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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캘리그라피’를 그립니다.

2021년 9월호(14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9. 1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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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캘리그라피’를 그립니다.

 

아버지는 글자체가 아주 반듯했습니다. 누구나 잘 쓴다고 감탄을 했으니까요. 특별히 정성을 들여서 쓴 글씨가 아닌데도 글씨체는 힘이 있고 가지런했습니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붓글씨나 펜글씨를 따로 배우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다만 늘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진 덕분에 좋은 필체를 가지게 된 듯 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좋은 필체로 손 편지를 자주 쓰기도 하셨죠. 가족과 친척들에게 가끔 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집을 떠나온 딸을 걱정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 주셨지만, 아버지의 편지에 직접 손 편지로 답장을 해 드린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전화로 편지를 잘 받았다고만 했던 적이 더 많았으니까요. 글로나 말로나 정성스런 답변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늦은 후회를 합니다. 아버지의 좋은 글씨체를 보면서 살아온 것이 내게는 글씨를 잘 써야 한다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씨를 반듯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글씨를 잘 쓰려면 붓글씨를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듯했습니다. 글씨체만 멋있는 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붓글씨를 배우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10여 년 전부터 붓글씨 연습을 하게 되었죠. 시작은 했지만 무엇보다 붓글씨를 꾸준히 쓰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같은 크기의 글씨를 일정하게 쓰는 전통붓글씨를 연습 하는 것이기에 조금 쓰다 보면 지치기 일쑤였으니까요. 전통 붓글씨를 쓰는 것에 조금 재미가 없어질 즈음, 중학생이었던 딸 유진이가 학교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운다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써 주신 글을 집에 들고 왔더군요. 선생님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캘리그라피 작품이 주는 생동감에 저는 그만 놀랐습니다. 당장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캘리그라피를 배우게 되었죠. 다양한 글씨체로 글자와 문장이 그림 그리듯 새롭게 디자인화 되더군요. 글씨의 크기, 굵기, 기울기도 달랐습니다. 늘 ‘정신도 똑바로’, ‘글씨도 똑바로’라며 배워왔는데 그것에 모두 변화를 주어야만 했습니다. 한 단어의 글씨지만 크기부터 좀 다르게 하려 해도 똑같이 써지더군요. 굵기와 기울기에 아무리 변화를 주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습관을 들여온 글씨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알았습니다. 차라리 왼손으로 쓰면 좀 고쳐질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무엇보다 글씨는 사고와 습관이 모두 합쳐진 것임을 알았습니다. 손으로 연습만 한다고 마음대로 써지는 것도 아니고, 굳어진 사고와 손의 경직을 다 풀어내야 글씨체를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요.


요즘 붓글씨를 쓴다고 책상 가득 문방사우를 펼쳐 놓고 살고 있습니다.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쓰려고 준비를 해 두었죠. 책상 위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조카는 내가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하더군요. 비단 이런 겉모습만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시대에 조금은 거슬러서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곤 했는데, 조카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전통적인 붓글씨 보다 캘리그라피를 쓰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붓글씨에도 다양한 서체가 있어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캘리그라피의 예술성에 더 끌리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이 굳어지는 것을 캘리그라피 연습을 통해서라도 더디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각을 세우면서 반듯반듯하게만 살기보다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예술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캘리그라피 작품처럼 말이죠. 

 

한옥 유진하우스 대표 김영연
yykim6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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