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무령왕릉 진묘수, “너를 천년동안 지켜줄게”

2021년 11월호(14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1. 13. 20:57

본문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7]

 

무령왕릉 진묘수,
“너를 천년동안 지켜줄게”

 

출처 - 현재 전시중인 국립공주박물관의 진묘수, 사진 이진희

 

백제는 흔히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게 많아서인지, 잊은 게 많아서인지, 빼앗긴 게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700년 역사에서 남아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마 일제강점기 상당 부분 도굴 또는 도굴에 가까운 발굴로 상처를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왕릉은 구사일생으로 도굴되지 않았습니다. 1971년 발굴됐으니 올해로 벌써 발굴 50주년이네요.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건 일종의 행운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발굴(도굴)자의 착각 덕분이었지요. 가루베 지온(1897~1970)은 송산리 고분들을 발굴하면서 무령왕릉을 능이 아닌 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1971년 여름 어느 날, 긴 장마에 대비하여 송산리 고분의 배수로를 만들던 중 땅을 파던 삽 끝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아래를 파보니 그곳에는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무령왕릉이 있었습니다. 무령왕릉 안에는 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지석(땅속에 묻는 비석)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유물이 들어있었습니다.

무령왕릉의 입구는 벽돌로 막혀있었는데, 벽돌을 허물자 안개인 듯, 수증기인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1452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격이 느껴지던 순간이었지요. 수증기가 걷히자 누군가의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네발 달린 짐승이었습니다. 머리에는 뿔 하나가 달려있고 몸에는 갈기가 날개처럼 달려있었습니다. 어떤 발굴자는 어젯밤에 돼지꿈을 꾸었는데 오늘 본 이놈과 비슷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맨 처음 무덤을 열고 들어가서 처음 진묘수를 본 발굴자는 섬뜩했을 겁니다. 진묘수(鎭墓獸)는 ‘무덤을 지키는 짐승’을 말합니다. 그런데 건장하고 당당해야 할 진묘수의 뒷다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러진 숟가락처럼 발굴, 운반하는 과정에서 부러졌다, 원래부터 부러져 있었다며 서로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장례 절차로 온전한 물건을 일부러 손상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거든요. 이 점은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지금은 다리를 붙여 놓았습니다. 엉덩이 쪽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그러다 중국에서 무령왕릉과 같은 시기, 남조 양나라에도 뒷다리를 부러뜨린 여러 진묘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령왕릉 석수의 뒷다리도 일부러 부러뜨린 거로 보게 되었지요. 도망가지 말고 꼭 지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 좀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정말 일부러 부러뜨렸을까요? 나중에 부러뜨린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면 좀 덜 미안하게 느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 현재 전시중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 / 사진 이진희


왕릉의 주인을 알려주는 지석에는 무령왕의 직함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입니다. 일본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무령왕은 섬이란 의미의 사마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영동대장군은 중국 양나라가 무령왕에게 내린 작호입니다. 사실 무령왕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왔습니다. 벽돌로 무덤을 쓰는 것도 대표적인 중국 양식이죠. 무덤을 지키는 석수의 뒷다리까지 그 양식에 따라 부러뜨렸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왕의 장례를 치를 때 주변 나라에서 여러 물건을 보내주는 것은 으레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중국 것이라는 얘긴 아닙니다. 함께 출토된 백제의 동탁은잔을 보면 백제의 공예기술과 미적 감각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선례가 있었으니 나중에 백제금동대향로와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있었던 거지요.
여러분이 무덤의 주인을 지켜주고 싶다면 어떤 짐승, 어떻게 생긴 짐승이 지켜주길 바라나요. 당연히 단번에 공포심과 두려움을 줄 만큼 괴기한 모습의 진묘수를 택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 진묘수도 대부분 이렇게 생겼습니다. 무령왕의 석수를 다시 봅니다. 몸은 통통하고 굵습니다. 통통하고 짧은 네 다리로 당당히 서 있습니다. 몸통에 갈기가 새겨져 있는데 날개 같기도 하네요. 머리 위에는 뿔 한 개를 올려놓았습니다. 만약 도끼 등을 준비해간 도굴꾼이 중국처럼 무시무시한 진묘수가 나타났다면 바로 내려쳤겠지요. 그런데 무령왕릉의 석수는 좀 다르네요. 도굴꾼을 향해 귀여운 모습을 취합니다. 들었던 도끼를 내려칠까? 아니면 얼굴을 한 번 쓰다듬고 “짜식, 이번만은 봐 준다”하고 돌아서 나왔을까요?

무덤 안에 진묘수를 둔다든지, 진묘수의 한쪽 다리를 부러뜨린다든지 하는 것은 물론 중국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따라 하다니 자존심이 상하셨나요? 저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석수를 만들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무섭게 만들 수도 있고 부드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백제는 부드러움을 택했습니다. 귀엽게 만들었지요. 저는 이런 넉넉한 마음가짐이 이런저런 중국 영향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고 보니 백제의 모든 왕릉이 도굴됐어도 무령왕릉만 살아남은 건 저 귀여운 석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령왕릉을 천년 하고도 몇 백 년을 지켜냈으니까요.

당신이 가장 지켜주고 싶은 이는 누구인가요? 무령왕릉에 대해 강의할 때 천 년 동안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이 진묘수를 선물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번 공주박물관으로 답사를 갔는데 선물로 만들어진 작은 모양의 석수가 동이 나 버렸습니다. 다녀간 사람들이 어머니께,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황송하게도 저도 석수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10년도 넘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나를 잘 지켜주고 있습니다. 지금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무령왕릉발굴 5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2021. 9. 14 ~ 2022. 3. 6)직접 방문해 진묘수를 만나면서 여러분들에게 진묘수가 “너를 천년동안 지켜줄게”라고 말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