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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지음’을 찾아서

2021년 8월호(14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8.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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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33]

내 인생의 ‘지음’을 찾아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성공에는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가장 기본은 본인의 실력이겠지만 그 외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역량을 이끌어 내 줄 지인, 선배, 어른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혼자 능력이 출중해도 팀플레이인 조직 사회에서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아군이 없다면 성공에 이르기는 어려워진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와의 고사에서 비롯된 성어 중에‘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연주를 하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는 구나”라고 말해주었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라고 감탄해주었다.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좋아해 주던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종자기 만큼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득 예술계에도 자신의 능력을 이끌어내 주는 예술가와 뮤즈의 조합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유명 예술인이 남자여서 그 예술가의 애인, 배우자들을 일컬을 때‘뮤즈’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넓게 보면 그 뮤즈들은 예술가들의 ‘지음’이 아니었을까?


강북의 고즈넉한 동네 부암동에 가면 ‘환기미술관’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추상미술의 대가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모여 있는 이 미술관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뚫고 방문해 보면 김환기 작가의 감동적인 작품들을 만나 영혼까지 시원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곳에는 김환기 화백의 그림 뿐 만 아니라 서적, 사진,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김환기 화백의 지음은 다름 아닌 그의 부인 ‘김향안’ 여사였다. 시인 이상의 부인이었다가 후에 김환기 화백과 재혼한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화백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존중하고 그 내면에 있는 영감을 불러일으켜 최고의 추상화를 남기게 했던 일등 공신이다.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묻어나는 편지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난다.


또 떠오른 커플은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과 ‘로뎅’이다.
그 당시 알프레드 부쉐라는 조각가는 까미유 끌로델을 당대 최고의 조각가 로뎅에게 조수로서 소개해 주었다. 까미유 끌로델의 나이 20살, 로뎅의 나이 43살의 일이다. 그들은 조각에 대한 열정과 영감을 공유하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연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그 때 로뎅의 곁에는 30년간 그의 곁을 지켜왔던 로즈 베레라는 여자가 있었다. 사실 까미유 끌로델은 로뎅의 조수로 들어가긴 했지만 떠오르는 신예 조각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젊은 여성 예술가였다. 그런 까미유 끌로델의 매력은 로뎅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자신의 수제자이자 아름다운 연인이지만 조각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같은 작가로서 질투를 느끼게 할 만큼 창의적인 작품과 젊음의 소유자인 그녀를 아마도 로뎅은 사랑하면서도 질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로뎅과 까미유의 관계는 예술적 역량에 대한 질투와 애증이 섞인 관계였던 것 같다. 로뎅은 작가로서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까미유 끌로델과 나누며 부딪히다가 결국엔 자신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로즈 베레를 택한 것이다. 
로뎅은 까미유 끌로델을 버리고 로즈 베레에게로 가 버리고 까미유는 실연의 아픔을 창작에 쏟아 부어 로뎅 못지않은 역작을 많이 남겼다. 까미유 끌로델의‘중년’이라는 작품은 자신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로뎅의 방해로 까미유 끌로델은 더 이상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고 작업실에 은둔자로 남게 된다. 결국 편집증이 재발한 까미유 끌로델은 30년간 정신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까미유 끌로델은 로뎅에 의해 발굴되었고 로뎅의 영향으로 좋은 작품도 남겼지만 그에 의해 폭망한 케이스라 할 것이다. 지음을 잘못 만난 케이스랄까. 예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중요하다.


돌이켜 보면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면서 인간관계를 확장해왔던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엔 예전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대면이 차단되어 만날 수도 없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도 없는 시대다. 이런 때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한 신박한 정리를 한번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는 나의 지음은 어디에 있을지, 나는 누구의 지음이었던 적은 있는지 찬찬히 돌아볼 때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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