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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게 아름답기에 더 위험한 종소리의 향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021년 8월호(14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8. 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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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 2]

황홀하게 아름답기에 더 위험한 종소리의 향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중의 하나(저의 클래식 최애곡이기도 하지요)로서, AI가 선정한 최고로 혁신적인 클래식 작곡가가 지은 곡을 아시나요? 이미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 곡이 종소리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건 잘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이 곡을 들을 때도 과연 그럴까요? 라흐마니노프가 종소리를 모티브로 한 여러 작품을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여러 종소리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들은 순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온통 종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러시아 정교회 종의 특이함
그런데 종소리라고 해서, 우리가 잘 아는 보신각(동양)의 종이나, 성당(로마교)의 종이 내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작곡가가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한 종소리는 러시아 정교회의 종소리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종은 동양의 종뿐 아니라 서양의 종과도 다릅니다. 동양의 종은 보통 밖에서 때려 소리를 내고, 서양의 종은 안에 추를 달아 안쪽을 때려 소리를 냅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방식의 종을 교회에서 사용해 왔는데, 종교개혁 이후에는 외적 형식에 관심이 많은 로마교에서 더 활발하게 활용해 왔습니다. 같은 기독교라도 로마교(서방교)에서는 주로 큰 종을 한두 개 달아 사용한 데 비해, 동방(비잔틴)(정)교(회)는 종을 서너 개를 달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동방교의 종소리를 처음 들으면 약간은 경박스럽다는 느낌마저 들 수 있습니다. 10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플에 기반을 둔 비잔틴 정교회를 받아들인 러시아는 동방교회의 종을 이어받으면서 뭐든지 크고 화려하게 만들려는 러시아적 전통을 덧붙여서 종의 개수를 많이 늘렸습니다. 그래서 보통 7개 이상의 종을 사용하는데, 종을 치는 방식도 아주 독특하게 발전되었습니다. 화음보다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각각의 종을 따로, 그리고 신속하게 치도록 합니다. 이를 위해 종 안에 있는 추에 줄을 묶어 어느 정도 팽팽하게 고정한 상태에서 손과 다리를 이용해 그 줄을 눌렀다가 풀어주는 방식으로 종을 칩니다. 그래서 이 종들을 치는 사람은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이리저리 누르는 것 같은 동작을 합니다. 그런데 정교회에서 두들겨대는 종과, 여러 옥타브의 광활한 현들을 두들기는 피아노는 모두 일종의 타악기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아름답게 기억했던 것이 정교회의 종소리였습니다. 그는 종을 치는 사람들은 예술가와 같다고 회상했는데, 다양한 리듬의 소리를 능숙한 몸짓으로 만들어내는 종 치는 사람이야말로 미래의 작곡가에게는 연주자처럼 보였던 겁니다. 그러기에 그가 여러 작품에서 종소리를 피아노로 아름답게 담아내는 작업을 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종을 치는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된 겁니다. 하지만 이런 형식에 풍성하고 깊은 내용을 품을 그릇이 되게 할 자극제가 필요했는데, 위대한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의 전환점마다 늘 등장했던, 그가 경험한 쓰디쓴 실패와 좌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위로와 회복을 갈구하는 아름다운 종소리의 향연
피아노협주곡 2번의 1악장은 음울하면서도 장중한 피아노 소리로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크렘린 궁전의 종소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작곡 당시 그가 겪었던 정신적 방황을 다음과 같이 가상적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
‘뭐, 내 작품이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같다고!’, ‘지옥에 있는 음악원 동료들이나 환영할 만한 작품이라고!’ 침대 옆 낡은 책상 앞에 라흐마니노프는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습니다. 벌써 두 해가 지난 일인데도 세자르 큐이(Csar Cui)가 내렸던 혹독한 비평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음악가였으니 신참자로서 이런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게다가 약혼녀 나탈리아 사티나가 사촌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정교회와 사티나의 가족 때문에 그는 우울함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 멀리 크렘린 궁전 안에 있는 정교회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종소리와 함께 안으로 묻어두었던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교향곡 1번의 실패와 결혼 반대의 벽에 부딪혀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던 라흐마니노프는 드디어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최면치료를 통해 한 곡을 작곡함으로 완벽한 재기에 성공합니다. 바로 <피아노협주곡 2번>입니다. 이 곡 안에는 그가 겪었던 번민과 고통의 몸부림, 마침내 이룬 치유의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각각의 감정에 맞는 매력적인 종소리들을 통해 말이지요. 그러기에 1악장의 모든 것이 찢겨 나갈 것 같은 격정의 순간, 모든 이들이 사랑하는 2악장 후반부 환희의 순간, 3악장의 눈부시게 화려한 기쁨의 순간, 이 모두에서 우리는 피아노로 아름답게 승화된 다양하게 변용된 종소리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곡 전체가 종소리의 향연인 셈이지요!


러시아인의 정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정교회의 종소리
종소리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이 작품의 특징은, 라흐마니노프의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러시아인 전체의 정체성이 될 정도로 정교회와 정교회의 종소리에 대한 향수입니다. 러시아인은 정교회 속에서 태어나 정교회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습니다. 적어도 100년 전에는 말입니다. 신자가 아닌 러시아인들도 죽음을 정교회에서 맞고 싶어했을 정도이니까요. 그리고 정교회의 종소리는 러시아인들의 중요한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엄청난 고통을 안긴 공산당 통치 이전인 100년 전에는 말입니다. 그래서 종소리는 러시아인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정서적 안식처라 할 수 있습니다. 종소리가 문학으로 승화된 것으로는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가인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의 소설《주교》에서 주인공이 종소리를 통해 어린 날의 추억과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장면을 들 수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벵글러(Oswald Spengler)는 러시아의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러시아적 혼’의 근원적 상징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정교회 예배에 나갔고, 특히 방황하는 청소년 시기에 외할머니를 따라 정교회에 나가 위로를 받았던 라흐마니노프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종소리를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담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후기 낭만주의의 최후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것이지요.

영혼과 시대를 깨우지 못한, 아름답지만 무능한 정교회의 종소리
하지만 러시아인이 사랑하는 정교회가 러시아에 들어오고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모체가 되었던 키에프를 중심으로 하는 루시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비잔틴정교회를 받아들였는데(AD 988), 그가 접한 많은 종교들 중에서 비잔틴 정교회를 선택한 이유가 매우 특이합니다. 그는 종교가 가진 본질과 진정성을 판정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비잔틴정교회의 의식과 예술의 화려함, 장중함, 아름다움에 반했으며 이 아름다움 속에 반드시 신이 있을 거라 믿었던 겁니다. 그 이후 러시아인의‘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특이한 집착’은 교회 공간이나 예식에서 화려함과 신비감을 감각적,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비잔틴정교회의 전통을 이어나갈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더더구나 비잔틴정교회의 근본이었던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이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점령당한 이후(1453), 러시아정교회가 비잔틴정교회보다 종의 개수를 늘려서 더 화려하고 다양한 소리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러시아정교회의 감각적, 감정적 화려함의 특징은 극한의 자연환경과 잦은 외부의 침략으로 고통당하던 러시아인들에게 현실을 잊고 도피하거나 위로하는 통로로 적합했던 겁니다. 황제(정치)에 복종하여 시녀처럼 섬기는 비잔틴정교회(종교)의 전통이 러시아정교회에도 이어져서, 교회는 황제나 사회가 어떤 악행을 하더라도 그것을 예언자처럼 호통 치며 사회와 역사를 고치는 전통을 상실해갔습니다. 특히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표토르 대제에 의해서 교회는 차르에게 완전히 종속당해 독립성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시대와 역사를 깨워야 할 사명을 상실한 교회는 오히려 영혼의 아편처럼 되어 현실에서 초월(탈피)하게 하여 사회와 지도자들의 악에 침묵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과 동조하기까지 한 겁니다. 결국, 이 곡이 노래한 아름다운 종소리는 얼마 되지 않아 공산당 혁명(1917)의 대포 소리에 파묻혔고, 러시아가 지금도 자랑하는 아름다운(‘붉은’과 동의어) 모스크바 광장은 무려 70년 동안 붉은 피가 가득한 죽음과 고통의 광장이 된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악이 처한 지독한 (정치)현실을 말한다면, 황홀할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종소리의 향연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감상하는 게 약간은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음악의 아름다움과 역사 현실의 차가움, 역겨움이 공존하니까요. 물론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의지로서 21세기 현재 AI도 인정할 정도로 확고한 자신의 스타일과 창조성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라흐마니노프가 화려하게 재해석한, 러시아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러시아정교회 종소리를, 우리 역시 들으면서 음악적 환상에만 빠지고 사회와 역사의 메스껍고 차가운 현실을 외면한다면, 이 곡은 우리에게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곡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일부였던 소련이 동조 내지 선동(한국동란)한, 또 반만년의 외세의 침투로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진하게 가질 뿐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한, 주위의 초강대국들이 일으키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항구적으로 헤치면서 살아야 할 우리를 몽롱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런 교훈을 주기도 하지 않나요? ‘아름다움은 위험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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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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