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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7)1)링컨의 제16대 대통령 (재)취임연설(2)

2021년 2월호(13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2. 2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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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7]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7)1)
링컨의 제16대 대통령 (재)취임연설(2)

 

“대한민국은 OOO대통령님의 보유국입니다”
올해의 서울시장 선거를 위해 후보에 올라간 사람 중 하나가 최근에 했던,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정신나간 발언입니다. 이런 아부성 발언을 대놓고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사람과 한 하늘 아래 같이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류의 인물들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섰던, 전 세계인이 존경하는 인물인 에이브러험 링컨을 150여년 전에 배출한 미국이 정말 부럽기만 합니다. 물론 미국은 이민자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항상 ‘미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고, 현재도 46대 대통령선거로 심각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링컨과 함께 치열하게 고통하며 이루어 놓은 찬란한 역사는 엄청난 저력이 되어 저들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 지구인 모두는 본격적으로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할 우주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링컨을 단지 미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서 받아들인다면 - 링컨 자신은 세상의 좋은 선례를 보여야 할 미국이라는 점을 늘 의식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링컨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것이 될 겁니다 - 그는 인류 모두에게 역사적 영감을 주는 ‘큰 바위 얼굴’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는 지난 호부터 말과 행동이 철저하게 일치했던 사람, 링컨의 가장 중요한 연설인 재취임연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연설의 중추는 바로 링컨이 늘 옆에 두고 깊이 공부하고 명상했으며 자유자재로 인용했던 성경이었다는 겁니다. 정치의 다양한 차원과 측면에 적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진리를 성경의 적재적소에서 뽑아내는 능력은 평생동안 성경을 전공한 학자들이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일 겁니다. 성경을 단지 형식적으로 인용하는 20~21세기 미국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성경의 내용으로 최고의 신학자들과 토론하여도 절대로 밀리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시 될 정도로 성경에 깊이 침잠해 들어갔던 사람이 링컨입니다.
또 극도로 다가오는 혼란과 심리적 중압감을 이겨내는 능력이 단지 링컨이라는 인간 안에 내재한 것이라면, 동양인들이 흔히 이런 인물들을 신격화하듯 하는 것이 정당할 것입니다.2) 그렇지만 그는 자기를 영웅화하려는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빈정거렸으며,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하였고, 의연함 가운데 순교할 각오를 늘 마음에 지니고 다닌 인물이었습니다. 링컨은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창조주 아래 있는 피조물의 한 사람으로 정초(定礎, 사물의 기초를 잡아 정함)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더 존경하고 인간으로서의 위상도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또 링컨은 말/글과 행동이 철저하게 일치되는 놀라운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고의 연설을 말로서 전달한 것뿐 아니라, 최고에 이른 개인적인 삶과 자신의 전문영역인 정치에 있어서 그 철학적 기반에 있어서나 적용된 구체적 정치행위에 있어서도 최고에 이른 결정들을 실행했습니다. 우리는 링컨이 행한 이 최고로 위대한 연설이 얼마나 성경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는 지를 이미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

1) 인생관/노동관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세기 3:19)
2) 건강한 비평적 삶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3) 역사진행 원리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누가복음 17:1 = 마태복음 18:7)  


우리는 이것에 이어서 세 성경 본문들과, 링컨이 성경의 전체 내용을 깊이 명상한 가운데 직접 작성하여 서랍 속에 깊이 간직하였다가 순교 이후에 발견된 ‘신의 뜻에 대한 명상’(Meditations on the Divine Will)을 통해서 그의 정치적 본질을 다루고자 합니다.

4) 종교와 정치의 연관성에 대하여 성경을 인용하였습니다 :
시편 19:9(“여호와의 심판은 다 진실하며 의로우니 

the judge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먼저 링컨이 인용한 시편 19:9 자체를 봅시다. 그가 읽은 성경은 KJV(King James Version 1611)이었고, 히브리어 원어인 ‘미쉬파팀’mishpatim을 ‘하나님의 심판들’judgements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이 번역은 현대의 번역들(NIV, 한글성경 ‘하나님의 규례들’ ‘decrees’)보다 훨씬 더 정확합니다. 물론 이 원어를 ‘법률’, ‘규례’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히브리 시의 원리인 평행법parallelism을 따라서, 바로 앞 문장에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도,道)’과 평행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을 ‘법 자체’로 보기보다, 그 법이 만들어낸 결과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들’로 보아야 문맥이 훨씬 더 정교해집니다.
링컨은 이 성경의 진리를 따라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들은 모두 진실하고 의롭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고, 이 진리를 자기 시대의 참혹한 현실인 남북전쟁에 적용했습니다. 그는 먼저 참혹한 전쟁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은 대체 ‘어떤 속성’을 가진 분이길래 역사는 이렇게 돌아가는가를 ‘수사적으로’rhetorically 물었습니다.3) 이어서 그가 내어놓은 답변은 모두를 전율하게 만드는 섬뜩한 선포였습니다 :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것은 전쟁의 이 거대한 상처가 빨리 아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노예들이 지난 250년 동안 흘렸던 땀방울을 보상하지 않은 가운데 쌓아놓은 모든 부가 흙속에 궁극적으로 가라앉아 사라지며, 채찍에 맞아 흘렸던 모든 노예들의 핏방울들 하나하나가 전쟁의 칼날에 의해서 그 대가가 (백인들에게 충분히) 치러져야 할 것입니다.”4)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그는 먼저 영국이 북아메리카를 정복할 때부터 즉각 시작된 노예제도는 벌써 250여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비겁하게 침묵하는 진실을 밝은 햇빛 아래 드러냅니다. 그리고 북미에서 백인들이 누리는 부의 많은 부분이, 이미 인용했던 개개인이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진리(창세기 3:19)를 거역하여 흑인들을 보상해 주는 것 없이 착취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즉 바로 이렇게 오랫동안 누적된 엄청난 불의가 바로 60만명이나 죽는 이 비참한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물론 이 말을 할 때에 남측(연맹)과 북측(연방)을 매우 균형있게 다루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 “같은 성경을 읽으며, 같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각각 상대방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으려고 간구했다”고 합니다.5) 하지만 링컨은 ‘정치적 균형이라는 타협’을 이루기 위해 ‘철학적,신학적 원리’까지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남측을 향해 다음과 같이 비난의 화살을 쏩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흘린 땀으로부터 자신들의 빵을 쥐어짜내는 것을 위하여 감히 공의로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할 것입니다.6) 그렇지만,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상대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절제하는 링컨 특유의 균형잡기로 돌아가기 위해 성경(마태복음 7:1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을 인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남측(연맹)뿐 아니라 북측(연방) 모두를 포함하는 미국인 전체와 미국 역사 전체를 다루어야 할 결정적 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균형을 고려할 필요없이 그가 성경을 근거로 한 역사진행원리와 정치철학의 기초 위에서, 그의 전형인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충격적인 언어의 칼을 벼려서 과감히 돌진하여, 듣는 청중의 가슴 정중앙을 찔러 정복해 버렸습니다 :

“노예들이 지난 250년 동안 흘렸던 땀방울을 보상하지 않은 가운데 쌓아놓은 모든 부가 흙속에 궁극적으로 가라앉아 사라지며, 채찍에 맞아 흘렸던 모든 노예들의 핏방울들 하나하나가 전쟁의 칼날에 의해서 그 대가가(백인들에게 충분히) 치러져야 할 것입니다.“

즉 전쟁이 거의 끝나가기는 하지만, 얼마나 피가 더 흘려져야 하나님의 공의가 언제 만족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할 존재가 인간임을 선포한 겁니다. 이어서 그는 우리가 앞에서 설명한 시편 본문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자고 호소합니다 :

“삼천 년 전(인 다윗과 솔로몬의 시절)에 말했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다 진실하며 모두 의롭다고(역사의 현재를 사는 우리도) 말해야 합니다(시편 19:9).”7)

만약 링컨 이후 한 세기 지난 인물들인 히틀러,스탈린,모택동,김일성이 벌인, 더 잔혹하고 끔직한 악에 대해서도 링컨은 동일하게 말할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즉 그 어떤 인간이 벌인 그 어떤 참혹한 역사라도, 그것에 대해 이 악한 지도자들만 책임 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행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진실하고 공의롭다고 말입니다. 토인비와 같은 이들이 말하듯이,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매우 피상적이고 무책임하고 일차원적 등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윤리와 종교의 문제이며, 그 윤리적 행위에 대한 심판은 창조주이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인간은 누구나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5) 자비(사랑)와 공의의 하나님을 닮아 자비(사랑)와 공의를 베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성경적 관점을 적용합니다:  
시편 147: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흔히 링컨의 철학,신학을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그는 ‘공의의 하나님’(잘못 해석되어 구약의 하나님)만 믿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자비의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식이지요.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많은 사람에 대해 무한히 용서하고 엄청나게 자비로웠던 링컨의 삶을 개인 인품의 탁월성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신과 절대종교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신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영웅화하고 높이는 일에 익숙한 많은 동양인들이 하는 버릇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링컨은 누가 자기의 인품을 그렇게 높은 것으로 해석한다면, 매우 분노했을 것이며, 인간은 그런 칭찬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벼락처럼 호통쳤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영역이, 매번 예수를 언급하며 그를 선포해야 하는 단순하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설교,전도,신학계가 아니라, 가장 더러운 똥물이 흐르는 정치계이며 그 속에서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보인 예수의 삶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선명히 자각했습니다. 이런 사악한 정치판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을 빌미로 링컨을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높여주고 대신에 그에게서 마구잡이식의 자비와 용서를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링컨은, 자기에게 아주 개인적 사정을 부탁하러 백악관 문을 두드리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매정하게 내칠 수가 없는, 정말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제발 대통령 일에만 몰두하세요”라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만나는 이유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며, 또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할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균형을 매우 잘 잡아야 했고, 이 똥물 속에서는 자비,사랑보다는 공의,정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자각한 가운데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남북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에 대한 모든 공의로운 판단을 끝낸 후에는 자비의 말로 위로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의와 자비의 균형을 잃지 않는, 매우 운율적인 말로 연설을 마무리해 나갔습니다 :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악하게 대하지 말며(보복하지 말며),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용서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의를 보여 주는 대로 정의를 행하면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을 마무리하며 나라의 상처를 싸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합시다”8) 

즉 링컨이 믿었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자비와 공의(헤세드 버-에메트chesed we-emet)의 하나님’이었고, 이것은 구약성경이 신약성경과 함께 선언하는 근본적 진리였습니다. 

6) 사회적 약자(고아,과부,전상자)를 보살피라는 성경을 적용합니다 :
야고보서 1:27을 비롯한 성경 전반의 과부,고아에 대한 인간적 도움 베품 
이어서 그는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전사자,전상자와 과부와 고아’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9) 만약 링컨이 순교당하지 않고 살아서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했다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즉각 행동으로 옮겨 구체적 도움의 손길을 이들에게 베풀었을 겁니다. 남측,북측 상관없이 말입니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힘겹게 얻은 평화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들에서 ‘의롭고 항구적이 되도록 노력하며 소중히 가꾸어갈 것’을 촉구하고 연설을 마무리합니다.10) 링컨은 늘 그랬듯이 당시에 미국이 민주주의가 처음 시행되는 나라이며, 전 세계가 미국을 바라보고 있고 미국의 사례를 따라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7) 신학-정치적 명상문 작성 :
‘신의 뜻에 대한 명상’ Meditations on the Divine Will
링컨은 이 재취임연설에 모든 정치적 사활을 걸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다른 연설과는 달리 이 실천적 연설을 하기 전에 원리적 논문에 해당하는 ‘신의 뜻에 대한 명상'(Meditations on the Divine Will)을 미리 적어놓고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혼자만의 내적 골방에 들어가서 성경을 사용하여 깊은 신학적 명상을 한 후에 드디어 큰 확신에 도달해 이 신학적 논문과 유사한 것을 적었고, 이 기초 위에 세상 앞에 드러나는 정치연설을 작성했던 것입니다. 이 논문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던 겁니다. 이 논문은 결론 비슷한 것을 먼저 장대하게 선언하고 출발합니다 :

“하나님의 뜻은 (결국) 편만하리라(성취되리라).” The Will of God prevails  
     
링컨 자신이 내적으로 가졌던 이 선언은 똥통같은 세속적 정치계를 향해 날리는 포탄같은 공적 신앙고백이고, 역사진행의 원리를 선포하는 행위이며, 근본적으로는 역사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어서 그는 매우 확신에 찬, 그러나 치밀한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

“하나님의 뜻은 (결국) 편만하리라(성취되리라). 치열하게 서로 싸우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자 모두 틀렸든지, 아니면 적어도 한쪽은 잘못되었다. 하나님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사항에 대해, 동시에 찬성하고 반대하실 수는 없다. 현재의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양 당사자의 목적과는 어떤 면에서 다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간 각자가 독자적으로 하는 행동 자체는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영향을 미치도록 가장 적합하게 적용(사용)되는 도구이다.”11)

링컨 자신이 비록 북측(연방)에 속했지만 결코 남측(연맹)과 북측을 평가하는데 균형을 잃지 않았던 이 논문의 결론은, 링컨의 연설에는 그대로지만 조금 절제되어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학적 논문은 공적 연설보다는 인간 당사자들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이 다를 가능성이 큰 것을 더 선명하게 말합니다.
정치연설에서는 포함될 수 없고 신학적 논문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목이 바로 그 다음에 보입니다. 즉 인간 양당사자가 하는 행동은 그것이 선이건 악이건 간에 모두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가진 목적을 위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적합하게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겁니다. 악이 아무리 거대하고, 또 아무리 오래갈 것 같고, 또 그것 때문에 선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래 가진다 할지라도, 그 모든 악의 득세와 선의 고통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효과적 도구라는 것입니다. 개인과 집단과 역사가 쌓아놓은 모든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혹은 선에 대한 하나님의 미루어진 보상은 궁극적으로는 이루어질 것을 링컨은 확신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우주의 역사를 완벽하게 당신의 뜻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졌던 겁니다. 그 뜻 안에는 극단적으로 성행하는 악과 아주 미미하게 연명되는 선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용해될 것이며, 인간은 단지 그런 장엄한 사실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한 사람이 링컨이었습니다.


1) 우리는 비록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류에 놀라운 공헌을 남겼던 위대한 리더들이 가졌던 내면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중후반은 한반도,한민족이 전세계의 지도자가 될 기회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우리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일을 할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할 때입니다. ‘내면세계’란 단순히 감정,느낌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1) 깊은 지혜로 무장된 순수한 종교적 확신, (2) 높은 윤리적 기준, (3) 고상한 사회정치적 이상, (4) 그런 것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내는 지혜와 인내, (5) 많은 사람과 맺고 발전시켰던 건강한 관계들, (6) (나쁘거나 좋은) 가족적,육체적 DNA,습관,역사들을 극복하고 발전시키는 능력들을 말합니다.
2) 예를 들면 중국인들은 관우를 희안하게도 재물신으로 삼고 숭배하며,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쓰시마해전)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을 존경하지만 신으로 모시지 않는 전통이 있습니다.
3) Shall we discern therein any departure from those divine attributes which the believers in a living God always ascribe to Him?<우리는 이(노예제도라는 악을 폐지하기 위해 60만명이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살아있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라면 그 분에게 돌려드려야 할 속성에서부터 어떤 출발점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4) Fondly do we hope, fervently do we pray, that this mighty scourge of war may speedly pass away. Yet, if God willsthat it continue until all the wealth piled by the bondsman's two hundred and fifty years of unrequited toil to sunk, and until every drop of blood drawn with the lash shall be paid by another drawn with the sword.
5) Both read the same Bible, and pray to the same God, and each invokes His aid against the other.
6) It may seem strange that any men should dare to ask a just God's assistance in wringing their bread from the sweat of other men's face.
7) so still it must be sai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8)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9) 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
10) 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ing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11) The will of God prevails - In great contests each party claims to act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God. Both may be, and one must be wrong. God cannot be for, and against the same thing at the same time. In the present civil war it is quite possible that God's purpose is somewhat different from the purpose of either party-and yet the human instrumentalities, working just as they do, are of the best adaptation to effect this.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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