”라는 시는 그의 슬픈 가슴에 감정이입으로 그를 달래주는 것이었습니다.5) 


그는 또 딜워스의 책에서 “인간은 원래 명예롭고 행복하게 창조되었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신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고 대체되었으며 지옥의 천사들보다 크게 우월할 것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구절도 읽었을 겁니다. 링컨이 나중에 ‘우리 본성에 깃든 더욱 선량한 천사들’에게 호소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어린 시절 암송했던 구절을 얼마나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가를 보여줍니다. 즉 죄와 악으로 절대신을 떠난 인간 일반이 겪는 슬픔,비참함,허무를 깊이 자각했기 때문에 그는 건강한 자기부인으로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동시에 바로 이런 건강한 자기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신이 마련한 구원의 길로 자기를 의탁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자기부인이 없는 동양종교,문화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삼욕인 물질욕,성욕(관계욕),명예욕이 인간 삶의 중심을 차지해서 마귀처럼 지배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 자라난 링컨은 근본적으로 이 삼대욕망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링컨에게는 이런 삼대욕망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인간 존재 자체와 역사,문화 자체의 붕괴,슬픔,허무를 극복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했던 신앙고백이나 신학적 확신에 대한 글을 공적으로 읽을 수는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문제를 자신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혹은 누구도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지 않는 사이에, 절대자가 조건없이 주시는 구원을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절대의탁을 하였을 겁니다. 그 결과 그는 성경 깊이 읽기와 기도에 깊이 침잠하기라는 전통적인 종교적 행위의 진수에 도달해서6) 켄사스-네브라스카 법안 통과와 자신의 순교 사이(1854~1865)의 11년이라는 매우 처절했고 오래간 정치투쟁을 성경적 원리로 수행해나갈 수 있었던 겁니다.7) 만약 이런 해석이 맞지 않다면, 1) 극도로 너그러운 행동, 2) 엄청난 인내심, 3) 독립선언서와 헌법과 도덕법에 대한 결코 녹일 수 없는 확신을 보인 이 인물을 우리는 외계인 아니면 신으로  여겨야 합니다. 물론 링컨은 자신이 결코 이런 부류로 간주되기를 원치 않았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링컨을 우상시하지 않아야 한다면, 죄와 악으로 신을 떠났던 인간으로서 링컨이 스스로 부인하는 자기부인과 함께, 절대자가 내려준 구원의 길을 신뢰하여 거기에 아무 조건없이 자신을 의탁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반드시 셋째 단계로 나가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건강한 자기시인을 향해 나간다는 겁니다. 어릴 적 읽었던 딜워스의 책에 돌아가 봅시다 : “복종은 신과 이웃, 자신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의무를 포괄한다. 그러므로우리는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고 법 집행자들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마음깊이 새겨야 한다.” 성인이 되고 정치가가 된 링컨은 헌법에 명시된 법률에 대한의무와 국가의 보존을 항상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카프란,링컨,22) 즉 링컨이 가진 건강한 자기시인은 절대자의 구원을 받은 새로운 존재로서 현실 세계를 구원하기 위하여 신의 뜻을 따라 선택된, 그 손에 들린 도구라는 자의식으로 완성된 겁니다. 한편으로 그는 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했지만 - 그래서 그는 평생 수동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는인간과 역사 앞에서 매우 능동적,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존재가 되는, 보통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매우 균형잡힌 인격체의 모습을 보인 겁니다. 


링컨의 내면에서 이런 근본적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결과 그는 타인에 대한 엄청난 감정이입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고, 이런 점에서 그가 보인 사례들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흔히 감정이입은 타인을 잘 이해하는 능력으로만 피상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링컨 같은 이런 건강한 자기인식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들은 곧 바닥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재선되고 나서도 그 결과를 자기를 향한 국민의 인기가 높아서 그런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고 “국민들이 강을 건너는 동안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청탁을 하러 백악관에 몰려들었고 그것 때문에 보아야 할 다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비서를 더 고용해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링컨에게 청탁을 하러 왔습니다. 마침내 백악관의 직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외마디를 지르며 대통령을 바보,천치로 여기곤 했습니다. 링컨 자신도 이들의 행동을 ‘파리떼’와 같이 달려들어 자기가 압사할 지경이라고까지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결국 링컨이 죽기 한 달 전인 1865년 3월까지 링컨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을 보러가는 것도 청탁자들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사무실을 아예 천연두 병실로 옮기면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 적어질 것이 아니냐고 윌슨 장군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어 그들은 너도나도 천연두 예방주사를 맞아서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자기에게 요구할 것이라고 허탈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헤리스,62). 하지만 링컨의 궁극적 반응이 정말 가관입니다. “그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도 사실 큰 것이 아닌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을 계속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거지요. 이런 작은 일에 있어서도 링컨은 국민들의 요구를 따를 때에 느끼는 자기 고통,감정에 솔직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도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진 사람이었던 겁니다. 즉 그는 자신의 감정,처지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처지를 같이 이해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이 둘 중의 하나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되며 절대적 기준인 종교적 기초에 모두가 서서 행동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점에서, 그는 종교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감정이입이라는 초월적 능력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탁월한 능력은 아직 남부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진 그의 대통령 재취임 연설(1865)에서도 잘 나타납니다.8) 그는 성경에 입을 맞춘 후에 이 전쟁이 북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를 250년 동안 유지한 백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응징”이라는 사실을 섬뜩할 정도로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만약 전쟁이 지속되어 계속 희생이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은 진실하며 전적으로 의롭다”(시편 19:9)고 선언해야 한다는 종교적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의 이 위대한 취임연설은 정확하게 두 달 후 그의 장례식에서 그대로 낭독되어서, 얼마나 그가 이끈 이 위대한 업적이 종교적 기초를 가진 것이었던가를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자”고 선언했습니다. 실제로 남부의 리장군이 최종으로 항복(1865.4.9)한 후에도그들을 패잔병처럼 불명예스럽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리 장군 휘하의 모든 장교들과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휴대하고, 말,노새를 타고 자신의 목장,목화밭에 돌아가서, 이전처럼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엄청난 자비심을 보일 수 있었던 겁니다.


1) 링컨이 백악관에서 물끄러미 근처의 초등학교를 바라보다가 옷이 남루하고 구두가 낡은 소년을 위해 몰래 교복과 새 구두를 선물했습니다. 그 후 링컨은 그 아이의 교실에 직접 나타나서 칠판에 정확하게 다음의 성경구절을 써서 아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내게 행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즉, 링컨은 자신의 자비심을 드러내지 않았던 겁니다. 오히려 자신은 아이 하나에게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으로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 되었으니, 결국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한 셈입니다. 
2) 링컨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노예해방선언(1863)의 후폭풍을 견디어야 하고, 전쟁의 장기화와 지지부진한 전황, 그리고 재선의 불확실성(1865년 초겨울) 앞에 섰던 그해 가을이었습니다. 이 때 그는 가장 우울했고, 가장 건강이 나빴으며, 아내인 메리는 더욱 날뛰었고, 장관들은 허둥대면서 링컨을 미치도록 만들었으며, 국민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링컨을 천재라 칭찬하다가 조금만 상황이 나빠지면 비난하기를 널 뛰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부의 연맹군에게 타협하는 편지까지 작성했지만 서명은 하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가, 밤새 기도하며 고민한 뒤에 그대로 책상 서랍에 깊이 밀어 넣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얼마나 기도에 의지했던가를 보여줍니다. 또 그가 최고로 어려웠을 때에 성경에서 알 수 없는 인생의 고난과 씨름하던 욥기를 소파에 길게 누워 읽으며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사내답게 네 허리를 동여매라. 너에게 물을 터이니 너는 대답할지어다’(욥기 38:3)
3) H.V.Jaffa는 링컨이 매우 공을 들여서 꼼꼼하게 작성하고 발표해나간 대부분의 연설들을 연구하여 그가 얼마나 탁월한

정치가인 동시에 위대한 정치철학자인가를 보였습니다.

(A New Birth of Freedom: Abraham Lincoln and the Coming of the Civil War, 2018). 그는 플라톤이 그렇게 이상적으로 이루기를 바랬던 철학자-정치가가 된 셈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이상보다 훨씬 더 탁월하게도, 그는 종교적 확신 아래서 미국정치사를 전격적으로 바꾸었으니 사실상 제사장-철학자-정치가의 면모까지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링컨이 당선되고 난 뒤에 워싱턴으로 가는 중간에 만난 열혈청년은 링컨을 자기 목숨을 다하여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전쟁에 참여한 어떤 청년에게 수를 놓은 여동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동생은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수를 놓았으나, 청년은 초연하게 ‘승리가 아니면 심각하지 않는 부상을’로 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링컨은 이렇게 (타인에 의한 혹은 스스로) 자기영웅화라는 어리석은 길로 들어서지 않았던 겁니다. 또 노예해방선언 후에 길을 가다가 만난 흑인들이 ‘구세주’라고 말하고 경배하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것을 말리며 자신은 ‘그 분의 손에 들린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순하게 선언한 것도 자기 영웅화라는 우상숭배에 스스로가 빠지지 않는 능력을 가졌던 사람인 것을 보여줍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의회에서 링컨의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구두장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된다는 악한 말로 훈수 두는 의원이 있었습니다. 링컨은 누구보다도 구두를 잘 만들고 고치는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여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아버지를 잘 배우지 못해서 구두를 만드는 일이나 고치는 일에 아버지처럼 잘하지 못하지만, 의원들이 만약 구두수선을 자기에게 의뢰하면 잘 고쳐주겠다고 한 겁니다. 그 때 링컨이 한 반응은 이런 건강한 자기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5) 아! 비참한 인간의 삶은 / 짧고도 슬픔으로 가득하도다 / 인생은 연약한 꽃과도 같아서 / 태양이 뜨면 봉우리를 펼치고 저녁이면 져버리는구나 / 인간은 빈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왔다 가며 / 인간의 일생은 다만 어느 겨울날과 같도다.
6) 남부와 북부 모두 전쟁할 때에 하나님께 자신의 편에 서달라고 기도했지만, 링컨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편에 서도록 가르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실은 그가 얼마나 자기부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리는 자기중심적 기도에서 벗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7) 남북전쟁 당시 노예의 자본가치는 미국의 1년 GDP에 해당하는 것으로, 영국이 노예제 폐지당시(1833) GDP의 1/3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습니다. 그래서 노예제를 포기하기로 작정하는 것은 엄청난 재정손실의 부담을 오랫동안 지기로 각오하는 일입니다. 또 남북전쟁으로 사망한 군인은 60만 여명이었는데, 이는 그 이후 21세기 지금까지 사망한 미군의 숫자보다 많습니다.
8) 이 취임식에 참여한 이들은 정치적 차원을 넘어서 종교적 차원에까지 도달한 링컨의 이 정치연설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습니다 : “인간의 연설 중 가장 고결한 금과 같은, 아니 거의 신성에 도달한 연설이었다”(옥스포드 대학 총장 커즌 백작),“그것은 마치 신성한 시와 같았다. 어떠한 통치자도 국민들에게 이러한 연설을 하지 못했다. 미국 역사상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말한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칼 슈르츠).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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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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