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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그리운 세상

2021년 11월호(14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1. 1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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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그리운 세상

 

 

 

유난히 고된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매 주마다 있는 회사 전체 직원회의에 늦을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해 놓았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퇴근길 정체가 조금은 짜증스러운 저녁이었죠. 한참 삼거리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서 있던 승용차가 조금씩 후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옆 차선을 타려고 준비하나 보다 하고 있는데, 이 차가 대체 멈출 기미가 없는 겁니다. 급하게 ‘빵~!’하고 크락션을 울렸지만,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쿵~!’ 후진으로 제가 타고 있는 트럭의 정면을 그대로 박아 버렸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저는 잠시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사고를 낸 앞차의 운전자는 나올 기미도 없이 조용했으니, 혹시 내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있어 차가 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나는 브레이크를 죽어라 밟고 있었고, 앞차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차 속에 여전히 앉아있는 운전자가 괘씸해 문을 열고 고함을 치며 나갔습니다.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신호는 바뀌어 뒤차들은 빵빵대며 힘겹게 비켜 가고 있는데도 운전자는 아직도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죠.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차를 향해 가려는데 ‘덜컥’문이 열리더니 한 젊은 여자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요.” 사색이 된 얼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운전자를 보자 약간 측은한 생각이 들었죠. “아니, 거기서 후진을 하면 어떻게 해요. 제가 빵~ 소리까지 울렸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결혼 준비 때문에 요사이 정신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일단 사고를 수습해야 해서 자동차를 살펴보니 앞차 꽁무니가 제 트럭 번호판 부분에 콕 박혀있었지요. 그다지 큰 사고는 아닌 것 같아, 일단은 사진을 찍고 앞차를 살짝 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허둥지둥 차에 오른 운전자는 한참 움찔거린 뒤에야 간신히 차를 빼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간도 늦었고, 차들도 막히는데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하는 생각에 다시 짜증이 슬금슬금 몰려오기 시작했죠. 다행히 제 트럭은 앞 번호판이 조금 휘어지고 떨어진 상태였고, 앞차의 뒤 범퍼에는 번호판 고정나사 2개가 박혔던 자국이 제법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떨어진 번호판은 다시 나사를 조여 고정하면 될 것 같고, 다친 곳도 없었지만 그래도 회사 차로 사고가 난 것이기에 사장님께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사장님은 우스갯소리로 “아~ 목을 잡고 누웠어야죠.” 했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그대로 보내주라고 하셨죠. 초조하게 기다리는 운전자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그냥 가라고 하자, 여자는 놀란 눈을 하며, “아니에요. 차라도 고치셔야죠.”하면서 더욱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내밀며 전화번호를 찍어 달라고 하는데,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이 너무나 안쓰러웠죠. 전화를 걸어 번호를 확인하고 저는 앞차를 먼저 보낸 뒤, 급하게 회사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운전하다 사고를 냈는데, 그대로 갔다가는 또 사고를 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죠. 그래서 차를 도로가에 세우고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너무 경황이 없어 보여서, 그대로 가다가는 또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어 전화했어요.”

“잠깐 물도 마시고 쉬다가 천천히 가면 좋겠어요.” 
회사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동료들은 입을 모아 “아유~ 그냥 아프다고 하고 보험을 처리했어야죠.”라고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사고를 낸 차가 제법 값이 나가는 차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그랬죠.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유~ 당신들 같은 운전자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겁이 나네요.”하고 대화를 마쳤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사고를 낸 운전자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조금 아까 접촉사고 냈던 사람이에요. 전화 드렸는데 받지 않아서 운전 중이신 것 같아, 방해될 것 같아 문자로 남깁니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괜찮다고 해주시고 오히려 저를 더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차 사고를 처음 내는 거라, 많이 당황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조금 쉬었다가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말씀대로 물 한 잔 마시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 죄송스러워서 이렇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운전하겠습니다. 모쪼록 안전히 귀가하시고 혹시라도 불편한 곳이 생기면 이쪽으로 전화 부탁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참 고마운 문자였습니다. 제가 했던 작은 배려가 한 사람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죠.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첫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가 얼마나 힘들고 당황스러웠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운전자는 사고 직후 운전대를 잡고 머리를 흔들고 어쩔 줄 모르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면서 20여 년 전 나의 첫 번째 자동차 사고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당시 당황스럽고 창피했던 저는 상대 운전자의 상태를 물어보기보다 보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먼저 꺼내는 바람에 상대방으로부터 핀잔을 들어야 했죠. 그런 저에 비하면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떨고 있던 이 여성은 저보다 더 정직했던 셈이죠.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 시치미 떼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세상, 더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 뒤집어씌우는 게 괜찮은 이상한 사회 속에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은‘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 빨개지며 부끄러움을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군포시 금정동 고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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