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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 여자 도공 백파선(百婆仙)을 이어 21세기 현대판 백파선을 꿈꾸는 ‘이혜경’대표를 만나다

2021년 11월호(14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3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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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17세기 조선 여자 도공 백파선(百婆仙)을 이어 21세기 현대판 백파선을 꿈꾸는 ‘이혜경’ 대표를 만나다

 

 

여군 장교의 꿈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저는 고2 때까지 여군 장교가 되는 꿈을 가졌어요. 국군의 날 행사 때 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군사관학교의 문은 84학번이자 여자인 제게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죠. 제가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이 길로 가면 당시만 해도 어려웠던 해외로 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주위에서는 여자가 무슨 정치외교냐, 게다가 서울까지 보내 공부를 시키느냐는 등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남자,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냐며 본인이 하면 된다고 저를 기꺼이 서울로 유학 보내셨죠.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 딸의 열심당 젊은 엄마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 1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논문 학기에 외교안보연구원, 지금의 국립외교원 계약직 연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일본어 공부도 하고 국제교류재단을 통해 일본에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자 남편은 아이는 엄마가 직접 키웠으면 좋겠다며 저를 설득했죠. 고민 끝에 1995년 직장을 그만두고 10여 년 육아에 집중하며 세 딸을 키웠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인 저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2000년, 서울 중구에 터를 잡은 후 성당에서의 봉사활동, 학교 녹색어머니회, 유치원, 아파트 주부 모임, 대학 동창회 간사 등까지 세 딸을 데리고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구의원, 시의원으로의 활동
2006년, 이런 저를 눈여겨보고 있던 한 정당 관계자가 남편에게 저를 구의원에 추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어요. “우리는 돈도, 빽도 없고, 정치는 더더구나 모른다.”라며 저와 남편은 이구동성으로 사양했죠. 하지만 그 당시 법이 바뀌어 의원직이 연봉제가 되고, 본인의 노력만 있으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선거를 치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약간의 선거비용까지 보조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순진하게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결심했죠. 세 딸도 8세 전후로 어느 정도 컸기에 남편도 허락했고요. 
정치학을 전공한 중구 최초 여성 구의원, 딸 셋의 엄마라는 것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던 저는 최저 예산으로 선거운동을 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중구의회 5~6대 구의원, 서울시의원을 역임하며 총 1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어요. 덕분에 당을 떠나 동료들에게 제가 하는 일은 없는 예산이라도 만들어해줘야 한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었죠. 

 

조선 도공 백파선, 나의 운명
정치인에서 갑자기 백파선을 이야기하니 생뚱맞아 보이지만, 저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2015년 일본 백파선 갤러리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구보타 히토시 관장이 한국에 오셨어요. 그 당시는 제가 무척 바쁠 때라 만남을 계속 이어가지는 못했죠. 2018년 6월 의정활동 임기를 마치고, 역사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어떤 분이 제가 백파선과 어울리는 것 같다며 전에 만났던 그분들을 그 똑같은 장소에서 소개해주셨어요. 그분들이 저에게 함께 백파선을 연구해보자고 하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던 중 30년 전 일본 나가사키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 여행하며 아리타에서 만든 접시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혹시 이때 백파선 할머니가 내가 이 일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 지켜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 3년 동안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백파선은 나의 운명’이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렇다면 ‘백파선’은 누구?
백파선(百婆仙)에 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해 실제로 묘비에 새겨진 글귀와 당시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 몇 가지 유물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백파선은 1623년 김해 출신 조선 도공이던 ‘김태도’(金泰道)의 미망인입니다. 백파선(百婆仙)은 한자 그대로 머리가 하얀 할머니라는 뜻인데, 정확한 본명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자기의 어머니’로 칭송을 받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지요. 정유재란 때 도공이던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 정착한 곳이 다케오(武雄市)의 광복사(廣福寺) 인근이라고 합니다.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백파선 일가가 도자기를 굽던 고도우게(陶藝)가마터, 남편이 66세 세상을 떠나고 영주의 허락을 받아 아리타 히에고바(有田町稗古場)로 이주했던 기록, 그리고 후손들이 세워둔 법당과 묘비가 있을 뿐입니다. 96세 세상을 뜬 백파선은 남편 없이 30여 년 이상 수많은 도공을 이끌며 삶을 살아냈습니다.

리더로서의 백파선
조선에서는 천한 도공의 이름 없는 아내로, 그리고 설사 재능이 있어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포로로 끌려간 일본에서 남편과 같이 도자기를 굽고 배우며 한 명의 당당한 예술가로 살아갔죠. 그리고 남편이 죽은 후, 도공과 일족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로 옮긴 후, 약 30년 동안 여성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가정집 이사도 아니고, 수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새로운 지역에서 가마터를 지으며 당당히 정착에 성공한 여성 리더의 모습을 말이죠. 조선에서는 도자기를 빚기 위해 처음 흙을 만지는 것부터 굽는 것까지 혼자 다 하지만, 백파선은 분업을 시도했습니다. 흙 만지는 사람, 빚는 사람, 초벌구이, 그림 그리는 사람, 유약 바르는 사람 등을 나눈 것이죠. 16세기 일본에서 도자기는 지금의 반도체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세력이 약해지자, 유럽은 청의 도자기를 가져갈 수 없어 대신 일본 도자기를 많이 수입하게 됩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큐슈(九州), 가고시마(鹿児島), 나가사키(長崎)등에 엄청난 가마가 만들어졌죠. 다 조선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도자기를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에 수출했으니, 조선인들이 일본 경제부흥의 역군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중에 이삼평(李參平)과 심수관 (沈壽官)이 조선의 도자기 공으로 워낙 유명해, 상대적으로 백파선(百婆仙)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백파선 역사문화아카데미’를 만들다
그동안 백파선과 관련된 연구와 활동들이 있었지만, 이것을 공적인 차원에서 진행하기 위해 제안서를 들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여러 행사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공부가 선행되어야겠다고 생각해 2018년 ‘백파선 역사문화아카데미’를 만들어 주 1회 지인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제공예 학술포럼(부제: 한일 백파선 국제포럼)행사를 통해 본격적인 백파선 연구발표 시간도 가졌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다카쿠사키 미나씨의 ‘백파선 비문 연구’, 백파선의 16대 후손인 하시구치 아키히토(橋口彰人)의 ‘백파선 후손으로서의 삶’이라는 주제 발표도 있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9 국제공예학술포럼 한일백파선국제포럼 6월 8일(토) 2시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백파선 전도사
‘세종이야기 미술관’을 운영하며 세종대왕 페이퍼 토이를 만든 적이 있어, 그때 의뢰한 분에게 부탁해 백파선 페이퍼 토이를 만들어 역사와 함께 가르치는 종이접기 교실을 운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모임과 행사들을 할 수 없어 만나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지요. 그리고 멜론과 벅스에 들어가면 ‘백파선을 그리다’라는 피아노곡이 있어요. 백파선 헌정 앨범으로 지수현 작곡가가 만들어 준 곡입니다. 최근에는 ‘호모보빌리쿠스’로 유명한 무용가 김남식 박사가 백파선 이야기를 듣더니 400년을 거슬러 백파선을 기리는 현대판 춤, 안무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어요. 이밖에도 청년 큐레이터에게 제안해 ‘백파선 도자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재 백파선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 작가도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를 동원해 입만 열만 백파선, 백파선 하니,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이혜경’ 제 이름은 잊어버려도 백파선은 못 잊겠다고 하더군요. 일본에서 ‘백파’라는 뮤지컬을 만들어 150회 공연까지 했다는 소식에 자극을 받아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내용으로 뮤지컬과 오페라를 만들어 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는 ‘현대판 백파선’
저는 딸들과 친구처럼 지내요. 시대가 달라도 우리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성인기까지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들이 비슷한 게 많잖아요. 제가 많이 바빠 다른 엄마들만큼 아이들을 챙겨주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딸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활동하고 진심으로 정치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랄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대학을 가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 정도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직접적으로 딸들에게 해준 것은, 삶의 질은 문화예술의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눌 때 풍성해진다는 것을 배우게 했죠. 그래서 본인들 스스로 공연이든, 미술관 전시회든 티켓을 직접 구입해 보러 가게 했습니다. 세 딸들은 집에서 장난으로 저를 백파선이라고 부른답니다.(웃음) 실제로도 큰딸은 백파선 영상제작에 도움을 주었고, 음악을 하는 작은딸에게는 백파선에 대한 곡을 부탁해놓았습니다.

 

남보다 뛰어나기보다 남과 다르게 되라
학생일 때 소년 탈무드를 읽은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 ‘남보다 뛰어나기보다 남과 다르게 되라’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글귀가 제일 기억에 남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의원직을 하면서도 책상 앞에 붓글씨로 써 놓았죠. 우리 주위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을 어찌 다 쫓아가겠어요. 대신 조금 방향을 바꾼다면 나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찾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나만의 다른 것을 보여줄 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남게 되는 것이죠. 사람을 만날 때도 쿠키를 굽거나 작은 손뜨개 소품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의 선물이 아닌, 직접 그 사람을 생각하며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을 선물한다면, 어떤 명품보다도 더 감동하지 않을까요? 

 

한국 여성들에게 바람
제 삶의 1단계는 학교와 직장, 2단계 결혼과 육아, 3단계 의정활동, 지금은 4단계로 백파선 연구 3년 차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의정활동의 경험이 지금의 이혜경으로 사는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죠. 지방정치는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교육, 여성, 청소년 문제 등의 생활 정치와 관련이 깊습니다. 생활의 면면을 경험하는 여성들이야말로 지방정치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이미 전문화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성 정치인이 20%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좀 더 많은 여성이 정치 활동에 참여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정책이란 한번 결정되면 번복하기 쉽지 않은 만큼,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주로 한쪽의 시각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어 왔는데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젠 지방정치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의원들의 정치활동을 지원해주는 직원들도 있기에 그 기반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여성,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일상의 다양한 시각들이 사회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외에 나가거나 행사 때 한복 입는 걸 좋아해, 의정활동 중에 ‘복식 고증을 통한 전통문화행사 재연 방안 연구’를 제안해 서경대학 연구진들과 연구결과 보고서를 만들고, 조례 개정도 추진했다고 하더군요. 입고 있는 한복 느낌의 긴치마도 동대문에서 옷감을 구입해 홈패션으로 맞춰, 합리적인 가격으로 입었노라고 환한 얼굴로 웃는 현대판 백파선 이혜경 대표는 정말 색다르고 멋져 보였습니다. 특히 50대 중반을 넘겼는데 3년 동안 기른 검은색 생머리는 염색도 하지 않은 좋은 모발로 좀 더 머리를 기르면 백혈병 환우를 위해 기증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셋째 딸이 몇 년 전에 이미 기부한 적이 있어 본인도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400년 전 인물인 백파선을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처럼 교과서에 실어 후세대들이 잘 알게 된다면, 민간차원의 한일관계도 더 슬기롭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며 꼭 교과서에 실리길 바라는 간절한 소원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약력
백파선 역사문화아카데미 대표
(주)백파선콘텐츠연구소 대표
세종이야기미술관 관장

국제여성교류협회(WKIC) 정회원
21세기여성정치연합 중구지회장

제9대 서울시의원
제5~6대 서울 중구의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구협의회 감사(전)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장(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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